짧은글 긴여운

빗나간 목회

안명애 2015. 3. 20. 19:10

사도 바울의 주장은 목회자에게 경고를 준다. 이 점에서 양적 교회 성장론은 비성경적이다. 겉으로 나타난 양적 성장 결과로 목회자의 영적 능력과 성공 정도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의 영적 성장 정도와 내용은 하나님에게 정확하게 알려지지만 인간 목회자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목회자는 자신의 사역과 설교가 씨를 뿌려 심는 일과 물 주는 일 중 어느 일에 해당하는 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모두 영적 분야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사역 결과에 대해 관심을 두는 것은 잘못이다. 그저 씨를 제대로 심기 위해 그리고 물을 잘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외 별 다른 방법이 없다
.

농사 경험이 있다면 쉽게 이해된다. 가지치기를 왜 하는가? 열매를 실하게 맺도록 돕기 위함이다. 그러나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나무는 가지들과 잎이 대단히 무성해서 보기는 좋지만 열매를 못 맺거나 맺어도 먹을 수 없을 정도의 부실한 열매들만 무성하다. 양적 성장론자들만이 이런 나무들을 보고 훌륭하다고 침을 틔기며 칭찬한다. 그러나 주인에게는 무용한 나무이다
.

성경적인 설교는 가지치기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악인들은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떠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와 목회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서 멀리 벗어났다고 증언한다. 목회자들 중 교회의 양적 규모로 1, 2급 또는 3급으로 나뉘어지며 받는 보수와 대우도 달라지지 않는가? 그리고 왜 목회자들은 자신이 목양할 수 있는 능력 밖의 양적 성장을 원하는가
?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일은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목회는 근본적으로 사람의 인격을 다루는 사역이다. 이런 인격적 목회를 고려한다면 1인 목회자가 어떻게 수천 명, 수만 명 그리고 수십만 명을 상대해서 목회할 수 있는가?  300명 이상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상식적으로도 맞다
.

한국 교회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5%의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은 호사스럽게 살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개척교회 수준으로 목회자들은 겨우 살아 간다. 이것은 양적 성장론과 번영신학 때문이다. 지교회의 교인수가 300명을 넘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이 가르치는 인격적 목회가 가능할 것이며 그리고 교회들 사이 그리고 목회자들 사이 평균케 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고후8:13-14).

사도 바울의 목회관은 한국 교회와 목회가 얼마나 멀리 빗나갔는지를 알려준다. 목회자는 말씀을 잘 전하는 일에만 몰두하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라! 인간 목회자가 알 수 없는 부분이며 또는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기 때문이다. 목회와 사역(설교)은 인격과 관계되며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인격적 목회가 성경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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