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외로움
70년 포로 생활 후 유대인들이 하나 둘 고토로 귀환했다. 지도자로선 에스라 그리고 느혜미야가 와서 성전을 짓고 성벽을 중수하여 세웠다. 이 때 앗수르 제국이 보낸 이방인들이 이미 70년간 그곳에 살고 있었다. 옛 주민과 새 주민 사이 갈등과 충돌이 생겼다.
새 주민은 이미 정착했고 옛 주민인 유대인들은 그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으려 했다. 이 점에서 여호수아의 정복 시기와 사사 시대가 바벨론 포로들에게 반복되었다. 당연히 기존 정착민은 귀환한 유대인들을 싫어했다.
새 정착민들은 유대인들에게 찾아와 자신들로 여호와를 섬긴다고 말하며 성전 건축에 협력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쉽게 성전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에스라나 느혜미야는 전적으로 반대했다. 이방인 정착민들은 자신들을 끼워주지 않는다면 유대인들을 방해해야 했다. 온갖 위협과 방해가 계속 있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제사장 가문들 중 이미 이들 이방인 정착민들과 연합하여 에스라와 느혜미야의 도모를 방해하거나 느혜미야를 살인하고자 했다.
이들은 쉬운 길을 버리고 어려운 길을 택해야 했다. 그 이유는 성전 건축에 이방인들이 끼어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자기 것을 순수히 지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방인 선교가 가능했음을 에스라와 느혜미야는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구약의 유대 종교는 혼합주의에 빠져 진리의 순수성을 고수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럴 때 지도자는 참으로 힘들고 외롭다. 진리를 위해 외롭고 힘든 길을 가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혼란은 힘들고 외로운 길보다 쉬운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복주의를 선택한 결과이다. 이를 택하면 핍박과 반대는 없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진리를 상실하고 혼합주의 종교가 된다. 에스라와 느혜미야의 고민은 구약 시대에 한하지 않고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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