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교회에서 목회에 성공한 목회자들이 자주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용서를 선언한다. 그리고 의인인 체 위선이란 죄를 추가시킨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지은 죄가 하나님의 어떤 뜻에서 나왔는지에 대해 어느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두 경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다윗의 경우처럼 그가 피택자라면 책망과 교정 그리고 교훈을 위해 죄를 짓도록 하나님이 막지 않고 허용할 수 있다. 그를 낮추기 위함이다. 이 때 회개를 조건으로 죄에 대한 용서는 가능하지만 징계는 절대로 면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공적 기관에서 분명히 자신의 죄에 대해 공개적으로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징계를 겸손하게
받아야 한다. 이것이 그가 피택자란 증거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그를 유기시키기 위해 그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허용할 수 있다. 이들은 말씀과 양심을 어긴 후에도 하나님의 뜻이라 주장하며 스스로 용서를 선언하고 의인처럼 행할 것이다. 교회와 교인들도 기쁘게 동의한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나가고 잘 되기만 한다. 그는 분명히 버림 받은 자이다. 그가 회개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교정하도록 하는 징벌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반드시 징계하기 위해 매를 든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다"란 표현은 변명의 방법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징계 또는 징벌한다. 그리고 이 표현은 하나님이 모든 악을 저지른 장본인임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아울러 이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한 체 하나님의 주됨을 부정하는 신학도 비성경적이다. 하나님은 주로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스린다. 그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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