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께이 신문 '구로다' 서울 지사 주재원의 기사를 읽다 보면 참 마음이 좁은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선진국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며 그는 한국인을 조롱하는 듯 기사를 쓴다. 보통 서구인 기자들은 글 내용에서 장점을 먼저 쓰고 단점을 잠깐 언급하며 균형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 주재하면서도 한국 사회와 사람의 단점만 들춰내기에 열심이다. 동방의 예의도 모르는 인간 같다. 그는 자기 민족의 눈에 대들보가 있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위선자이다. 이런 우파들이 있는 한 일본 사회는 서서히 후퇴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그를 비웃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도 구로다의 모습이 보인다. 지독히도 편파적인 모습 말이다. 특히 집단적 이기주의로 드러내는 한국인의 흑백 논리가 이를 잘 증명한다. 나와 다르면 무조건 틀린다. 옳고 그름은 둘째다. 나와 함께 하지 않아도 무조건 틀리다. 한국의 개교회주의도 좋은 예이다. 자기 교회만 좋고 다른 교회는 안 좋다고 본다. 우리에게서도 구로다의 모습이 잘 보인다.
이런 사고는 진화론적이다. 양육강식, 적자생존, 자연도퇴라는 진화론은 강자의 논리이다. 오늘날 인류 사회는 진화론적 사고에 의해 지배 당하고 있다. 강자와 승자만 의미가 있고 약자와 패자는 존재 의미도 없다. 구로다는 일본이 앞섰다는 의식에서 한국을 비웃는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큰 교회가 작은 교회를 또는 목회 성공한 목회자가 그렇지 못한 목회자들을 낮춰본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보편적 교회론은 훼손 당한다.
다윈의 진화론적 사고방식은 성경이 주장하는 지체론적 사고방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지체론은 몸이라는 유기체를 전제한다. 지체론에서 강약, 대소, 귀천 그리고 노소의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런 것들과 무관하게 지체들은 모두 한 몸에 속한다. 아무리 작은 지체라도 몸을 위해 중요하다. 어느 하나 무시될 수 없다. 이런 지체론적 사고방식으로만 인류 사회는 행복해진다. 이를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
지체론은 성경이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사람의 몸을 이용하여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부활한 몸이며 구원 받은 성도들이 지체들이라고 주장했다(엡5:30절). 성도들과 목회자들은 교회의 규모와 무관하게 동일한 지체들이다. 부활주인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로서 머리이다(골2:10, 계1:5절). 그렇다면 인종과 언어와 관습과 무관하게 모든 인류는 그의 몸을 구성하는 지체들이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이 만유의 머리라고 말하며(대상29:11절) 온 인류를 포함한 우주도 그의 몸을 구성한다고 설명한다.
예수님은 이를 잘 알고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명령했다. 성경의 사랑이 윤리적 기준도 초월하는 이유는 지체론에 있다. 그렇다면 성화란 무엇인가? 지체론에 근거한 사고방식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진화론적 사고방식으론 성화는 전혀 불가능하다. 기독교 윤리는 진화론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지체론적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진정한 출애굽 사건이 요한다. 이 때 칭의와 성화는 본래 의미와 목적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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