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시대 설교자는 구약시대의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대언자(代言者)이다. 구약의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아 전했다. 그러나 신약의 설교자는 이미 기록된 성경 말씀을 해석한 후 하나님의 의지, 뜻, 계획과 목적을 찾아내 전한다. 다시 말해 기록된 성경만을 신약의 설교자는 전해야 한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이 귀한 가르침을 남겼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절)
설교자는 많은 사람들이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면 안 된다. 바울 당시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들을 이리저리 꿰 맞추는 설교를 했기 때문이다. 이사야 당시 이미 이런 거짓 선자들이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사28:13절).
설교자가 이를 피하고 순전함으로 설교 사역에 임하려면 하나님께 받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전해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본문을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이 본문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1차 가르침을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진실하게 전하고 그 내용은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묵상, 깨달음, 생각, 느낌, 소원과 꿈 등등)을 설교 자료로 삼아선 안 된다.
성경 본문은 항상 특정한 구속사적 그리고 역사적 배경 아래 기록된다. 역사적 상황에 맞는 가르침이나 교훈을 성경의 저자인 하나님은 전한다. 이 가르침이 바로 1차 가르침이다. 그러나 1차 가르침은 수많은 2차 가르침들의 도움으로 전달된다. 2차 가르침들은 1차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전하도록 돕는 역할과 기능을 한다.
시계의 존재 목적은 시간 알림이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 시계는 수많은 부품들로 만들어진다. 부품들은 개별적이지만 특정한 구조 아래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부품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마찬 가지로 성경 본문의 1차 가르침은 시계의 존재 목적과 같다. 1차 가르침을 위해 수많은 2차 가르침들이 본문에서 문법의 도움으로 논리적으로 서로 긴밀히 연결된다. 2차적 가르침들은 개별적으로 존재 의미를 잃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