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여운

참과 거짓의 구분

안명애 2015. 10. 7. 21:07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거짓 선지자나 선생은 있기 마련이다. 사도 요한은 이를 가르는 중요한 방법 둘을 자신의 서신(요일4장)에서 소개한다.

첫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4:2-3)

 

갈릴리 출신 예수님을 육체로 온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신앙을 고백하는가 여부이다. 시인한다면 하나님께 속한 영이요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예수님을 인간으로만 믿는 자유주의나 현대신학은 적그리스도의 신학이다.

사도 요한은 둘째 방법도 말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국역의 '사랑하는 자'는 원본에서 '사랑 받은 자'(beloved)이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사랑하는 자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웃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하나님께로 난 자만이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중생은 사랑이라는 실천적 행위로 알려진다. 영적 중생은 이웃 사랑이라는 윤리를 반드시 동반한다.

 

사도 요한은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으로 참 영과 거짓 영을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얼마든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조폭도 자기들 끼리 사랑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예수님의 주됨을 믿고 순종하는 삶이 약해서이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을 구원자는 물론 주로 고백하는 신앙 고백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 세상에 구현되고 전달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9-10)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알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속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사흘만에 부활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활 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정되었다(1:3-4). 아들을 믿을 때만 중생이 가능하고 사랑 자체인 하나님을 알게 된다.

 

아들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신자는 이웃을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 그 목적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1-12)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한다. 하나님이 거한다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통치(나라)가 실현된다. 사랑인 하나님이 우리 인격을 다스린다면 당연히 미움 대신 사랑이 우리 마음에 가득 채워진다사랑이 하나님의 통치의 증거인 셈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에 따라 사랑을 실천한다면 인간의 타락성과 부패성이 점점 마음으로부터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성화 과정이다.

그러나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은 신자 자신의 몫이다이런 노력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신자는 점점 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 하나님이 의인과 악인에게 동등하게 공기, 비와 햇빛을 주듯이 신자는 원수까지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 경지에 달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면서도 자신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유대인들의 사죄를 아버지께 구했다. 예수님은 악을 선으로 그리고 미움을 사랑으로 극복했다.

 

사도 요한은 신자가 사랑해야 할 이유와 근거를 충분히 설명한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이 때 그의 성화 삶이 가능할 것이다칭의는 믿음으로 그러나 성화는 사랑의 행위로 가능하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편 무조건적이지만 다른 한편 조건적이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신앙을 고백한 신자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예수님이라는 구원자(Savior)는 동시에 구원 받은 신자의 주인(Lord)이다. 신자는 주인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신자의 몫이다.

 

이런 노력이 없이 신앙 성숙은 불가능하다. 칭의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은 성경적이지 않다. 칭의는 반드시 성화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믿음은 사랑이라는 증거를 보여야 한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성화가 없는 칭의로 거짓이다. 이제 교회는 믿음만 아니라 사랑도 가르쳐야 한다.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로 난 자가 아님을 스스로 증거하며 이런 신자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예수님이 열매로 나무를 알 것이란 가르침은 진실로 정당하다. 결국 사도 요한은 기독교 윤리로 참과 거짓 영을 충분히 구별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 확실한 가르침으로 교회 주변의 거짓 선생들을 몰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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