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라는 이름의 뜻은 『짐꾼』 또는 『무거운 짐을 진자』라는 의미이다. 아모스는 남방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6마일 남쪽에 떨어져 있는 드고아 고원에서 목축을 하며 뽕나무를 재배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일개 농부가 아니라, 은둔 한 야인(野人)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구약 아모스서의 저자로서, 그의 문체를 살펴보면, 상당한 수준의 학문을 갖추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제사장이나 선지자의 아들이 아니었고 일개 농부였다.(암7:14) 그러나 드고아에서 양을 치던 도중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북이스라엘의 벧엘에 가서 예언 활동을 하였다. 그가 활동한 연대는 남쪽 유다 나라에서는 웃시야 왕이 다스리고 있었고, 북쪽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고 있을 때라 하였으니 북왕국이 멸망하기 30년전이다. 그는 남쪽 유다 왕국 출신이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의 벧엘에 가서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고 그를 위하여 예언하였다.(암7:11-13)
아모스는 요엘 선지자나 호세아 선지자와 비슷한 시기의 선지자로 이들과 서로 만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하여 서로 격려 하기도 한 것 같다. 당시의 북왕국은 여로보암 2세의 통치하에 상당히 번영하였다.(왕하14:23-29) 이스라엘의 국운도 최고도로 발전되어 백성들이 다 자유를 즐거워하였다. 그러나 우상숭배와 죄악도 최고도에 달하여서 도처에 악취가 심하였다.(암2:6-8)
왕은 상아로 장식한 호화로운 궁전을 가진 것 이외에 계절을 즐기기 위한 여름 궁과 겨울 궁을 따로 세웠고, 부유한 자들은 상아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며, 송아지를 잡아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렸다.(암6:5) 따라서 빈부의 차이는 극심하였고, 부정과 부패는 극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라는 구절들을 통해서 당시 사회의 빈부격차와 착취를 엿볼 수 있다. 상업윤리도 똑같은 정도로 전락하여, 저울을 속이며 쭉정이를 알곡에 섞어서 팔아, 부당이득을 취하는 현상이 다반사였다.(암7:3-5) 성윤리 또한 극도로 문란했다. 『부자(父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라는 지적만으로도 당시의 세태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와 같이 죄가 많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강한나라(앗수르)를 시켜서 치실 때에 천 명이 나가서 싸워서 백 명만 남을 것이요, 백 명이 나아가서 싸운 성읍에서는 간신히 열 명만 남도록 패망을 할 터인데, 이때에 벧엘이나 길갈이나 브엘세바로 피하여도 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요 다만 하나님께로 피하여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만이 살리라고 예언하였다.(암5:3-5)
선지자 아모스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서 무서운 예언을 할 때에, 백성들은 그 사실을 두렵게 생각하고 회개하려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선지자를 미워하며 바른 말하던 자를 싫어하였다. 이것은 죄를 고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고로 반드시 이것에 보복하시되, 앗수르의 대군을 몰아넣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아로새긴 돌로 지은 집에서도 거하지 못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고 그 술도 마시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죄를 짓고는 살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죄를 고집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백성들은 심판대 앞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다.(암9:2-10)
아모스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두려운 심판을 면하고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암5:14)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암5:24)라고 모든 백성들에게 악을 떠나 회개하기를 촉구하였다.
아모스는 이 풍요로운, 그러나 극도로 타락한 이곳에 정의의 심판을 선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자, 결국 예언대로 북왕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4)
아모스를 통해 우리가 배울 교훈은
1. 목자로서 가정에 충실했던 아모스는 아마샤의 갖은 협박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메시지를 외침으로써 선지자 사역도 훌륭하게 수행했다.
2. 어떤 종교제도가 하나님의 공의와 사회의 정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 종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아모스의 신념이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임을 늘 잊지 말자.
3.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할 때 그들의 위선적인 종교 행사들을 준엄하게 꾸짖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다. 오늘날 형식적인 예배와 도덕적 타락으로 일관해 온 사치와 무사안일 주의에 빠진 자들에게 아모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담대히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자.
4. 아모스 선지자는 울면서 회개하라고 말한다. 백성의 90%가 죽을 것을 알았던 그는 정의로운 사회를 어지럽히고, 깨닫지 못함을 한탄했다. 위정자, 부유계급, 사치스런 집과 생활, 호화스런 형식적인 예배를 찾지말고 여호와를 찾으라고 외친다.(암5: 4- 8) 우리도 심판의 때가 오기 전에 회개해야 된다.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해야 한다.
5. 아모스라는 동명이인으로는 선지자 이사야의 아버지가 있고(사1:1, 사2:1, 사13:1 사20:2), 맛다디아의 아버지, 나훔의 아들이 있다.(눅3:25)
▣ 아모스서 개요
아모스란 말의 뜻은 『짐』 또는 『짐을 진 자』를 말한다. 저자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아모스를 인정하고 있다. 그는 유다의 광야 지역인 드고아 출신이었다. 그는 이사야처럼 왕궁에 속한 선지자도 아니었고 예레미야처럼 제사장도 아니었다. 그는 양떼를 치고 뽕나무를 재배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양떼를 돌보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1. 배경
우리는 1:1과 7:10-13을 통해 아모스가 유다의 웃시야왕과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인 8세기 중엽에 활동한 선지자임을 알 수 있다. 유다 왕 웃시야는 B.C. 791-740까지 50여 년간을 다스렸다. 웃시야는 유다의 적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튼튼하게 증축했다. 그의 치세 동안 유다는 번성했고 한 때 선지자 아모스의 영향으로 영적으로 견고하기까지 했다.
2. 주제
본서의 주제는 참 신앙에는 반드시 사회적, 종교적 정의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5:24) 이러한 주제가 이스라엘 역사에 대입될 때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될 수 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인내가 많으신 분이지만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므로 죄를 그대로 묵과하실 수 없는 것이다. 아모스는 이를 예리하게 통찰한 나머지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초청한 아모스 선지자의 말을 거부한 사람들은 멸망할 수 밖에 없다. 여호와의 선지자가 기존의 종교 제도의 지도자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예수께서는 사두개인들과 유대 제사장들로부터 심한 반대를 받으셨고 결국은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다. 아모스에게 있어서 종교가 공의와 의로움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혀 무가치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주제는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라는 것이다.
3. 기록장소와 대상
기록 장소는 예루살렘 근처이고 이스라엘의 종교적, 사회적 부패를 책망하기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로잡힘을 경고하기 위해 기록하였다. 주로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지만 유다의 주변 민족들을 대상으로도 기록하였다.
4. 저작 연대
저작연대는 B.C.760- 753년 사이로 추정된다.
5. 핵심어 및 내용
핵심어는 『다림줄』과 『희망』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백성들을 시험하시고 심판하실 다림줄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금 희망의 빛을 비춰 주심으로 자기 백성과 그 땅을 다시금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강조했다면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모스는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한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속성을 공의 혹은 정의로 파악하고 또한 이것을 인간 도덕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가르쳤다. 개인적인 죄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심판대 앞에서 심판받고 국가적인 죄는 국가적인 심판을 받는다. 세계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14:34)
개인의 죄가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사치와 낭비의 종교의식, 의와 영적헌신이 없는 종교적 열정, 부정직한 사회와 종교의 상업성을 경계하자.
* 기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우리가 의를 추구함으로 영적인 배부름을 얻게 하소서. 주님의 온전한 뜻을 행하도록 항상 준비하고, 오늘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게 하시고, 내 생의 남은 시간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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