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십자군 전쟁의 결과

안명애 2015. 2. 26. 08:44

십자군 전쟁이란?

 

 

 

 

십자군 전쟁은 11세기말부터 13세기까지 8차례에 걸쳐서 이슬람교 세력이 그리스도의 무덤을 파괴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강탈함으로써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가 탈환하기 위해 일어난 쌍방 간의 전쟁이다.

 

십자군의 명칭?
십자군이란 명칭은 이 전쟁에 참가했던 자들이 의복에 십자가 표지를 붙인 것에서 유래되었다.

 

 

                                                      십자군들의 모습

 

역사적 배경과 원인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교 영향권에 있는 동유럽과 소아시아가 이슬람교 세력에 의해 점령되기 시작하였다 633∼643년에는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의 나라들이, 669∼709년에는 아프리카 북부가, 그리고 711∼719년에는 스페인이 정복되어 서유럽 그리스도교 세계가 위기를 느끼고 불안해하였다. 1010년에는 모슬렘 교도인 하킴(Hakim)군주가 당시 모슬렘 교도들에게까지 성지로 존중되어온 성지들을 강탈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의 무덤을 파괴하였으며, 1048년 이래 터키의 셀주크 왕조가 동로마 제국의 소아시아 국경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11070∼71년에는 셀주크 터키족이 지중해 동해안에 진출하여 팔레스타나 성지를 점령하고 순례자들을 박해하였다.


그런데 초기 교회 때부터 순례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의 하나였으므로, 특히 성지와 순례자들을 방어하고 보호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로 생각되었다. 십자군의 참가자들은 두 가지의 동기를 가졌었는데, 하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치겠다는 개인적인 신앙차원의 서원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군에 참가하는 동안 자기 가족과 재산을 교회가 보호하는 물질적인 이익과 대사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제1차 십자군 원정 (1096∼1099년)
1095년 삐아첸자(piacenza)와 끌레르몽(Clermont)교회 회의에서 교황 우르바노 2세는 동로마제국의 알레시오 황제가 파견한 자들로부터 동로마제국의 위급한 상황을 전해 듣고 그리스도의 무덤을 되찾고 동방의 그리스도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원정군을 보내자고 호소하여 제1차 십자군 원정(1096∼1099년)이 시작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돌아가시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준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대한 열망, 동방과의 무역을 원하는 이탈리아 상인들의 상업적인 야심 등의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십자군이 결성되었다. 특히 십자군에 참가하여 대사를 받고 전사할 경우 순교자가 된다는 것도 열성적인 신자들을 원정군에 쉽게 참가하게 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제1차 원정에서는 비조직적이고 계몽되지 않은 농부들도 많이 참가하여 교회 역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들이 라인 지방을 지날 때, 흥분한 나머지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로 유혈 참사가 일어났는데 발칸 지역을 지날 때에도 지휘자의 통솔을 제대로 받지 않은 이들은 지방 주민들에게도 방화와 학살로 참극을 일으켰다. 전투경험이 전혀 없는 많은 원정군들이 예루살렘에 도달하기도 전에 셀주크 족의 공격을 받아 전멸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원정군들이 악전고투 끝에 1098년 안티오키아를 함락하고 1099년 7월 예루살렘을 정복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부녀자와 유아와 노인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참살하는 비 그리스도교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서유럽에서 이곳까지 도달하는 전투에서 이슬람 군들의 매복병들의 습격을 받아 매일 매일 수많은 동료들이 전사하는 가운데 겨우 살아남은 이들의 보복 심리와 이슬람 군들의 항전의 악순환이 서로를 살육의 참상으로 몰고 갔다. 이런 악순환의 결과는 생사의 기로에서 양측 모두 이성적인 자제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신앙의 가르침과는 전혀 무관하게 생존의 본능만이 절대 기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제2차 십자군 원정 (1147∼1149년)
제2차 원정은 이슬람 세력의 반격으로 에뎃사가 함락(1144년)되면서 시작되었는데(1147∼1149),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의 설교로 추진되었지만 터키인들과의 여러 번의 전투에서 전멸되어 결국 예루살렘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제3차 십자군 원정 (1188∼1192년)
제3차 원정(1188∼1192)은 붉은 수염의 프리드리히(Friedrich)황제가 인솔한 잘 조직된 십자군들이 이고니움에서 터키인들과 싸워 혁혁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황제가 1190년 살레프에서 익사함으로써 지휘자를 잃은 군대는 더 이상 진군할 수 없었다. 영국의 왕 리차드(Richard)1세, 프랑스의 필립(Philipp)2세 등이 참가하여 예루살렘 재탈환에는 실패하였지만 십자군들이 성지의 새로운 지역을 정복하고 살라딘 술탄과 화해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평화로운 예루살렘 순례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제4차 십자군 원정 (1202∼1204년)
제4차 원정(1202∼1204)은 교황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호소로 시작되어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의 모두가 마지막으로 이 원정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십자군들은 완전히 교황의 의사를 거스르고, 이기적이고 상업적인 이해관계에서 베네치아의 상인들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고(1204. 4.13)라틴 제국이 그곳에 설립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도시는 심하게 약탈되고 황폐하였으며, 이러한 난폭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은 동서교회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키고 이슬람 세력에 대한 동방세계의 방위력이 결정적으로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5차 십자군 원정 (1217∼1221년)
제5차 원정(1217∼1221년)은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십자군 원정이 결정되어 1217년에 실행되었다. 프리드리히 2세가 십자군 파견을 약속했으나 이행하지 않아 파문을 받았다. 원정군은 동유럽의 신흥 그리스도 국가의 약소한 군사력으로 편성되어 이집트를 공격하여 다미에타를 공격하는 적은 성과를 거두었을 뿐이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성지 재탈환을 복음 정신에 따라 평화로운 포교로 해야 한다는 본래의 정신에 따라 무방비 상태로 성지에 가서 술탄을 설득시키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술탄이 성인을 너그럽게 대우하여 풀려났고, 이것을 계기로 프란치스코회의 평화로운 선교활동이 성지에서 시작되었다.

 

제6차 십자군 원정 (1228∼1229년)
제6차 원정(1228∼1229년)은 교회 당국과는 무관하게 파문 중에 있는 프리드리히 2세 황제의 개인적인 원정이었다. 그는 이집트 술탄과의 담판을 통해 예루살렘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반환시키는데 성공하였지만, 그후 1224년 결정적으로 다시 잃게 되었다.

 

제7·8차 십자군 원정 (1248∼1254년)
제7차 원정(1248∼1254년)및 8차 원정(1270년)이 모두 실패함으로써 실제적인 원정은 모두 끝났다. 프랑스의 성왕 루이9세는 우선 이집트를 정복한 후에 성지를 점령하려 하였으나 1205년4월 카이로에서 완패당해 후퇴했는데 그의 군대에 전염병이 돌아 전의를 상실하고 포로가 되었고 그의 부하를 위해서는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 그 자신은 이슬람에게 다미에타(Danietta)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풀려났다. 서방에서는 차츰 십자군 원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조성되고 비폭력적인 설교를 통해 이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려는 운동이 일어났으며 유럽 자체 내에서는 이교도 문제, 즉 스페인의 무어인, 이교 슬라브인, 프랑스 남부의 알비 파 이단 등 더 현실적인 문제들이 다가왔다. 이로 인해 십자군 원정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십자군원정의 결과

 

 

십자군 원정의 결과는 여러 가지다. 서구 사회가 근대로 넘어가는 계기를 마련했고 은둔적인 수도생활에서 병든 순례자에 대한 봉사와 이교도들로부터 성지를 보호하는 등 외적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 기사 수도회를 출현케 하였다. 또 비잔틴과 이슬람문화와의 접촉이 스콜라 사상으로 발전을 가능케 하였고 서구의 공동체 의식을 크게 강화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긍정적인 결과 이외에도 교회 내. 외적으로 씻을 수 없는 오점도 남겼다고 본다. 십자군 원정으로 인해 교황권이 신장되는 계기도 되었지만, 동시에 십자군 원정의 실패가 교황권이 크게 실추되는 결과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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