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앙인물

오바댜

안명애 2019. 3. 10. 21:53

남왕국 유다가 주전 587년에 바벨론에 망함으로써(제 2차 바벨론 포로) 예언자들의 활동 무대는 바벨론 지역으로 옮겨간다.

그러다가 주전 538년에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다시금 예언자들의 활동

무대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바뀐다. 오바댜, 학개, 스가랴, 요엘, 요나, 말라기 등이 이 시기에 속한 예언자들이다.
오바댜서는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짧은 책으로(21절), 남왕국 유다가 멸망한 직후에 선포된 메시지인 것으로 보인다.

오바댜가 선포한 메시지를 주목해 보면 그것은 에돔이 그 동안 저지른 죄악(10-14절)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1-9절). 이와 아울러 오바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로 상태에서 해방시키시고 그들로 하여금 옛 땅을 회복하여 거기에

거할 수 있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한다(15-21절). 이 점을 볼 때 오바댜서는 바벨론 제국에 망한 후에 실의에 빠진 유다 백성을 위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심 사상



오바댜의 예언 내용은 매우 간결하고 짧은 에돔 족속에 대한 한정된 심판처럼 보이나, 담겨 있는 의미는 심오하다.

하나님의 백성 유다에게 행한 에돔의 교만하고 악한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전 우주적인 심판으로 확대된다(15, 16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묘사하고 있다.
오바댜 예언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이다.(Hengstenberg)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에돔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하고 악한 이방인의 태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욜 3:19). 그러나 오바댜의 예언이 전적으로

미래의 예언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므로, 역사 가운데서 에돔의 행위와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다. 이 징계에 대한 이방인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온 우주의 심판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는 유다에 대해 방관하고 악한 행동을 가하는 그 자체 또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요소가 되는 것이다. 남은 자가 땅을 회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갱신이다.

오바댜의 이름은 주의 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오바댜서는 구약의 1285~1286쪽에 1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짧아서인지 잊혀지기 쉬운 오바댜의 묵시와 함께 오바댜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자.

오바댜서를 쓴 예언자 오바댜와 아합 왕 때 궁내대신으로서 일백 명 선지자들의 목숨을 구한 오바댜 외에도 다음의 열명이 있다.

(대상3:21)에 나오는 스룹바벨의 손자, (대상7:3)의 잇사갈 족속의 어른, (스8:9)의 에스라와 같이 돌아온 가족의 장, (느10:5)의 느혜미야와

동시대 제사장, (느12:25)의 문지기 가족의 장, (대상12:9)의 시글락에서 다윗을 따른 갓 사람, (대상27:19)의 이스마야의 아버지,

(대하34:12)의 레위 족 므라미 사람, (대상9:16)의 스마야의 아들, (대하17:7)의 여호사밧의 관리등 이다.
여기서는 (왕상18:3-16)에 나오는 아합왕(BC870-850)시대의 궁내대신, 오바댜에 대해 알아보겠다.

오바댜는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한 독실한 신앙의 인물이었다. 아합 왕은 영적으로 타락한 사람이었지만 오바댜를 궁내대신으로 삼았다.

아합과 오바댜는 종교적으로 대립된 관계였으나 오바댜의 성실함과 충성심이 아합 왕의 신복이 되는 조건이 되었다.

왕후 이세벨까지도 오바댜를 신임한 것을 보면 그의 인격과 신실함을 느낄 수 있다.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살해할 때 오바댜는 하나님의

선지자 1백 명을 두 개의 굴에 숨기고 음식을 날라다 주었다. (왕상18: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 인을 가져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
오바댜가 영적으로 맞지 않는 아합과 이세벨과의 관계 속에서도 자신을 죽이며 그 고통을 이기고 인내하지 않았다면 그 일 백 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이

모두 죽었을 것이며 그들을 통해 하늘의 복음이 전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오바댜는 신앙의 고난과 위험 속에서 초연하게 신앙을 지켰으며 엄청난 용기로 많은 선지자들을 구해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도 위기가 있다.

과거와 같이 육적인 목숨을 내놓을 일이 없다 해도 영적인 생명을 사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큰 것과 유명한 것만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세상이 되었다. 대학도 명문대만 대학으로 쳐준다. 회사도 대기업만 회사로 쳐준다.

운동경기도 올림픽과 월드컵은 알아주지만 아시안게임과 유니버시아드는 별로 인기가 없다.

엘리야는 크고 유명한 선지자였다. 그는 희대의 폭군 아합의 바알주의에 대항하여 여호와 유일주의,여호와 제일주의로 승리한 선지자였다.

그는 까마귀들이 아침과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물어오는 체험도 했다. 그는 사르밧 과부 집에서 그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체험도 했다. 그는 과부의 아들이 그의 기도로 회생하는 체험도 했다. 그는 갈멜산에서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여호와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체험도 했다. 변화산에 나타난 삼총사(모세 엘리야 예수님)에 엘리야가 들어있었다.
엘리야에 비해 오바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오바댜라고 하면 오,바다!로 생각할 성도도 있을 것이다.

당시에 아합왕도 오바댜가 여호와 제일주의자라는 것을 몰랐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전국과 외국까지 수배령이 내려진 유명한 선지자였지만

오바댜는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오바댜는 악어입같은 아합 왕궁에 근무하면서 여호와의 선지자 100명을 2개의 굴에 숨겨놓고

떡과 물을 공급해주었다. 생명을 걸고 여호와를 크게 경외한 것이다.
엘리야도 여호와의 종이었지만 오바댜도 여호와의 종이었다. 엘리야도 귀한 사람이었고 오바댜도 귀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엘리야만 보지 말고

오바댜도 보아야 한다. 우리는 엘리야같은 사람이 못 되어도 오바댜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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