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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최초에 누가,언제,왜 기록했을까?

안명애 2019. 2. 12. 10:20

성경은 최초에 누가,언제,왜 기록했을까?

성경은 책이다.우리는 이를 당연시한다.하지만 성경이 처음부터 책이었을까?구약 성경은 본래 구전으로 전해지던 유대 전승이었다.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기록되기 시작한다.UCLA의 월리엄 슈니더원드 교수는 성경의 탄생을 둘러싼 최대의 쟁점이'저자가 누구인가'가 아니라'언제 씌여졌는가'라고 말한다.어째서 그렁가?성경의 저자는 특정인이 아니라 유대 공동체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반면에 '언제 씌여졌는가'라는 물음에 구술 문화에서 문자문화로 이행하는 문명사의 대전환이 함축되어 있다.
글로 기록된 경전의 탄생은 인류의 종교 문화에서도 혁명적인 사건이었다.물론 이에 대한 저항은 거셌다.구전의 토라(율법)와 기록된 토라는 때로 대립하며 치열하게 경쟁했다.유대교에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주된 갈등 원인도 이 문제였으며,나사렛 예수와 제도화되기 이전의 초기 그리스도교 역시 구전의 가르침을 옹호했다.
도대체 고대 세계에서 무순 일이 일어났기에 예언자의 시대가 저물고 '기록된 말씀'이 경전화 되었을 까?이 질문은 성경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우리를 인도해줄 것이다.

"월리엄 슈니더원드는 이 시대 성경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즉 고대 이스라엘의 전승이 언제 기록되었는가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고대 이스라엘의 문자성과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이행을 철저히 논하면서 슈니더원드는 성경이 기록되었던 당시의 배경에 대해 폭넓은 문화적.역사적 질문을 던진다.이 책은 분명 성경학과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의 초석이 될 것이다."이스라엘 핀겔스타인(텔아비브 대학 고고학 연구소 소장)


돌판(하나님의 언약판)

돌판은 우리의 시선을 글의 신적 기원으로 되돌린다.야훼가"몸소 기록"햇다는 두 개의 돌판에 관한 내용은 히브리 성경에서 가장 관신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모세와 아론,그리고 이스라엘 장로 일흔 명은 시내 산에 올라 이스라엘 하나님을 실제로 뵈며,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돌판을 받는다.

이 이야기 출애굽기 24:9-18에서 소개된다.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일흔 명과 함께 올라갔다.
거기에서,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깔아 놓은 것 같으며,그 맑기가 하늘과 꼭 같았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치지 않으셨으므로,그들이 하나님을 뵈오며 먹고 마셨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너는 내가 있는 산으로 올라와서,여기에서 기다려라.그러면 내가 백성을 가르치려고 몸소 돌판에 기록한 율법과 계명을 너에게 주겠다."모세가 일어나서,자기의 부관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갔다.올라가기에 앞서,모세는 장로들에게 일러두었다."우리가 여러분에게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시오.아론과 훌이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이니,문제가 잇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들에게로 가게 하시오."모세가 산에 오르니 구름이 산을 뒤덮었다.야훼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엿새 동안 구름이 산을 뒤덮엇다.이렛날,야훼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이스라엘 자손의 눈에는 야훼의 영광이 ,마치 산꼭대기에서 타오르는 불처럼 보였다.모세는 구름 가운데를 지나고,산 위로 올라가서,밤낮 사십 일을 그 산에 머물었다."


이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조합인 한 무리의 이스라엘인(모세,아론,나답,아비후,이스라엘 장로 일흔 명)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연회를 열고 있는 모습이다.이 모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산 위에 오르는 것을 허용치 않고,하나님을 자연현상으로만 보았던 출애굽기19장의 계시와 대조를 이룬다.기원후 2세기경 아람어 번역본인 타르콤 네오피티Targum Neophiti를 보면 하나님을 실제로 본다는 내용을 신학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음을 알 수 잇다.이 아람어 번역서에서는 "그들은 야훼임재(세키나)의 영광을 보았고,제사를 드리는 가운데 즐거워했는데,마치 그들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것 같았다."라고 미묘한 변화를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사람들이 실제로 하나님을 보거나 함께 먹고 마신 것이 아니라,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이렇게 본문을 살짝 바꾸어 설명한 것은 후대 사람들에게 그 내용이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또 출애굽기24장의 본문이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시사한다.출애굽기 24:11에서 기묘한 소풍 장면이 묘사되고 나서,모세는 다시
산으로 올라가 돌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ㄷ게 된다.

이 돌판에 씌여진 내용이 무엇이었을까?이어지는 내러티브를 자세히 살펴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출애굽기25-31장은 주로 광야에서 야훼가 거하실 장막(성막)을 짓는 방법을 소개한다.돌판에 주어지는 출애굽기24:12에서부터 출애굽기31:18까지는 하나의 문학적 단위를 이룬다.이 단위는 시작과 끝을 연관시키는 수미쌍관법을 통해 명시 된다.이는 시작을 연상시키면서 마무리짓는 문학적 반복이다.따라서 출애굽기24:12에서 시작되는 내러티브는 맨 첫 절의 내용을 출애굽기 31:18에서 비슷하게 언급하며 끝난다.

[출애굽기24:12]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너는 내가 잇는 산으로 올라와서,여기에서 기다려라.그러면 내가,백성을 가르치려고 몸소 돌판에 기록한 율법과 계명을 너에게 주겠다."
...........(장막을 짓는 법과 안식일 명려에 관한 내용)..........
[출애굽기31:18]야훼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을 마치시고,하나님이 손수 돌판에 쓰신 증거판 두 개를 그에게 주셨다.

이 내러티브는 매우 강렬하고 감정을 고취시키는 의인화된 이미지와 함께 마무리된다.
출애굽기31:18에 따르면,하나님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손가락으로 돌판에 기록하셨다.이 묘사는 출애굽기32:16"그 판은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것이며,그 글자는 하나님이 손수 판에 새기신 글자이다."을 통해 더욱 공고화된다.그러나 돌판에 씌여진 내용은 무엇일까?우리는 출애굽기25:31장의 내용,즉 안식일에 관한 명령과 장막의 설계안이 돌판 위에 적혀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고고학적 비교연구는 장막의 창안과 설계가 상당히 고대의 것인을 알려준다.성경은 여기서 고대의 종교적 건축양식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이렇게 본문을 읽어내려가다 보면,두 돌판에 적힌 내용은 고대 이스라엘의 법규나 십계명이 아니라 장막과 그 내부 설비의 설계,그리고 그곳에서 예배가 이루어질 안식일에 관한 명령임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계시에서는 어떤 근거로 하나님이 친히 손가락으로 이 돌판에 기록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이에 대한 고대의 가장 유사한 사례는 2장에서 소개한 바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운명의 점토판'일 것이다.
운명의 점토판은 천지가 창조될 때 신이 그 위에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다.출애굽기31:18에서 신의 글쓰기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손수"라는 표현은 시편8:3(:야훼께서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야훼께서 친히 달아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봅니다.")에서와 같이 창조 과정에 대한 은유이므로,적절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로부터 신의 글쓰기가 천지창조에 기원을 둔다고 유추할 수도 있다.어쨌던 출애굽기 24:12나 31:18 어디에서도 모세가 산에서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이 돌판에 글을 기록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차라리 돌판 위에 내용이 미리 씌여져 있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후대의 유대 전승에서는 공공연히 토라가 모든 것 이전에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랍비들이 생각해낸 것은 아니었다.이는 토라가 이미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혜와 연관되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잠언8:22-30,집회서1:1-5)랍비들은 그저 이전의 해석이 잘 닦아놓은 길을 따라 걸어간 것뿐이었다.

여기서 다시 하나님이 손수 기록한 내용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자.돌판에 하나님이 손수 기록한 내용은 초기 이스라엘의 법규나 십계명이 아니라 땅 위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의 설계였다.이는 출애굽기 24:9-31:18을 보면 알 수 있다.모세에게 돌판을 주겠다는 약속 후에 내러티브는 장막을 짓는 데 필요한 다양한 절차를 설명하고,그 장막에서 안식일 예배를 드리라고 명령하면서 마친다.
금송아지 이야기로 잠시 곁길로 뻐졌다가(출32-34장)이어지는 출애굽기의 나머지 부분은 실제로 지어진 장막에 대한 묘사이다.사건이 최고조에 이르는 부분은 언약궤 안에 두 돌판(증거판)을 넣어 장막 안에 두는 대목이다.(출40:20-21)
바로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땅 위로 내려와 장막 안에 있는 보좌에 않으신다.출애굽기 25:22에서"내가 거기에서 너를 만나겠다.내가 속죄판 위,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할 모든 말을 너에게 일러주겠다."고 약속하셨듯이 말이다.
이느 돌판을 넣은 궤가 완성되고 장막 안에 놓여진 후에 비로소 토라가 주어졌음을 시사한다.장막이 완성된후,하나님은 강림하시어(출40장)장막 안의 처소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이렇게 읽을 때,토라는 기록된 글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처소에서 내리신 구두의 가르침이다.
만일 돌판의 내용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법규와 십계명이었다면,언약궤 안에 돌판을 넣어 봉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도덕적,법적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데 목적이 있는 돌판을 함부로 꺼내어 볼 수 없도록 단단히 봉하다니 말이다.그러나 돌판의 내용이 장막 건축을 위한 설계안이었다면,장막이 다 지어진 이상 그 임무를 다한 셈이고,하나님의 계시와 그 분이 직접 돌판에 새기신 설계를 통해 땅 위에 하나님의 처소가 지어진 증거로서 돌판은 궤 안에 넣어 봉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산 위에서 모세가 받은 계시란 무엇인가?
출애굽기24:12-31:18만을 놓고 보면,돌판에 새겨진 내용은 장막 건축을 위한 하나님의 지시였을 것이다.그러나 출애굽기 24장에는 기록에 관한 두 가지 상이한 내용이 함께 엮여 있다.신명기적 해석이나 후대의 해석적 전통을 배제한 채 이 24장을 읽을 때 모세가 기록한 것(24:4)은 정확히 무엇이고,하나님이 기록한 것(24:12)은 정확히 무엇인지 여전히 모호하다.
아마도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내용이 씌여졌을 것이다.하나님은 먼저 십계명(출21:1-17)을 말씀하신 다음 언약책(20:22-23:330의 계시를 내리셨다.신명기는 하나님이 손수 쓰신 것은 십계명이라고 여긴다.출애굽기24장에서 그렇게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아마도 신명기 학파가 그렇게 생각했다.

장막은 그곳에 거할 신이 직접 설계하는 것에 대하여 메소포타미아의 무헌과 성경의 달흔 부분에서 유사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역대기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위해 하나님이 전혀 지시한다는 개념을 적용한다.성전을 지을 권한을 솔로몬에게 넘겨주면서 다윗은'영감을 받아'거룩한 설계안에 따라 성전을 짓게 한다.역대기상28:11-12에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윗이 현관과 건물과 곳관과 다락방과 내실 속죄판 등의 설계도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주었다.또 성령께서 그에게 가르쳐준 대로 야훼의 성전 뜰과 주위의 모든 방과 하나님의 성전 곳광과 성물 곳관의 설계도를 주었다."

페르시아 시기에 지어진 역대기는"성령께서"다윗에게 성전의 설계도를 가르쳐주셨다고 말한다.이는 하나님이 친히 설계안을 가져야 했던 것처럼,예루살렘 성전도 그런 설계안을 가져야 했다.열왕기상 8:4은 장막이 성전 봉헌시에 성전으로 옮겨왔다고 말한다.이는 신의 처소가 장막에서 성전으로 옮겨졌음을 시사하는 것이다.성전 내부의 지성소는 장막의 특성을 일부 그대로 보여주며,특히 언약궤를 두는 곳으로서 매우 중요하다.후대의 전승은 장막이 성전 안에 있었다고 말한다.이는 특히 시편에서 잘 드러난다.(시26:8,27:4,61:4)

이스라엘 장막과 성전은 당시 다른 고대 국가들의 성전네 비하면 만들어진 면에서 귄위가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가령 바빌로니아 마르둑 신의 성전은 그 기원이 천지창조의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여기에 바치는 숭배를 이스라엘의 장막과 성전에서도 요구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모세의 지휘로 만들어진 장막은 다른 식으로 자신의 귄위와 유구함을 내세울 수 있었다.이 장막은 비록(에누마 엘리쉬에 나오는 바빌로니아 성전처럼)창조시 "하늘에서 내려온"것은 아니었지만,장막에서 드러지는 예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안식일 규례는 천지창조의 시기에 제정되었다.
안식일 규례가 장막 건축을 설명하는 부분 중간에 들어가 잇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출31:12-17)하나님은 "이것은 나와 이스라엔 자손 사이네 세워진 영원한 표징이니,이는 야훼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리셨기 때문"(출31:17)이라고 말하면서 이스라엘에게 이를 상기시킨다.땅 위에서 하나님이 거할 곳의 설계안이 적힌 신비스런 돌판에 안식일 규정을 포함시킴으로써 장막의 유구한 역사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언약궤

출애굽기25-31장의 장막 설계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돌판을 넣어둔 언약궤의 제조 과정이다.그런데 성경에서 베일에 싸여 있는 부분 중 하나가 언약궤의 소실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흥미롭다.

궤와 함께 돌판도사라졌다.

돌판을 들고 있는 모세

그러나 더욱 관신으 끄는 점은 언약궤와 돌판을 잃어버린 데 대해 성경이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언약궤의 소실과 관련하여,기원전 10세기 이집트 왕 시삭의 칩임의 원인으로 보는 견해부터 바빌로니아 왕 느브갓네살이 언약궤를 파괴했거나 가져갔다는 가정에 이르기가지 스많은 학설이 있었다.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앟기 때문에 해답을 찾아헤멜 뿐이다.고대 이스라엘보다는 오히려 현대에 할리우드에서 잃어버린 궤를 찾고자 훨신 더 열을 올리는 것 같다.
언약궤의 소실은 신명기적 기록자로 하여금 잃어버린 돌판에 적힌 내용이 십계명이었다고 주장하도록 하는 구실을 제공했다.

사라진 언약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문헌 분석에서도 중요하다.신명기에서 언약궤는 단 두 군데(신명기10:1-8,31:9,25-26 )를 제외하고는 자취를 감춘다. 이는 출애굽기에서 장막을 묘사하는 부분('궤'를 뜻하는 히브리어'아론'은 출애굽기에서26번이나 나온다)을 비롯해 이후 광야에서의 방황기,정복과 정착 시기,초기 왕정에서 언약궤가 두드러진 역활을 담당하는 것과 사뭇 대조를 이룬다.언약궤는 예루살렘 성전 건설시에도 중심 역활을 한다.(사무엘기하6,15.열왕기상2:26,3:15,8:1-210그러나 열왕기상1:8에서 솔로몬 성전을 하나님께 드린 후에 언약궤는 열왕기에서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언약궤는 이제 한물간 것처럼 보인다.언약궤를 중요하게 만든 요소(하나님의 임재)가 이제는 성전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다음의 예레미야서3:16-17은 언약궤에 들어 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때가 이르러서,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지면,아무도 다시는 야훼의 언약궤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나 야훼의 말이다.그것을 다시는 마음속에 떠올리지 않을 것이며,기억하거나 찾지도 않을 것이다.그것이 필요됴 없을 것이다.그때에는 누구나 예루살렘을 야훼의 보좌라고 부를 것이며,뭇 민족이 그리로,예루살렘계시는 야훼 앞으로 모일 것이다.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살지 않을 것이다."

왜 유다는 더 이상 언약궤에 대해 말하지 않는가? 왜 새로운 언약궤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인가?언약궤는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임재,특히 장막과 성전에 거하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상징이었다.이 본문은 예루살렘 성 전체가 언약궤와 성전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여기서 유다 백성들이기"이것은 야훼의 성전이다,야훼의 성전이다,야훼의 성전이다'하고 속이는 말을 너희는 의지하지 말아라"(예레미아서7:4)라고 경고했던 예레미야의 설교를 떠올릴수 있다.예레미야는 성전의 신성함이 유다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언약궤는 하나님이 성전을 보호하신다는 상징이자 약속이었다.예레미야는 성전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거부하지만,이는 오히려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서 성전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언약궤임을 암시한다.물런 여기서도 언약궤에 들어 있는 내용을 알려주지 않는다.그러나 그 내용이 십계명과'언약의 책'이었다는 일반적 견해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분명하다.

모세의 법과 언약궤를 연결시킴으로써,글로 기록된 모세의 토라는 장막과 안식일에 대한 일반적 통념에 의해 포장될 수 있었다.창세기에서 안식일 규례는 창조의 일부분이었으므로,장막과 토라 모두를 안식일 규례와 연관시킴으로써 그 유래가 창조 시기까지 거슬러올라간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약하자면,하나님이 두 돌판에 친히 기록하신 내용은 장막과 성전 건축의 설계안이었다고 여겨진다.이러한 종류의 기록은 대부분의 사람이 글을 몰랐던 문자문화 이전 사회에서 글이 맡았던 역활과 일맥 살통한다.그렇다면 모세에게 주어진 계시는 구두에 의한 계시였을 것이다.이는 초기 이스라엘의 상황에도 부합한다. 출애굽기 19-31장에서 가르침이 구두로 정해졌고,신이 돌판에 새긴 기록이 자신이 거할 처소의 설계안이었다는 사실은 상당한 고대의 개념이다.출애굽기19-31장은 글의 역활에 대해 고대 이스라엘의 관념을 반연한다.그러나 출애굽기 24자에 나오는 계시의 기록에 관한 내용은 종교적 정통성을 부여하는 문자화에 관심이 있었던 후대의 편집자들이 첨가했을 가능성이 크다.이 첨가 부분에서는 모세가 계시를 기록하여'언약책'과 동일시된다.그러나 이렇게 새로운 내용을 첨가함으로써 모세가 기록한 두루마리와 하나님이 기록한 두 개의 돌판의 관계를 명확히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다.이에 대해서는 신명기가 우리에게 답을 해줄 것이다.

호렙 산에서 기록된 두 번째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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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십계명 돌판

모세가 십계명이 적힌 두 개의 돌판을 받는 영화 장면은 신명기에서 따온 것이다.
신명기는'부 번째 법'이란 뜻이며,신명기의 내용은 이 제목에 잘 드러나 있다.신명기에는 이스라엘이 가난암으로 건너가기 직전 모세가 행하는 연설이 들어 있는데,약간 보완하여 글로 기록한 율법을 포함한 시내 산의 계시가 이 연설에서 다시금 길게 언급 된다.신명기4:13"그 때에 야훼께서 너희에게 지키라고 명하시면서 그 언약을 선포하셨으니,이것이 곧 그가 두 돌판에 손수 쓰신 십계명이다"을 시작으로,신명기에는 기록에 대한 언급이 반복해서 나온다.예컨데 신명기 5:22에는"야훼께서는 이 말씀을 구름이 덮힌 캄캄한 산 위 불 가운데서,큰 목소리로 너희 온 총회에 선포하시고,이 말씀에 조금도 보탬이 없이,그대로 두 돌판에 새겨서 나에게 주셨다"라고 나온다.신명기4-5장은 출애굽기 19-20장의 내용을 거리낌 없이 되풀이 한다.

이것이 신명기의 근간을 이루며,신명기 곳곳에서 (신9:10,10:24,17:18,27:8을 보라)직.간접적으로 출애굽기19-20장의 내용이 계속 언급된다.신명기는 굿ㄹ성과 문자성을 혼합한다. 그 골자는 이스라엘을 향항 모세의 고별 연설이다.이 연설은 야훼가 이스라엘과 맺은 조약의 일부로서 신의 계시를 상기 시킨다. 기본적으로 이 조약이라는 형식으로 인해 계시는 글로 기록될 수 있었다.

조약문은 고대 근동에서 전형적인 기록 형태였다. 조약문은 기원전 2000년대부터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되었으며,고대 근동에서 문자 기록이 얼마나 봊잡한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조약문이라는 기록 장르는 요시야의 개혁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다시 말해, 기록된 글이 권위를 가졌던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조약문은 싲들이 그 증인으로 내세울 정도로 위력이 있었다.이는 글이 마술적 성격ㅇ에 기인한다.학자들은 신명기의 문학적 양식이 기원전 681-기원전669년 앗시리아를 통치한 에살핫돈 왕의 봉신조약과 매우 흡사한 사실을 발견했다.

모세의 언약이 하나님이 주신 법과 그를 향한 맹세를 언급하는 반면,봉신조약은 정치적 약정에 관한 것이며 군주를 향한 것이다.그러나 이스라엘의 언약 예식은 에살핫돈의 조약과 형식상 매우 유사하다.가장 유사한 부분은 두 계약에서 모든 사람이 다 모여서 (신명기29:9-11,에살핫돈의 봉신조약6-7장,그리고 세피르조약)

이제 우리는 창세기에서 민수기까지 거의 찾아볼수 없었던 문자성이 왜 신명기에서 이처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지 질문할 수 있다.신명기는 토라의 문자성을 유대교의 주된 특징으로 만들었다.유대교를 책의 종교로 만든 것이 바로 신명기이다.출애굽기에서 토라는 구두에 의한 가르침을 일컫지만,신명기에서는 기록된 율법을 일컫는다.신명기적 해석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출애굽기를 읽을 때에만 출애굽기19-24장에 기록된 율법의 중요성을 볼 수 있다.신명기는 열왕기하 22-23장의 요시야의 종교개혁과 연관된다.이 종교개혁의 핵심이 되는 것은 '언약책'(열왕기하23:2,출24:7)이라 불리는 두루마리의 발견이다.

이 언약책이 요시야 종교개혁의 기반이 되었다.이러한 개혁이 신명기에서 주창한 종교적 정통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학자들은 성전에서 발견되어 문서에 입각한 종교개혁의 밑마탕이 된 이 두루마리가 어떤 형태로든 신명기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했다.앞의 5장과 6장에서,우리는 토라의 문자성이 실제로 기원전 7세기경에 중시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문자문화는 예루살렘의 도시화에 발캊추어 일어났다.문자문화의 확산은 기원전 7세기 유다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특히 권위 있는 문헌들의 출현을 비롯하여 유대 종교 관행의 중요한 변화를 이끌었다.따라서 기록된 글이 가진 권위는 종교적 비평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신명기에서 보이는 기록된 텍스트에 대한 강한 의존성은 신명기가 기록될 당시에 문자문화가 이미 깊이 뿌리내려 있었음을 말해준다.반대로,출애굽기의 계시는 당시 이스라엘 문화가 근본적으로 구술문화였음을 보여준다.신명기에서는 글이 토라의 계시에서 중심 역할을 하지만,출애굽기에서는 말하기가 중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요시야의 시기는 이스라엘의 영적 삶에서 극적인 전환점이 되었다.에스라가 제2성전기 초기에 책으로 된 토라를 널리 보급하여 알린 것은 "요시야의 시기에 이미 시작된 일을 강화 시킨것"에 불과했다.

지속적인 토라의 문자화

토라의 문자화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과정이었다.예를 들어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씌여진 요벨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계시된 말씀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이 책은 "네가 그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내가 율법과 명령을 기록한 두 돌판을 네게 주겠다"(요벨서1:1)는 언급으로 시작된다.이 책에서 기록하는 행위는 계시를 받는 데 매우 중요하며,반볻적으로 언급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이 산에서 내가 네게 말하는 모든 것을 마음에 두고 한 권의 책에 기록하라"(요벨서1:5)고 말하고,모세는 천사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계시를 기록하는데,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그리고 이 산에서 내가 네게 선포하는 모든 내용을 네 자신을 위해 기록하라.처음에 있었던 일과 마즈막에 있을 일들을......그리고그는 천사에게 '모세를 위해 처음 창조부터 나의 영원한 성소가 지어질 때까지 기록하라'라고 명했다."(요벨서1:26-27)
천사는 신의 돌판을 받고(요벨서1:29)말씀을 직접 전달하는 매게자가 된다.(
요벨서2:1"그 앞에서 천사가 모세에게 주의 말씀을 받아 말하기를,'창조의 모든 기사를 기록하라.....")
모세는 하늘에서 이미 천사들이 쓴 글을 땅 위에서 베꼈을 뿐이다.(요벨서23:32"너 모세는 이 글들을 기록하라.왜냐하면 이 내용이 영원한 세대들을 위해 증거로서 하늘의 돌판에 기록되고 정해졌기 때문이다")요벨서는 대강 창세기 1장부터 출애굽기20장가지의 내용을 따르고 있으며,하나님의 기록과 모세의 기록을 모두 언급하면서 마친다.

사람들에게 안식일 준수를 명하면서 요벨서는"내(모세)가 너희를 위해 때와 절기에 다라 필요한 법을 기록해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내게 주신 돌판에 기록되어 있듯이 말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안식일 법은 원본인 하늘에 돌판에 기록되어 있고,모세는 하나님의 법을 확장하고 응용하여 기록했다는 것이다.이런 식으로 요벨서는 출애굽기나 심지어 신명기보다 훨씬 세련되고 치밀하게 하나님이 직접 기록한 돌판이나 모세가 기록한 내용에 대해 설명한다.

토라의 문자화에 대한 또다른 예는 사해사본 중 하나인'성전사본'이다.이 문서는기원전 2세기 중엽 키르벳 쿰란 지역에 살던 한 교단에 의해 씌여진 것으로,사해 공동체의 글 가운데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3인칭에서 1인칭으로 말하는 이가 달라지긴 했지만,이 글의 내용은 대체로 신명기와 유사하다.신명기는 모세가 출애굽기의 경험과 시내 산에서 받은 계시의 내용을 요약하는 고별 설교로서 3인칭 시점으로 씌여졌다.
신명기에서는 오직 모세만이 시내 산 계시를 이야기 한다.그러나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적는다면 어던 모습일까? 성전 사본은 이 궁금증을 체워준다.
요벨서처럼 성전 사본은 시내 산 계시 중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미처 다 기록되지 못했을 부분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구전된 토라를 기원후 3세기경에 기록한 미슈나는 시내 산 계시의 문자화와 관련된 또다른 예이다.'아비들의 말(미슈나 아보트)'에는 '모세는 시내 산에서 토라를 받았고,여호수아에게 전해주었다.여호수아는 장로들에게,장로들은 예언자들에게,그리고 예언자들은 큰 공회의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미슈나 아보트1:1)고 기록되어 있다.원래 구전되던 토라가 글이 된 것이다.이는 구전된 토라가 왕자 유다라는 랍비에 의해 기원후 3세기경에 완전히 기록된 것과 비슷하다.구전된 토라에 베어 있는 구전의 이념은 토라가 기원후 3세기경까지 기록되지 못하도록 막았으나,결국에는 구전된 토라마저도 문자화되는 과정이 출애굽기에서 신명기에 걸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문자화하는 과정을 상기시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아마도 이것은 일단 구전된 내용이 기록되고 나면 그대로 굳어버리는 글의 고유한 성질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묘사했듯이 문자화의 과정은 단순한 역사적 발달 과정보다 훨씬 복잡하다.일차적인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고대 이스라엘에서 그리고 유대교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글과 구전이 맡았던 역활은 매우 복잡하다.연속성과 팽팽한 대립이 구전(구전된 토라)과 기록되 ㄴ토라 사이에 공존했다.이러한 대립관계는 고대 이스라엘 초기 유대교 성립 시기에 상이한 사회 공동체가 존재햇음을 반영한다."앞서 말했듯이,요시야와 그의 신명기적 개혁은 도시와 제사장 특권층에 대항한 '땅의백성(지방민)의 반잘이었다.이때 토라는"서기관들의 거짓된 붓"으로 기록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예레미아서8:8)반면에 구전(법규,미쉬파트.예"레미야서8:7)과 예언적 말(다바르)이야말로 참 지혜로 여겨지며 숭상되었다.(예레미아8:9)예언자 예레미야는 정통성을 획득하여 마음대로 권력을 휘들이는 종교적 특권층(거짓말 하는 서기관)이 사용한 기록된 토라가 사회에서 점차로 중요성을 더해가는 데에 이미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그러나 기록된 텍스트는 완성되었고,결국 구전을 대체하게 되었다.구전은 이전의 권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썼지만,문자화 과정에서 결국 뒷전으로 밀여날 수밖에 없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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