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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에게 계시받은 몰몬경

안명애 2018. 7. 19. 08:07

마귀에게 계시받은 몰몬경

어떤 교회, 혹은 단체를 이단이라 할 때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바로, 그들의 교리가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졌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단들은 그들의 교리를 성경 위에 세우지 않는다. 성경 위에 세운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 이단이다. 하물며 성경 외의 다른 책들을 경전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이단이겠는가?

몰몬교의 핵심은 바로 몰몬경에 있다. 사실은 몰몬경 외에도 <교리와 성약>과 <값진 진주>도 공식적인 경전으로 취급한다. 그러니까 성경을 포함하여 총 네 개의 경전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권위 있는 경전, 즉 그들 종교의 핵심은 몰몬경이다. 왜 그들을 “몰몬교”라고 하겠는가?

1. 몰몬경이란 무엇인가?

몰몬경은 1827년, 조셉 스미스 2세가 모로나이라고 하는 “부활한 고대 선지자”의 계시에 따라 산에서 발견한 금판들을 번역한 것이다. 몰몬경에 따르면, 이 모로나이라는 사람은 몰몬경의 일부를 기록한 사람이다. 총 15권으로 되어 있는 몰몬경의 여러 저자들 중 마지막 저자로서, 선지자 몰몬의 아들이다. 모로나이는 몰몬으로부터 모든 기록을 받고 그것을 봉인해 두었다가(A.D. 421년) 1400년 정도가 지난 후 조셉 스미스에게 기록을 넘겨 주었다 한다. 몰몬경이라고 해서 모두 몰몬이 기록한 것은 아니다. 몰몬이 기록한 내용은 얼마 되지 않으나, 앞선 모든 기록을 그가 편집하고 추가했기 때문에 몰몬경이라 불린다. 전체 몰몬경의 내용은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인데, 고대에 유대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온 후 그들이 겪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현현하시고 가르치신 일,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들 민족들의 흥망성쇠의 이야기들이다. 이들이 바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조상인데, 결국 인디언들의 역사인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들은 모두 허구이며, 증명될 수 없다. 오늘날 몰몬교도들은 나름대로 그 사실을 증명하려 애쓰지만, 몰몬경에 기록된 당시의 고대 사회적 모습들이 오늘날 인디언들의 고대 유적 가운데 드러난다는 정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구체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다.

조셉 스미스는 금판이 들어 있는 돌 상자를 처음 발견했을 때(1823년) 그것을 곧바로 손에 얻지 못했다 한다. 왜냐하면 악한 의도로 사용되면 안된다고 그 천사(모로나이)가 경고했기 때문이다. 조셉은 4년 후에야 그 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에도 그는 아무에게도 그 판을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를 받았다. 왜냐하면 악한 무리들이 이 판을 훔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셉은 영어로 번역한 후, 그 원래의 금판들을 고스란히 그 천사에게 넘겨 주었다. 그래서 지금 그 금판(즉 “원본”)은 하늘에 있다(?!).

참으로 신비로운 이야기다. 도저히 증명할 수 없는 말이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조셉은 세 증인, 혹은 여덟 증인을 제시하고 있지만(몰몬경 서문 참조), 여전히 이 일은 신비에 싸인 신화적인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성경의 전수 과정과 비교해 보자. 성경이나 몰몬경이나 그 원본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성경은 원본에서 지금 우리 손에 들린 성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본들이 있으며, 그 사본들의 전수 과정 또한 투명하게 제시될 수 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원본을 읽고 필사했으며,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 필사본들을 읽고 또 필사했고, 거기다가 번역까지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보존을 위해서 수많은 성도들을 섭리적으로 사용하셨다. 하지만 몰몬경은 천사가 잠깐 빌려 주어 번역케 해 놓고 가져갔단다. 조셉 스미스 일파 몇 명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 사실을 증명해 줄 수 없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 원본에 대한 사본들을 허락하지 않으셨을까? 금판을 필사할 만한 다른 금판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원본이 금판에 기록되었다는 것도 문제다. 신구약 성경 어떤 책도 금판에 기록된 것은 없었다. 모두가 파피루스 아니면 양피지였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모로나이는 그 옛날 금판에 기록해 놓았던 것인가? 또 몰몬이라는 선지자가 15권의 몰몬경 전체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편집”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편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본들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단 한 조각의 필사본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결국 몰몬경은 완전한 거짓 문서인 것이다. 조셉 스미스의 사주를 받은 몇 명의 거짓 증인들이 입을 맞춰버린 완전한 사기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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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믿을 수 없는 몰몬경의 이야기

몰몬경에 따르면, 그 안에 기록된 역사 기간은 B.C. 2500년에서 A.D. 421년까지이다. 여기에는 세 번에 걸친 신대륙으로의 이동이 있는데, 첫째는 바벨탑 사건 때 그에 동조하지 않아 언어의 혼란을 겪지 않은 민족이고, 둘째는 유다의 시드키야 왕 때 일단의 무리가 이주한 것이요, 셋째는 시드키야 왕의 아들 중 하나가 죽임을 피해 무리를 이끌고 이주한 것이라 한다. 이 중 둘째와 셋째 경우는 유대인이며, 그 중 둘째의 경우가 이 책의 핵심을 이룬다. 이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어떻게 개척하고 싸우고 한 이야기가 바로 몰몬경이다.

이 둘째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이 책에서는 “리하이 민족”이라 하는데, 이 민족에서 “니파이 민족”이 갈라진다. 이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으며, 아메리카 대륙에 현현했다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였고, 선지자들을 배출했으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서 “니파이인 열두 제자들”을 선임하기도 했다 한다. 그 제자들 중 셋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낙원에 들어갔다 한다. 몰몬경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전개해 나가는 가운데, 성경에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예언들과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말씀들”을 담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소위 “말씀들”이 너무나 조악하게 성경을 모방해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몰몬경은 신구약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훔쳐다가 삽입해 놓았다. 예를들어 니파이전서 20-21장은 이사야 48-49장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았고, 제3니파이서는 사복음서의 내용을 여기저기서 가져다 붙여 놓았다. 특히 12-14장은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설교를 거의 그대로 베껴 놓았다. 그 외에도 예수님께서 침례받으신 것, 여러 가지 이적들과 설교들을 행하신 것들이 성경의 내용처럼 그대로 반복된다.

여기서 우리는 조셉 스미스가 자기의 종교를 얼마나 성경적으로 꾸미고자 했는지, 그의 강박관념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도 은사주의자들 중 환상을 본다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환상이 사실이라고 속이기 위해 성경에서 몇 구절을 차용하곤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저 환상은 성경적이라 생각하여 사실로 믿어버린다. 마찬가지로 조셉 스미스도 자기의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속이기 위해 성경 구절에서 많은 말씀들을 차용해 몰몬경에 삽입해 놓았다. 하지만 그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면, 자기의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성경 구절들을 왜곡, 즉 변개시켜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미 대륙에 현현해서 “니파이인들” 및 그 이주자들의 후손들을 만났다고 할 때에도, 공생애 사역과 비슷한 사역을 하셨다고 기록한다. 예들들면 열두 사도들을 새로이 임명하시고, 그들 중 셋에 대해 특별한 위치를 부여해 주시는 것을 몰몬경에서 보면, 누구라도 성경에서 비슷한 상황을 따 왔다는 것을 단숨에 알 수 있다. 그만큼 몰몬경은 조셉 스미스가 자기의 종교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상황을 위조한 책인 것이다.

이들은 왜 성경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몰몬경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그들은 몰몬경의 가치를 에스겔 37장에서 찾는다. 에스겔 37:15-28에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두 막대기”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에스겔은 한 막대기에 “유다와 그의 동반자 이스라엘의 자손을 위하여”라 쓰고, 다른 막대기에는 “요셉, 즉 에프라임의 막대기와 그의 동반자 이스라엘의 온 집을 위하여”라고 쓰고 그 두 막대기를 합친다. 이것을 몰몬교에서는 성경과 몰몬경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유다의 막대기가 성경이라면 이스라엘의 막대기는 몰몬경이라는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가 책을 의미했다는 독특한 해석을 추가하면서 말이다. 몰몬경이 19세기에나 발견된 것은 이 마지막 때에야 비로서 이 두 책이 하나가 된다는 에스겔의 예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본문은 이 두 막대기가 유다와 이스라엘 왕국을 의미한다고 분명하게 해석해 주고 계신다. 그리고 이 두 왕국이 합쳐질 때는 다윗 왕국으로 부활하게 될텐데, 그것은 그들이 쫓겨났던 땅으로 돌아올 때 있을 일이라고 에스겔 37장은 분명히 말씀한다. 그들은 몰몬경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이처럼 성경을 엉뚱하게 적용하는데, 심지어는 요한복음 10:16에서 『또 나에게 이 양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있어 내가 그들도 데려와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다른 양들”이 바로 미 대륙의 유대인 후손이라고 해석한다.

요셉 스미스는 자신의 위작 몰몬경이 분명히 배척당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예 몰몬경 안에다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 놓았다.

​“하나의 성경, 우리에게는 하나의 성경이 있으니 우리는 더 이상의 성경이 필요하지 안다 말할 너 어리석은 자여...”(니파이후서 29:6).

​성경이 위대한 것은 그 안에 내적 증거가 충분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적 증거가 전혀 없는 몰몬경을 믿도록 하기 위해 조셉 스미스는 억지로라도 믿으라고 이런 구절을 써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얼마나 가련한 몸부림인가?

3. 마귀들린 자의 사기극

몰몬경은 조셉 스미스가 철저히 조작해 낸 위조 문서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대로 모로니라는 천사에 의해 계시를 받은 것이라면, 그 천사는 천사가 아니라 마귀이다. 사실상 그는 악령에 이끌려 몰몬경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모로니의 방문을 받은 후의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다.

“잠시 후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평상시대로 해야 할 일을 하러 갔다. 그러나 다른 때처럼 일을 하려 하였을 때 나는 기력이 너무나 소진되어 전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있던 밭의 울타리를 지나려 하였을 때, 완전히 기진하여 땅에 쓰러졌으며,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다.”(<몰몬경> 서문 중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증언」, ⅺ)

조셉은 자기가 무슨 다니엘이라도 된 듯이 흉내내고 있다(단 8:27). 다니엘은 자기 민족의 고난에 대한 환상을 받고 괴로워한 것이지만, 환상을 본다는 수많은 은사주의자들의 경험처럼 조셉의 경험은 사실 마귀들린 자의 경험이다. 은사주의자들은 종종 어떤 영이 자기 몸을 주체할 수 없이 만들었다는 간증(?)들을 많이 하는데, 조셉의 경험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쓰여진 몰몬경이니 그 내용은 얼마나 비성경적 교리로 가득찼겠는가?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비성경적 교리는 소위 말하는 “침례에 의한 중생”과 “행위 구원” 교리이다. “이는 너희가 들어가야 할 문이 회개와 물의 침례요, 그 후에 불과 성신에 의하여 너희의 죄사함이 임함이라”(니파이후서 31:17). 재미있게도 몰몬교에서는 유아 세례를 반대한다. 이유인 즉, 유아들은 죄가 없기 때문에 침례로 죄를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인들은 죄사함을 위해 반드시 침레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도 의를 이루기 위해 침례를 받았는데 하물며 우리가 침례를 받지 않으면 의롭게 되지 못한다 하며, 물침례와 불침례와 성령 침례를 받은 후 부인하게 되면 “알지 못했던 것이 더 나았으리라”고 말한다(니파이후서 31장). 그래서 행위로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기록한다. 물론 이러한 비성경적 교리는 몰몬교가 아니더라도 카톨릭, 캠벨파(“그리스도의 교회”)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조셉은 자기가 성경을 읽으면서 오해했던 비성경적 교리들을 “경전화”시켜놓기까지 했다. 세상에 이러한 사기극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의 사기극은 금새 들통난다. 이같은 침례 교리는 제시해 놓은 책은 “니파이후서”인데, 이 책에 따르면 이 니파이라는 사람은 앞에서 말한 두 번째 이주자, 즉 시드키야 왕 때 이주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해당 본문에서는 이 일을 B.C. 559-545년경으로 제시한다. 이때는 70년간의 포로 기간 중이다. 말하자면 에스겔이나 다니엘이 활동하던 때이며, 아직 학개나 스카랴는 등장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의 침례에 대한 구체적인 예언이 등장한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도 제시하는 등, 요한복음 1장이나 마태복음 3장 사건을 자세히 묘사한다. 심지어 B.C. 600-592년경의 사건이라는 니파이전서 11:33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임당하시는 것까지 환상 가운데 “예언”해 놓고 있다.

아무리 예언이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 예레미야와 동시대 사람인 니파이가 얼마나 위대한 선지자이기에 신약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예언하는가? 그는 심지어 교회 시대의 박해까지도 예언한다. 예언의 속성을 말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아마도 이러한 내용을 읽는 몰몬교도들은 “예언의 위대함”에 감탄해 마지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약과 신약은 엄연히 다르다. 신약 교리는 구약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구약 시대의 누구도 교회를 알 수 없었다. 십자가의 희생은 예표로만 제시되었지, 결코 구체화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피흘려 세상의 죄들을 제거하시는 것은 신약적 교리이다. 이것은 메시야께서 그의 백성 유대인들에게서 거절되고 온 세상의 구주로 제시되는 신약적 사건이다. 그것이 왜 구약적 경륜 한 가운데에 등장해야 하는가? 그것도 이스라엘이나 바빌론 땅에서가 아닌 미 대륙에서 말이다. 미 대륙에 전해진 이 메시지가 온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그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러한 엄청난 사건을 제시해 주셨겠는가?

이것은 분명 예언이 아니다. 만약 이러한 예언이 그때 이래로 계속 전해졌거나, 그 기록이 어떠한 형태로 전수되었다면, 그래서 당시의 사람들이 이 예언을 기다렸다는 증거가 있다면, 이것은 예언이다. 하지만 그런 증거는 전혀 없다. 무릇 예언이란 사건이 발생되기 훨씬 이전에 제시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몰몬경의 “예언”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제시되지 않았다. 그리고 19세기나 되어서야 공개되었다. 누구라도 성경을 통해 신약의 사건을 다 알고 있는 시대에 말이다.

시대에 대한 이같은 잘못된 인식은 “주의 만찬”에 대한 교리에서도 보인다. “모로나이서”는 A.D. 401년 이후 사건의 기록이라는데, 이때에야 비로서 빵과 포도주에 대한 방법이 정해진다. 왜 이때에야 전해질까? 주전 600년 전에 십자가까지 예언한 책에서 말이다. 주의 만찬은 십자가의 희생에 따라 주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새 언약의 피를 상징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 언약은 십자가에서 맺어졌다. 그러나 왜 몰몬경에서는 새 언약이 성취된 한참 후인 401년에서야 비로서 그 규례를 정하는가? 미 대륙에서는 신약 시대가 400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는가?

이처럼 아무것도 맞지 않는다. 모든 기록이 역사적인 증거도 없고, 교리적인 성경적 뒷받침도 없다. 다만 신구약 성경에서 많은 구절들을 차용하여 성경 비슷하게 보이려고 조작한 것뿐이다. 조셉이 발견했다는 바, 그 금판은 개정된 이집트어로 되어 있었다 한다(몰몬서 9:32).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즈텍과 잉카 문명을 이룬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이집트어를 사용했다는 놀라운 역사가 밝혀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긍정하는, 아니 암시라도 하는 유적은 하나도 없다.

결국 몰몬경은 마귀에게 사로잡힌 한 사람이 마귀와 접촉하여 얻은 정보로, 자기의 이단 교리를 절대화하기 위해 성경과 고대 전설을 참조하여 만든 위조 문서일 뿐이다. 이러한 일을 이룬 조셉 스미스 2세는 희대의 사기꾼이며, 모든 몰몬교도들은 그의 거짓 교리에 속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한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그들의 거짓 교리들을 비판하며, 그들에게 참되고 유일한 길인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