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앙인물

W. J. Hall : 홀 (2대에 걸친 부부의사 선교사)

안명애 2017. 6. 4. 18:05

1. 서론
평양에서 의료 선교를 하던 제임스 홀은 과로가 겹쳐 말라리아에 걸렸다. 병세가 심하여 서울에 있는 아내 로제타 홀에게 가기 위하여 대동강을 따라 40마일쯤을 내려가서 배를 탔다. 제물포에 도착했을 때 발진티프스가 발행하였다.

1894년 11월 19일 서울에 도착한 소식을듣고 로제타가 아들셔우드를 안고 뛰어 나갔을 때 홀은 혼자 서지 못할 정도로 위급하였다. 열은 화씨 105도를 오르고 있었으며 그 다음날 밤에는 갓난 애기처럼 용변을 가리지도 못하였다.

11월 24일 석양이 물들 무렵 그는 예수님의 품에 안겨 고요히 잠들었다. 영원한 안식일에 다시 깨어날 때까지 잠자기 위해... 그는 아내에게 두 손을 잡힌 채 조용히 떠났다. 이것은 로제타 홀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에 남편의 임종을 그린 대목이다.


2. 출생과 성장배경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1860-1894,한국명,忽,혹은 賀樂은 카나다 출신 미감리회 의료선교사이며 목사다. 몬타리오주 글렌 뷰엘(Glen Buel)에서 장로교인이며 석공인 죠지 홀의 맏이로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교회에 다녔으며 14세때 거듭나는 체험을 하였다. 1881년 아덴(Athen)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자격증을 받아 2년간 교사로 일하였다.

1885년 퀸즈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중도에 뉴우요오크의 벨레뷰(Bellevue)병원 의과대학으로 옮겨 1889년 이 학교를 졸업하고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하자마다 곧 미감리회에서 추천하는 뉴우요오크 빈민가 선교사업에 참여하였는데 이곳에서 셔우드(Rosetta Sherwood)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이들은 한국 의료선교사로 파송되어 1892년 6월27일 한국에서 결혼하였다.


3.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국에서의 활동
1891년 12월 내한한 홀은 다음해 3월 존스(G.H.Jones)와 함께 고양,개성,서홍,평양,의주까지 의료순회여행을 떠났다. 어느날 여인숙을 찾았지만 방이 얼마나 비좁았던지 누울때 닥터홀은 발을 문밖으로 뻗어야 할 지경이었다. 고양에 도착하니 외국인 의사가 왔다고 환자들이 몰려왔다. 의사가 아닌 존스는 이때의 광경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내가 동반한 의사에게서 성자다운 정신세계를 발견한 건 그때 였다. 병에 고통받는 시골사람들을 치료해 준다는 그 자체가 그에겐 대단한 기쁨이었다.

1893년 노블(W.A.Noble)과 함께 다시 평양지방을 순회하였고 이때 평양 서문통에 기생집을 구입하여 이곳을 병원과 선교센터로 삼았다. 1894년 1월 가족을 이끌고 평양으로 이주하여 병원,학교,교회사업을 시작하였는데 학교는 광성학교,교회는 남산현교회의 전신이다.

기독교에 불만이 가득한 평안감사가 초기신자인 김창식을 감옥에 집어 넣고 사형에 처하고자 하는 사건이 있었다. 새벽에 어떤 사람이 창식이의 집 창을 두드리며 닥터 홀이 보낸사람이니 문을 열어달라고 하여 문을 열자 포졸들이 들이닥쳐 잡아 갔다. 그는 매를 맞고 칼을 쓴채 죽을날만 기다리고있었다.

홀은 서울의 스크랜톤에게 이 사건을 알려 영국과 미공사관을 통하여 간신히 풀려나왔다. 김창식(金昌植 1857-1929)은 1901년 감리교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홀의 아들 셔우드 해주결핵병원을 운영하고 있을때 만났으니 홀 일가와는 2대에 걸쳐 친분이 있게 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 도시 가까이에 있는 시체들은 대개 흙으로 덮어 놓았으나 좀 떨어진 곳에는 그대로 널려 있었다. 스무명 이상의 시체들이 총에 맞아 죽은 상태 그대로 층층히 쌓여있고 수배명의 사람들과 말들이 수백야드의 띠를 이룬 곳도 있었다.

감리교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은 삽시간에 군대정용병원이 되었다. 전투에서 부상당한 병정들이 소속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때 혹ㄹ은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였는데 닥터 스크랜톤은 그때의 전경을 이와같이 기술하였다.

지금 닥터 홀은 간호원 약제사,안내역까지 혼자 다 맡고 있다. 그는 환자를 돌보는 타고난 재능이 있다. 대개 사람은 복잡한 일을 할 때면 혼동하는 예가 많은데 그는 지칠줄 모르게 일하면서도 정확하였다.

요즘 그는 서울의 병원에서 쉬지 않고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어느날 진찰실이 환자들로 가득차 정신이 없을때 그가 한 말은 잊혀지지 않는다. 닥터 "나는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한평생을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도우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닥터 홀은 환자들을 치료할 때 사랑과 동정심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이 비결로 현실에서 기적을 낳듯 치료효과를 낳는다.

1891년 12월에 한국에 와서 1894년 11월에 죽었으니 그가 한국에서 일한 기간은 만 3년이지만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가 갔다. 로제타는 1892년 6월에 결혼하여 2년 5개월만에 사별하였는데 선교여행 또는 서울과 평양으로 따로 떨어져 있던 시일을 감하면 함께 있었던 시간은 얼마되지 아니한다.

홀은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1951년 미국 뉴저지에서 죽은 로제타 홀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화장하여 그 재를 남편과 먼저 죽은 딸 곁에 묻었다. 어려서 죽은 홀의 혼자도 이곳에 매장하였으니 한 곳에 4사람이묻혔고 아들 셔우드 홀은 자기가 죽으면 함께 묻어달라고 벌써 부터 유언을 하고 있었다.

홀의 아들 셔우드 홀이 1978년 쓴<청진기와 함께 아시아 한국에서>(With Stethoscope in Asia:Korea,1984년 김동열이 닥터 홀의 조선회상이라는 제목으로 옮겨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표지에 "1890-1940 까지 '고요한 아침의 땅'에서 2대에 걸친 부부 의사선교사 팀의 인간 승리와 비극"이라는 간추린 기사가 있다. 제임스 홀을 논할 때 그의 아내 로제타 홀과 아들 셔우드 홀,며느리 메리안 홀을 빼어놓을 수 없다.

1894년 11월 27일 노블목사의 주례로 배재학당에서 제임스 홀의 추도식이 있었다. 이 행사를 마친 홀 여사는 한 살된 셔우드 홀을 데리고 뉴우요오크주 리버티에 있는 친정으로 돌아갈 차비를 차렸다.

그녀는 미국에서 평양의 홀 기념병원을 세우는데 보탤 기금을 만들려고 <윌리암 제임스 홀,의료선교사의 생애(The Life of Rev,William James Hall,1897>)를 편집하여 발행하였다. 시동생 클리포드 홀에게 이 책의 카나다 판매업무를 주고 책값은 병원 설립기금으로 보내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평양에 세워진 병원이 유명한 기홀(紀忽)병원이다. 한편 뉴우요오크 맹인교육학원 원장 웨이트(W.B. Wait)에게 점자를 배웠다.

병원에서 조수로 일하던 김점동(세례명 에스터)를 박 유산과 결혼시켰는데 홀은 그녀의 이름을 에스터 박 또는 에스터 김 박이라고 하였다. 에스터 박은 홀 여사와 함께 미국에 가서 의학공부를 하기를 희망하여 함께 가서 의사가 되도록 뒷바라지를 하여 주었다. 에스터 박은 돌아와 감리교회에서 열심히 의료행위를 하였으니 그녀가 한국 최초의 여의사이다. 1897년 남편의 사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다시 한국에 온 홀여사는 맹인교육(한국 최초로 점자교육을 실시),병원사업을 하다가 1935년 귀국하였다.


4.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은 셔우드 홀
셔우드 홀은 18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의사이며 한국에서 결핵퇴치운동에 헌신하였고 특히 크리스마스실 창시자로 유명하다. 그는 한국에서 성장하였고 미국에 가서 터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재학중 의사가 된 메리안(Marian Bottomly)과 결혼하여 1926년 부부가 함께 내한 해주구세주병원 원장으로 부임한후 1940년 일제가 간첩의 누명을 씌우고 강제 추방할 때까지 의료사업을 계속하였다.

그는 한국을 떠나 선교본부의 명을 따라 인도 마다(Madar0의 마다유니온요양원 원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역시 결핵퇴치와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였다.

1963년 은퇴하여 현재 카나다 리치몬드에서 부부가 함께 살고 있다.
1984년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국민복지향상에 이바지한 바가 인정되어 모란장 훈장(520호) 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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