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부활한 그리스도의 몸이다(엡1:23, 골1:24절). 이 때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인 신자들의 지역적 그리고 인격적 모임이다(고전1:2절). 다시 말해 교회는 근본적으로 건물이 아니다. 목회자는 교회란 외형적 몸이 아닌 그 몸을 구성하는 지체들인 신자들을 위해 사역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교회란 몸은 그 자체를 위하지 않는다. 몸은 존재 목적을 갖는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몸은 활동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만증에 걸려 결국 몸이 망가진다. 그럼 교회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사역은 처음부터(마4:17, 막3:2절) 중간(마13, 25장) 그리고 마지막까지(행1:3절) 하나님 나라를 목표했다. 당연히 그의 몸인 교회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하고 활동해야 한다.
교회 건물은 성도들의 모임을 위한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모임은 예배, 양육과 교제를 제일 먼저 우선한다. 그 다음 선교를 포함한 전도와 자선을 위한다. 전자(前者)가 잘 되어야 후자(後者)도 가능하다. 교회 건물은 전자의 활성화를 위한 범위 내에서 갖추어지면 충분하다. 즉 인격적 모임과 그 목적이 일차적이며 비인격적 장소는 부차적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현대화란 명목 아래 행해지는 지나친 외형적 투자는 성경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해친다. 목숨보다 음식에 그리고 몸보다 의복에 더 몰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양적 성장을 위해 질적 성장이 희생된다. 세계적으로 큰 50 개의 대형교회들 중 절반이 한국에 있지만 한국 교회의 영적 수준은 지극히 낮다. 이것이 외형적 교회성장제일주의의 폐해를 거꾸로 잘 증언한다.
많은 목회자들은 대중적 목회와 설교에 의존하는 양적 성장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가능한 한 큰 모임 장소가 필요하다. 그곳에서 일주일 2-3번의 집회를 한다. 투자에 비해 효율이 너무나 낮다. 이 이외 목회자와 신자들 사이 인격적 만남에 근거를 둔 교제, 양육과 훈련이 불가능하다. 이를 고려한다면 300명 정도의 작은 교회가 가장 이상적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양적 성장을 위한 건물 투자를 포기하고 교회의 분립 내지 분산에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이 명한 목양 명령(요21:12-17절)이 인격적 만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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