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기원전 1900년경,메소포타미아의 고대도시 우르에 살던 아브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세기 12:1~2)
5천년전 인류 최초로 문자를 발명하고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수메르문화의 중심지 우르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아브람은
이 불가사의한 음성에 이끌려 우르를 떠났다.
오랜 여행끝에 아브람이 닿은 곳이 지금의 이스라엘땅이다.
아브람은 그 뒤 하나님으로부터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아브라함의 자취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세겜 헤브론과 브엘세바다.
세겜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장막을 친 곳이며,헤브론은 그가 기근을 피해 애굽에 갔다 온 뒤 장막을 치고 아내 사라를 장사 지낸 곳이다.
그러나 이 두지역은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으로 편입돼 외국인의 접근이 통제되고 있다.
접근할 수 있는 곳은 브엘세바.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암양 일곱마리를 주고 우물을 확보해 정착한 후 이삭과 야곱 등 3대에 걸쳐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곳이다.
예루살렘을 출발,끝없이 펼쳐지는 황토색의 유대광야를 약 1시간30분간 달려 브엘세바에 도착했다.
`일곱 우물,혹은 생명의 물'이란 뜻의 브엘세바는 모래태풍이 부는 네게브사막의 중심에 있었다.
겨울인데도 남쪽으로부터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한번 폭풍이 일면 30m 앞도 보기 힘들다는 강렬한 모래태풍이 취재진을 맞았다.
그 옛날 아브라함도 이 모래태풍을 뚫고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했다.
인구 20여만명의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다.
현대식 고층건물과 자동차의 물결이 낙타를 몰며 수천년전의 생활을 답습하고 있는 베두인의 시장과 혼재,대비와 조화를 이룬다.
시 중심부에 아브라함이 정착하기 전,천막을 치고 생활할 때 판 우물 터가 남아 있다.
이 우물은 오스만터키시대까지 사용됐다.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2㎞쯤 가서 정착했다.
텔 브엘세바가 바로 그곳이다.
입구에는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싸우지 않기로 약속하고 판 우물이 있다.
우물은 매우 깊었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자 차가운 물이 담겨 올라왔다.
4천년전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이 마셨을 물에 손을 담그자 영겁의 세월이 순간처럼 느껴진다.
텔 브엘세바는 기원전 8세기경 유대의 히스기야왕 때 재정비돼 4백여명의 주민이 살았으며,기원전 701년에 아시리아 왕 산헤립에 의해 파괴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주거지는 히스기야왕 때의 것이다.
성서에 나오는 지하집의 모습도 남아 있다.
성벽은 성안의 집과 붙어 있어 여리고성에서 기생 라합이 여호수아의 정탐꾼을 쉽게 탈출시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텔 브엘세바는 페르시아시대에 군인들의 주둔지와 식량창고로 이용되었으며 그리스시대에는 사원이 들어섰다.
파괴되었던 주거지 위에 헤롯 왕이 성을 재건했으며,비잔틴시대에는 사람들이 현재의 도시쪽으로 옮겨 살았기 때문에 1969년 발굴될 때까지 묻혀 있었다.
텔 브엘세바의 전망대에 올라서자 끝없는 광야가 눈앞에 펼쳐졌다.
멀리 네게브사막에서는 희뿌연 모래바람이 일었다.
우물 앞쪽 언덕 밑으로 마침 줄지어 지나가는 낙타떼가 아브라함의 이주행렬을 보는 듯한 환상을 자아낸다.
아브라함은 귀하게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곳에서 그를 데리고 유대광야를 거쳐 모리아산(예루살렘)으로 갔을 것이다.
광야를 바라보면서 그 옛날,아내가 될 리브가가 하란에서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이삭의 모습과 들판에서 사냥하던 에서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브엘세바는 사라의 여종 하갈과 그의 소생 이스마엘이 쫓겨나 사막으로 향하면서 잠시 들렀던 곳이며,이삭이 야곱을 에서로 잘못 알고 복을 내려준 곳이기도 하다.
또 요셉이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어 아버지 야곱을 모셔 갈 때 야곱이 마지막 잠을 잔 곳도 바로 브엘세바다.
하나님에 이끌려 가나안에 온 이브라함은 이곳에서 숨을 거둔 뒤 헤브론에 묻혔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히브리민족의 조상이 되었으며,열국의 아버지가 되어 아랍인들은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선조로 받들고 있다.
뿌리를 같이 하면서도 히브리인들과 아랍인들은 오늘도 서로를 원수 취급한다.
제3의 1000년,2000년대에는 `형제의 화해'가 가능할까.
한국컴퓨터 선교회에서 스크랩 / 글 이승한 / 사진 곽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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