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하는 일들을 흔히 ‘사역’(使役, ministry,헬라어의 διακονος)이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시켜서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사역자는 종 διακονια, 그리스도의 지시에 따라 수행하는 섬김을 의미합니다.
‘건강한 교회, 성숙한 교회, 참된 교회’는 균형잡힌 교회이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의도대로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제도적 교회는 주님의 요구에 순응해야 합니다.
1. 예배 λειτουργια 의 기능입니다.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서의 예배는 계승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을 찬양하고(시 150:1)
• 신령과 진정의 예배로(요 4:23-24, 롬 12:1-2)
• 두려움과 존중히 여김으로(삼상 2:30하)
이 예배는 세상 끝날까지 계승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언제나 주님과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게 바로 예배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주님을 즐거워하며 주님의 임재를 즐기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규칙적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히브리서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히10:25)고 경고했습니다.
예배에서 지체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다양하게 고백하고 표현합니다.
예배는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삶의 예배가 중요합니다.
오늘의 예배는 불신자에게 초점을 맞추려 하는데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전도는 불신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지만 예배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바른 예배의 원칙은?
첫째, 개인적 예배 -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삶의 예배가 필요합니다(롬12:1,2)
둘째, 공적 예배 - 예배를 위해, 설교자를 위해, 예배에 참여할 지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참석해야 합니다.
넷째, 예배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다섯째, 헌금은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질을 드림으로 우리는 전인격적인 예배를 경험합니다.
찬송과 기도가 포함됩니다.
2. 선교 μαρτυρια의 기능입니다.
케리그마(kerygma) 말씀의 가르침과 복음전도(행5:42)로서 케리그마는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입니다.
말씀이 시들고 복음전파가 사라진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가르침(Teaching)이 교회 공동체 내부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것이라면 복음 선포(Preaching)는 교회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 들이기 위한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 안에는 안으로의 가르침과 밖으로의 외침이 왕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하나님이 지상에 교회를 주신 이유가 뭡니까?
천국 확장을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천국 확장을 위해서 반드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전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분명한 목적은 복음을 전파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참교회가 아니며 전도하지 않는 교인은 참 교인이 아닙니다.
복음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전해야 하며(눅15:1-32), 소외된 영혼들과(눅18:9-14), 불쌍한 죄인들에게 반드시 전파되어야 합니다.
19세기 이후 교회는 선교의 재발견으로 마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사35:5이하, 61:1이하)를 인용하며 해방의 신학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분부로 주신 말씀을 보면 교회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분부하셨고, 행1:8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참 교회는 전도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전도는 참 교인에게는 주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주님의 명령에 즐거운 마음으로 응해야 합니다(요14:15). 전도는 선택 문제가 아니라 복음전도를 우선순위를 두고 나아가야 하는 주님의 분부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전도자들을 후원하십니다.(마28:20).
어떻게 전도해야 합니까?
첫째,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둘째, 모든 족속에게 열려 있어야 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째, 회심자들을 제자로 삼아야 합니다.
교회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는 일, 제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는 일에 동참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3. 교육 διδασκαλια 또는 μαθητεια 의 기능입니다.
교회의 기능은 믿는 자들을 양육하고 인도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승천하시기 이전에 이 교회의 설립을 위한 기초작업을 완성하셨습니다.
교육 Educatidn이란 라틴어의 “인도하다,끌어내다”등의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육학에서 말하는 교육이란
1)성장 발달을 돕고,
2)사회에서 공동 생활을 할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3)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문화 전수적 사명과,
4)인간의 양심을 일깨우는 인간됨의 훈련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반 교육학의 측면에서 볼때, 기독교 교육이란
1)신앙의 성장을 돕고,
2)신앙공통체인 교회 생활에 적응하게 하고,
3)기독교 문화를 창달하여 그 문화를 후세대에 전달하게 하고,
4)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을 통해 전적으로 타락하고 무능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케 하여 주님을 의지하고 사는 삶과 그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이 모인 곳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교제가 있는 교회라면 교회의 5대 기능인 복음전파, 교육, 예배, 교제, 그리고 봉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 5가지를 가리켜 교회의 본질적 기능이라고 하며 모두 교육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행해지는 설교와 예배, 성경공부 등 기타 모든 것이 교육적 기능을 갖는 것이므로 교회는 교육의 필요성 증대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교육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고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들이 교육적 기능을 회복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두말할 나위 없이 교육적 기능입니이다.
그러나 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올바른 신학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교육은 창조된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진 것을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초자연적 계시에 의존해서 인간을 구원시키는 계시신학에 근거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일반 교육에서 가르치는 바와는 다르게 인간 스스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통한 구원이어야 하고 또 창 1:28의 생육하고,번성하고,충만하고,정복하고,다스리라는 창조신학에 기초한 문화명령의 수행자로서 교육되어야 만이 현실 도피적이지 않고 다원화된 문화 속에서 당당히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성도로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청소년 교육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비신앙적이고 비성경적인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루 속히 교육신학적 안목을 길러 신학적 입장에서 바른 교육을 실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4. 봉사 διακονια의 기능입니다. 섬김
디아코니아(diakonia)··· 섬김과 봉사의 행위 (벧전 4:10)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선행을 강조하셨습니다.(눅10장)
“하나님 아버지 안ㅍ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분단 국가로서 우리 민족이 처한 어려움을 보면서 한국 교회가 우선적으로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바로 디아코니아입니다.
섬김과 봉사의 행위는 교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데 중요합니다.
교회는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하지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하도록 해야 합니다(약2:15-17)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불의를 참지 않고 과감하게 책망하는 용기도 포함됩니다.
불의와 부패를 용납하지 않고 용기 있게 지적하여야 합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고 사랑은 공의를 행하는 것을 포함해야 합니다.
불의로 고통 받는 소외된 계층에 대해 교회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5. 친교 κοινωνια의 기능입니다.
코이노니아란(koinonia)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뜻으로서 성도의 나눔과 교제(행 2:42)를 의미합니다.
코이노니아는 교회의 일원들인 성도들 간의 사랑이라는 수평적인 차원(horizontal dimension)에서 만이 아니라 성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영적인 사귐과 교통이라는 수직적인 차원 (vertical dimension)에서 모두 추구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통을 원활히 이루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고후13:13).
교회가 코이노니아의 기능을 다하려며 늘 성령과 동행하는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고전12:26)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12:15-18)
코이노니아는 교회의 영원한 본질로서, 제도적 교회를 유기적 교회로 승화하는데 필수적이며, 대부분의 사역이 종료된 후 천상에서도 계속되는 중심적 사역입니다.
개인주의와 군중속의 고독으로 소외된 현대인들에게 친교는 절실히 필요합니다.
교회의 교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코이노니아로서, 이는 인간의 성화와 신적 연합을 결과하며, 지상에서부터 훈련되어 천상의 이상적 코이노니아로 발전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3).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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