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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기원(起源)

안명애 2018. 6. 8. 07:16

마귀의 기원(起源)

마귀라는 디아볼로스는 디아(..통하여)와 발로(, 참소하다, 중상모략하다)의 합성어(合成語)로 되어 있는데 "입을 통하여

퍼붓다"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마귀는 이 땅의 모든 창조물 중에 가장 간교하고 지혜로운 동물로 만들어 사람에게 아무부담 없이 접근하여 대화 할 수 있게 하였다. 또 능수능란(能手能爛)하게 임기웅변(臨機應變)과 뛰어난 화술(話術)과 초능력(超能力)을 겸한 동물이다.

마귀 또는 사단이라고 하는 이 짐승의 본체는 뱀인데 에덴동산에서 입을 열기 시작할 때부터 하는 말은 전부 미혹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중상모략(中傷謀略), 위협, 변장술(變裝術), 거짓 이적기사를 행하면서 수많은

백성들을 범죄케 하고, 시험들게 하고, 넘어지게 하면서 지옥갈 자식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마귀의 종말은 무저갱(無底坑)에 들어가게 되며(20:2), 최후에는 유황 불 못에 산채로 들어가게 된다(20:9-10).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를 천사, 사자 또는 별등 여러 표현으로 나타내듯이 피조물인 마귀 역시 한 마리의 뱀인데 성경

곳곳에 용, 사탄, 마귀, 귀신, 독사, 뱀이라는 다양한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다. 사탄, 마귀는 쓰임 받는 장소와 용도에 따라서 이름만 다르게 사용되고 있으며 시대와 장소에 따라 이 땅의 모든 악역은 다 맡아 하고 있다.


1) 마귀(사탄)의 명칭들

성경에서 사탄의 명칭들이 많으나 마귀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 …… 사단, 바다의 괴물, , 신화적인 물체

. 탄닌( 14회 이상)

. 드라곤( 13회 이상)

사단(23) 악마, 마귀, 대적자, 방해자, 가로막는 자

. 사탄(사타나스, 36)

마귀(魔鬼) 악마, 마귀, 헐뜯는 자, 참소하다, 비난하다, 중상 모략하다

. 쎄드(diVe 2)

. 디아볼로스( 37)

귀신(鬼神)

. 다이모니온( 귀신, 악령, 마귀, 60회 이상)

. 다이몬( 귀신, 악령, 마귀, 4)

. 퓨뉴마( 악령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성령과 같은 단어를 쓴다. 379)

독사(毒蛇)

. 아크슈브 ……… 맹독성 뱀(1)

. 에프에 ……… , 독사(3)

. 페덴……… 독사, 코부라(3)

. 쎄바으 ……… 독사(한번 노려보아도 사람이 죽는다는 뱀, 1)

. 쉐피폰 ……… 독사, 살모사, 뿔달린 뱀(1)

. 아스피스 ……… 독뱀, 독사(1)

. 에키드나 ……… 독사(5)

독사가 여러 종류로 나오고 있는데 사탄의 역사가 사람들의 악한 성격이나 잔인한 행동을 하게하고 환경을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장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맹독성 뱀들이 사납게 덤벼들고 물어 죽이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이런 갖가지 표현으로 사탄을 설명하고 있다.

()

. 나하쉬…… 교활한 뱀, 간사한(28)

. 오피스 ……… 교활한 뱀(14)

옛 뱀이 역사할 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붉은 용 …… 싸울 때 사용하는 명칭

사탄 …… 대적하고 방해하며 훼방할 때 사용하는 명칭

마귀 …… 거짓말하고 헐뜯고 중상모략할 때 사용하는 명칭

귀신 …… 사람속에 들어 와서 자리잡고 더러운 짓을 할 때 사용하는 명칭

독사 …… 사납게 물며 독을 발산할 때 사용하는 명칭

…… 간사한 행동과 지혜로운 행동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로워라고 하였다(10:16)

2) 마귀의 정체

마귀는 천사가 타락하여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創造物)을 보면, 천상(天上,1:5-28, 4:1-11)과 지상(地上)에 피조물(被造物)이 있는데

이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에 하늘에 영물 천사는 이 땅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지상에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최대의 걸작품(傑作品)이다(1;26-27,8:21).

그러나 마귀라고 하는 뱀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다.

천상의 영물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인간을 돕는 일을 한다면은 지상의 영물 마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고

인간의 행복을 파괴하는 짓을 하며 성도들을 괴롭히는 일을 하는 피조물이다.

많은 주석 학자들이 마귀는 타락한 천사가 뱀속에 들어가서 하와를 미혹했다는 학설(學說)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일반상식(一般常識)으로 되어져 버렸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근거가 없는 해석이다.

타락한 천사가 마귀가 되어 뱀이라는 동물속에 들어가서 사람을 미혹했다면 지금도 사탄이 짐승속에 들어가서 인간들 앞에 수시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천사가 교만하여 타락하였단 말이나 마귀가 뱀에게 들어갔단 말도 없고

뱀이라는 괴물은 처음부터 놀라운 지혜가 있도록 창조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천사는 수종자로 마귀는 미혹하는 자로 창조하였기 때문에 창조목적이 서로 다르다.

천사는 하나님께 수종(隨從)드는 일과 하나님의 백성을 돕기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도중에 타락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피조물인 천사는 자기의 위치에서 마음대로 이탈하거나 떠날 수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으며 그 사명도 하나님의 명령 안에서만이 활동이 가능한 영물(靈物)이다.

특히 미혹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자에게 해당되는 시험이기 때문에 육체가 없는 천사는 영적 존재이므로 미혹의 대상

될 수가 없고 미혹을 받을 수가 없으므로 또 타락할 수가 없다.

요한138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고 하였다.

천사가 도중에 타락하여 마귀가 된 것이 아니라 마귀는 처음부터, 태초에 시작부터 범죄하게 하는 자가 마귀였다는 것이다. 미혹의 주체(主体)인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부터 꾀이고, 시험들게 하여 넘어지게 할 자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많은

백성들을 범죄의 늪에 빠지도록 유도(誘導)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믿고 전해왔던 잘못된 천사타락 설을 이제

수정(修正)하여야 한다. 과거에 잘못된 기존개념을 과감(過感)히 버려야 하며 개혁(改革)해야 한다

(참조.성경에 나타난 천사의 개념에 대한 고찰).

3) 마귀의 출처(出處) 지금까지 마귀의 정체를 정확히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이사야 1412절과 에스겔 2813절을 가지고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왔고, 또 혼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라고 하는 마귀는 선악과 사건을 시작으로 이 땅의 모든 악한 짓을 다 저질러 놓고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귀인 사탄은 영물이기 때문에 세계 모든 지역에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동시에 찾아가서 미혹하거나

악을 조작(造作)하게 하고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을 진리에서 탈선을 가져오게 한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이나 봉사하려는 자를 시험들게 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끊어 놓고 사람사이에서도 거짓으로

분쟁을 일으키게 하며 범죄를 저질러 놓는다. 의식주(衣食住)문제는 나라마다 개성따라 다르지만 모든 악의 출처는

사탄 하나의 행동이기 때문에 미혹하는 방법이나 역사하는 내용모두가 동, 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서든지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같은 행동은 사탄 즉, 뱀 자신의 사명이기 때문에 지구 곳곳에 찾아가 쉬지 않고 괴로운 일들이 일어나게 하며 온갖

범죄와 무서운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뱀인 마귀를 지혜롭게 만들 때 사용할 목적이 있기 때문에 다른 들짐승보다 구별되게 하므로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뱀은 특별하게 몸을 가진 영체(靈体)로 만들어 졌으며 세상 끝 날까지 사람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아담 하와를 넘어트린 뱀은 이 땅의 모든 피조물에게 영향권(影響權)을 행사하면서 자기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온갖 만행(蠻行)을 저질러 놓는다. 그러나 뱀의 사명이 끝날 때 하나님께서는 붉은 용을 잡아 쇠사슬로 묶어 천년동안

무저갱에 가두어 놓는다고 하였다.

용을 잡아 묶어 가둔다는 것만 보아도 마귀는 육이 있는 동물인 것을 알 수가 있다(20:1-3).

거대한 용을 잡고 보니 에덴동산에 있던 "그 옛날 그 뱀"(호 오피스(그 뱀) 호 알카이오스(그 옛날))이라고 용의 출처를

밝히고 있다. 오늘 이 시대 역사하는 붉은 용은 태초부터 에덴동산에 있던 뱀으로 지금까지 사명이 바뀌지도 않았고,

늙고 병들지도 않았으며 거짓말만 전문으로 하는 마귀라는 것이다.

알카이오스는 "고대, 옛날, 원래"라는 뜻이며 아르케에서 유래된 말인데 "태초, 처음"이라는 단어이다.

모든 일을 간섭하고 참소하는 사탄 뱀이 하와에게 접근하여 말씀미혹으로 영생을 빼앗고 축복의 동산을 망쳐버리게 한

지능범(知能犯)이다. 이 뱀이 등장하여 간교(奸巧)하게 남을 헐뜯고 비방할 때 마귀, 또는 사탄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지만 전쟁을 일으킬 때는 큰 용, 혹은 붉은 용으로 나타나게 된다. 계시록 129절에 보면 공중에 권세 잡은 큰 용이 땅으로

내어 쫒기니 옛 뱀, 곧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꾀던 뱀, 그 놈이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여 현재까지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였고, 계시록 202절에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고 하였다.

마귀나 용의 본체는 옛 뱀이다

드라곤이라고 하는 큰 용을 괴물(怪物)이라고도 하는데 역사하는 행동에 따라서 뱀(오피스), 또는 마귀(디아볼로스),

사탄(사타나스), 붉은 용, 귀신(다이모니온)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제는 마귀의 정체를 찾아내어 활동하는 영역(領域)을 알아야 할 때가 왔다.

에덴동산에 있던 옛 뱀(;호 오피스 호 알카이오스)이라고 하니까 그냥 땅에 기어다니는 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와에게 나타났던 그 뱀은 일반 뱀으로 보면 안 된다. 우리가 알고 생각하기로는 모든 들 짐승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다고한 정도 밖에 몰랐으나 이 뱀이라고 하는 괴물은 그 지혜와 능력이 상상을 초월(超越)하는 짐승이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지금까지 6천년 동안 공중권세를 잡고 이 땅 전체를 휘젖고 다니고 있지만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는

인류의 시조 두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에 뱀의 능력을 발휘할 상대가 없었다.

다만 조용히 하와에게 다가와 미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할 때부터 자신의 본체를 드러내며 본격적인 사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선악과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나 하와를 넘어지게 하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허락속에서 진행하였을 뿐

그 영역은 넘어서지를 못한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지시하시는데로 살아야할 시조 아담과 하와는 뱀의 지시를 받고 그 뜻을 따르게 되므로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게 되고 사탄의 종노릇하기 시작하였다. 창세기 3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뱀에게 종신토록(콜예메)이라고

한 것은 모든 날 동안 즉, 6천년동안 허락을 받아 이 땅에 흙( 웨 아파르)을 먹을 지니라(토칼)한 그때부터 공중 권세를 잡고 활동무대를 넓혀 자기 본성을 본격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흙을 먹으라는 것은 사람을 만든 재료가 아파르()이기

때문에 사람을 먹으라(정복)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옛 뱀 마귀는 아파르 재료가 들어간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찾아다니며 그 마음속에 들락거리면서

훼방하며 괴롭히고 있다. 마귀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심지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육체까지 넘보고 덤벼들었다면 그 세력에서 누가 벗어나겠는가?

예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였을 때 그 환경을 이용하여 주께 찾아와 먼저 빵으로 시험하였을 때 사람이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였으나 물러가지 않았다.

그 다음에 명예를 가지고 미혹을 또 해보아도 넘어가지 않으니까 마지막으로 나에게 한번 굴복하여 절하면 천하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4:8-9) 허세(虛勢)를 부리기까지 하였다. 첫 아담은 빵 시험에 실패했으나 마지막 아담은 넉넉히 이겼기

때문에 주와 연합된 자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탄의 권세에서 다 찾아내시겠다는 약속을 사도와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째 아담이후 지금까지 모든 인류는 사탄의 세력 안에 놓여 있으므로 그 영역 안에서 벗어 날 수가 없지만

십자가의 길만이 피할 길이요 구원과 영생이 되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마귀)의 지혜

창세기 31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奸巧)하더라"고 하였는데 원문(原文)에 보면

하나님께서 들판에 지으신 모든 생명체 중에하야트, 짐승(생명체)한 마리의 그 숫 컷 뱀이(웨한 나하쉬) 가장

(미콜, 전체중에 모든 것중에) 지혜가('아룸, 빈틈없다, 교활한, 슬기로운, 간사한) 있더라(

하야, 발생하다, 이루다, 나타나다)이다.

하나님께서 예정(豫定)하신 대로 에덴동산에서 흙으로 만든 생명체중에 특별히 지혜가 월등(越等)히 뛰어난 영물체(靈物体)인 짐승 하나를 만들었다. 이 괴물짐승은 들의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찾아와서 미혹하여 시험들게

하고 넘어지게 할 수 있는 동물로 특별히 만든 짐승이다. 그러므로 이 짐승인 마귀가 자기 사명을 따라 하와에게 접근하여 교활(狡猾)한 행동과 능통(能通)한 대화로 넘어지게 한 것이다.

덴동산의 사탄인 괴물 뱀은 선악과 및 생명과의 나무가 있는 위치나 그 길목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않고 생명과를 먹으면 영생할 것도 알고 있고,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죽음이 온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는 금지사항도 옆에서 듣고 다 알고 있었을 것이며 아담과 하와의 행동하는 것까지도 모두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짐승은 동물이면서도 동물세계를 가지 않고 언제든지 미혹할 사람만 나타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동물이다. 얼마나 간교한지 짐승이 사람을 꾀어 넘어트릴 정도라면 그 지혜가

어떠한지를 한번 생각해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인 것이다. 이와 같이 간교한 뱀의 미혹앞에 말씀에 약한 하와는 그 시험에 넘어졌고, 또 사랑에 약한 아담은 여지없이 하와의 사랑앞에 흔들리고 말았다. 언제나 마귀는 약한 쪽을 찾아 들어온다.

우리는 뱀의 미혹이 없는 에덴동산을 생각해 보자. 에덴동산은 항상 평화가 깃들고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실 필요도 없고, 선악과가 있더라도 미혹이 없으므로 죄를 지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죄가 없는 세상은 죽음이 없으므로 아담과 하와뿐

아니라 그의 후손들도 영생하게 되어 많은 의의 자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는 인간은 하나의 피조물일 뿐, 하나님의 자녀는 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목적과 큰 뜻은 친 자녀를 삼기위하여 모든 것을 예정하셨기 때문에 그 목적하신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만물 하나하나 순서대로 창조하시고 또 특별히 지혜있는 짐승하나를 만들어 놓고 시험의 도구로 허락하신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는 이길 수 있는 말씀을 주셨으나 하와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을 따라 하와는 믿고 순종했어야 할 텐데 혼자 있다가 뱀의 간교한 대화에서

말씀을 섞어서 말하다가 즉시 미혹에 넘어지고 말았다. 뱀이 하와에게 물었을 때 "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2:16-17) 하였다고

대답했으면 미혹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대답했다(3:3).

하나님은 아담에게 "너는 먹지 말라"고 단수를 말했으나 뱀은 너희라는 복수를 슬쩍 넣어 추켜세울 때 하와 역시

"우리가"라는 대답으로 응수(應酬)하면서 마치 하와 자신은 스스로 하나님의 대변자(代辯者)의 위치에 서게 됐다.

하나님이 언제 너희는(복수가아님)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했으며, "정녕 죽는다"라고 했지 "죽을까 하노라"라고

하셨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중심으로 섞어서 말했을 때 뱀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하는 말씀혼선으로 도전해

왔다. 또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먹었을 때 죽을까 하노라하며 확신없는 말을 했으나 뱀인 마귀는 눈이

밝아지는 것도 알고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 까지도 자신있게 권하면서 말 재주를 부렸다.

이와 같이 뱀의 뛰어난 지혜로운 행동앞에 하와는 그 말을 믿게 되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주저하지 않고 따먹고 남편에게도 가져갔던 것이다(참고.마지막 세대의 미혹).

생명과를 먹과 영생할 자들이 선악과 열매를 먹은 후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녕 죽음(타무트 무트)이 찾아오게 되었다.

"무트""죽다, 사망하다"인데 뒤에 무트앞에 타우(t)를 붙여 죽고 반드시 죽는다고 엄히 명령을 내리신 것을 마귀가

추켜세우는 바람에 하나님의 명령을 경하게 여겨 생각대로 대답을 하다가 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다.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또 가감하면 마귀는 안심하고 덤벼들게 된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萬國)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鐵杖)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2:25-28)고 주님께서는 약속을 하시고 이기는 자가 되고, 지키는 자가

되라고 말씀 하셨다. 오늘의 성도들도 자신을 높여준다거나 칭찬할 때가 제일 위험하고 또 말씀을 가감할 때 죽음의

함정을 자신이 파게 된다. 항상 믿음 안에서 종의 지도를 따라 말씀을 붙들고 신행(信行)일치하는 삶으로

승리자의 반열(班列)에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생의 죽음과 뱀에 저주(아파르, 인간)을 먹을 지니라

. 인생의 죽음

창세기 319절 하반절에 보면 아담에게 너는 필경(畢竟) 원래 흙(;아다마)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했을 때 이 흙이 아다마의 흙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모든 동물을 만드실 때 다같은 흙으로

만들었다라고 하였지만 흙의 차이가 너무나 크게 난다.

동물은 아다마라고 하는 거치른 일반 흙으로 만들었으나 사람만은 아다마의 흙에서 다시 부드럽고 고운 흙, 아파르로

창조하신 것이다(2:7).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후 아담에게 수고의 땀을 흘리다가 근본 아다마의 흙으로 되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 다음 하반절에 또 하와에게 너는 아파르 "(아파르)이니 흙(아파르)으로 돌아가리라"고 했다.

이 말은 범죄한 하와 너 역시 네 남편의 몸, 아파르에서 나왔으니 다시 원래 아파르로 남편따라 환원(還元)하게

된다는 것이다. 범죄로 인하여 인생의 육체는 뱀에게 먹히고 정복을 당했다가 죽을 때는 원래의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다시 부활이라는 방법으로 구원을 얻게 되고 그 구원은 아들의 피와 관계를 맺어 놓았고

그 언약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신 것이다(참고.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속).

. 뱀에 저주

뱀은 하와를 미혹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3:14). 뱀이 받은 저주는 흙을 먹는 저주였다.

하지만 뱀은 지금까지 흙을 먹지 않았으며 흙을 먹는 뱀은 없다.

그러나 하와를 꾀던 뱀만이 저주를 받아 흙을 먹도록 하였고, 흙을 식물로 먹을 수 있게 된 것만 보아도 땅에 기는 뱀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탄, 마귀라는 짐승을 만들 때 땅에 기어다니는 뱀의 형상을 닮게 했을 뿐, 구조와 기능은 완전히

땅의 뱀과 다르기 때문에 일반 뱀으로 과소평가 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흙(아파르)을 먹으라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뱀인 사탄은 어두움의 권세를 가진 자가 되어 인간을 정복하고

사람속에 들어와 범죄케 하며 악을 행하므로 아파르로 된 인간은 뱀의 밥이 되었다.

인간이 사탄에게 먹히고 정복을 당할 때부터 마음속에 사탄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뱀이라고 하는 사탄이 아담의 자식들에게 접촉할 때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탄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역사할 때에는 본래의 성품(性品)은 떠나게 되며 마귀의 지배를 받고 사탄의 성품으로

바뀌게 되니 원망과 불평과 미움이 생기고 죽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되며 행동으로 옮겨질 때 마귀의 도구가 되어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이같이 뱀인 마귀의 역사는 수천년 동안이나 공중의 권세를 잡아 사람들을 자기 손안에 넣고

괴롭히며 여러 가지 악한 문제를 일으키고 방해를 부리고 있다.

어떤 잘못된 사람을 놓고 "저 사람은 본심(本心)이 아니다", "본 마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다른 것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짐승을 만든 흙(;아다마)을 먹으라는 허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물들 속에 마귀가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동물속에는 영혼이 없기 때문에 들어갈 이유도 없고 미혹할

이유도 없다. ()는 자기들끼리 죽이고 사기치고 협잡(挾雜)하지 않는다.

또 사자나 곰 같은 맹수들 역시 서로 속이고 범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짐승은 백년 전 짐승이나 천년 전 짐승이나

지금 짐승이나 다 행동이 변함없이 동일하다. 그러나 오직 사람만이 죄를 범한 이후로 마귀의 도구가 되어 종노릇하게 되고 시대따라 환경따라 점점 악해져서 하루가 다르게 잔인한 행동을 하고 있다.


뱀인 마귀는 사람 안에 들어와서 악한 행동을 하도록 충동(衝動)질하고, 범죄하는 것을 보면서 즐기고 있다.

이 마귀는 처음 시작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미혹하는 도구로 쓰임 받고 있기 때문에 지옥 불 못에 들어가는 날까지

일년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미혹할 자를 두루 찾아다닌다.

마태복음 828절에서 33절에 보면 군대 마귀가 많은 돼지에게 들어갈 때에도 맘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허락을 받아서

들어갔는데(8:26-39), 사람에게는 6천년 동안 자기 맘대로 들락거리며 괴롭히고 농락(籠絡)하고 분쟁과 싸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의 손에 붙들리게 되면 부모를 대적하는 것도, 스승을 욕하는 것도, 폭행하는 것도 전혀 개의(介意)치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인간이 만들어졌지만 범죄 한 이후로 하나님의 신이 주관(主觀)하지 아니할 때부터 마귀는 마음놓고 들어와 다스리게 되었다. 성도들의 지체가 하나님의 전(殿)이 되지 못하면 마귀가 그 속에 들어와 사탄의 집이

되어 절대 주의 일을 못하도록 방해를 받게 된다.

창세기 315절에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했는데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한다는 예언은 바로 여자의 몸에서 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까지 말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3:16,29). 이것이 종말에 되어질 사건으로 예언이 된 것이다(1:16, 4:4 54:1).

마태복음 37절에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하였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적하는 바리새인이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다른 짐승으로도 말할 수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였는가(12:34, 23:33, 3:7). 진리를 대적하는 자는 다 뱀의 자식, 즉 마귀와 그의 자식들이 되는 것이다.

이 시대는 내 맘속에 주님을 모시지 않고 성경을 아는 것만 가지고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한다.

마귀는 말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하나님이나 예수님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섬기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51절에 주님이 거라사인(가다라) 지방에 갔을 때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셨다.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사이에 거하는 자인데, 6절에 보면 즉시 달려와 절하고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말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으나 마귀는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마귀는 영물이기 때문에 신과같이 알고 있다. 영적으로 생각해 보면 무덤사이에 거한다는 것은 삶 자체가 죽은 것을 의미한다. 21세기에 현대판 무덤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지식과 세상 학식으로 예수를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사탄의 종이 되어 잔인한 범죄와 악을 행하는 자가

많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사탄에게 먹힘을 당하는 자를 건저내고 또 이런 자들을 찾아 많이 살려 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뱀을 왜 가장 지혜롭게 만드셨나? 그 이유와 목적

상을 주기 위함이다

마귀가 없다면 면류관이 없고 상급도 없다.

마귀를 통하여 시험들 자는 미혹을 받아 넘어지게 되겠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승리하게 될 때 귀한 상을 후()하게

받게 되고 또 그 종을 통하여 감사를 받으시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을 모를 때에는 아름답게 만드신 동산에 뱀을 왜 지혜롭게 만들어 미혹하게 했을까?

또 선악과를 땃으나 먹기 직전에 막을 방법이 없었을까? 순간의 실수로 영원히 누릴 축복은 다 무너졌으며 창조의 목적은

실패한 것으로 느껴질 때 뱀의 미혹이 한없이 저주스러워지고 너무나 안타까움과 허탈한 마음은 견딜수가 없었다.

러나 하나님은 이 사건을 모르신 것도 아니였고 또 계획하신 것이 실패한 것도 아니다.

인간이 생각하기에는 실패된 것 같았지만 그 뒤에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간교한 뱀의 화술(話術)에 하와가 넘어가게 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加減)하게 되고 먹지 말라는 열매를 따 먹게 되어 죽음의 길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하시고 뜻하신 바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예비해 놓으시고

진행시키셨다. 에덴동산에서 첫 아담의 실패로 축복을 놓칠 때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하실 것을 예정해

두신 것이다. 그를 통해 약속된 축복이 너무나 엄청나다.

그러므로 선악과가 에덴동산 중앙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게 가장 아름답게 열렸고, 여자가 따서 먹을 수 있는 위치에

만들어진 것이다. 뱀의 시험으로 죄가 인류에게 들어오게 되고 그 죄로 인해 영생을 놓치는 자들에게는 억울한 일이겠지만,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여 영생의 축복을 받는 자들에게는 결과적으로 마귀의 시험이 축복이 되는 것이다.

마귀의 시험을 당할 때에는 괴로워 고통스럽지만 마귀의 역사가 있으므로 상()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勝利)하여 유업을 얻게 될 때 오히려 은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마귀시험이나 미혹으로 축복받지 못할 자에게는

복을 빼앗기고 멸망 받게 되도록 하신 것이다.

마귀는 이렇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道具)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는 좋은 방법이 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모략(謀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6천년동안 미혹으로 오는 시험이나 환난의 창구(窓口)는 모두 마귀를 통하여 일어나고 있다.

세계 곳곳 어디에서든지 이같은 일을 쉬지 않고 나타나고 있지만 이 시험과 환난을 이기는 자들에게는 그 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하나하나 쌓아 가고 있는 것이다.

감사를 받기 위함이다

에덴동산에서 지금까지 미혹이 없었더라면 이 땅에는 죽음이 없고 행복한 생활이 유지되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하였을까? 눈물과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營爲)하였을 것이다.

아름다운 땅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게 해주셨지만 불완전(不完全)한 인생은 하나님앞에 감사 할 줄도 모르고

감사에 인색(吝嗇)하다. 무슨 일이 있어야 비로소 감사를 알고 하게 된다.

에덴동산에 선악과가 없고 마귀의 미혹이 없이 계속해서 살고 있었다면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 영생이나

축복에 대하여 감사할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몸이 아팠을 때에 건강의 감사가 나오고, 굶주렸을 때에 빵의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이 사망이 있을 때에 영생에

대한 감사가 나오게 되고 불행이 왔을 때 행복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는 것이 못난 인간의 마음이다.

사망 없는 영생이 오늘까지 계속 되었다면 인생은 그 영생의 가치나 귀한 것도 모르기 때문에 감사 할 줄을 모를 것이다.

한 예를 들어 에덴동산에서부터 지금까지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데 거기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은 없다. 전기 불의 사용료는 낼 줄 알아도 귀한 하나님의 선물인 태양에 대하여 고마워서 태양 사용 감사헌금을 드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이와 같이 이 땅에서 죽음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았다고 해도 마치

태양감사나 공기감사를 모르는 것과 똑같이 영생의 고마움의 느낌이나 감사할 줄도 모르고 사는 것이 미련한 인생이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면서 생명의 근원인 태양과 공기에 대한 고마움이나 감사를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이 죽음이 없는

영생이 얼마나 귀한지 조차도 모르고 감사 또한 생각해 보지도 않고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

첫 아담이 잃어버렸던 축복을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 회복이 될 때 잃었던 영생과 땅의 축복이 범죄이전

상태로 돌아가게 되며 하나님과의 관계도 청산회복이 되어 지게 된다.

이 때 이 땅에서 메시야를 기다리며 괴롭고 어려움 속에 눈물과 사망의 쓰라린 고통을 느낀 자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소망이 임할 때 넘치는 감사가 나오게 되고 영광을 주께 돌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나라를 소망중에 기다리며 자신이 스스로 음미(吟味)해 본다면 아멘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가슴 아픈 일을 많이 당하고 괴롭고 고통당했던 성도들은 그 나라에서 주의 위로를 받을 날들과

크게 감사와 영광을 돌릴 날들이 있게 된 것이다.

친 자녀가 되게 하심이다

하나님께서 뱀이란 악한 동물을 만드신 여러 목적중에서 가장 큰 것은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피조물인 인간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어 친 자녀를 삼아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마귀가 없었더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없었을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없고 또한 상급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녀의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하여 사탄인 뱀을 꼭 필요한 존재로

만들었으며, 사용목적이 끝날 때에는 하나님께서 폐기 처분할 작품일 뿐이다.

이 뱀을 통하여 선악과를 먹게 하고 예수의 구속을 통하여 자기의 친 아들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깊으신 뜻이다. 모든 피조물 중에 우리 인간만이 창조주 하나님이신 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은

사탄의 미혹과 범죄의 산물로 기여(寄與)한 결과(結果)로 나타난 축복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아들들을 통하여 영광을 거두시기를 원하시어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 피의 공로로 자녀가 되었고, 또 아들의 영을 받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선악과 사건으로 이루어진 역사이다. 십자가 피의

은총으로 자녀가 되었고 아들로써 찬양을 돌릴 때에 아버지로써 그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합당한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모든 후손 중에 그 누구도 죄 없는 에덴에서 미혹없이 살았겠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피와 관계없는 인생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중의

하나가 될 뿐이며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조건은 혈통관계 즉 피의 관계가 성립되어야 하며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에 의하여 부끄러움 없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당당하게 부를 수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실제로 구약의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였고 아담 역시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신약시대에 와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피를

흘리심으로 그 피를 믿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귀의 시험으로 죄를 짓게 됐지만 이로 말미암아 화()가 변하여 복이 되었고, 주님이 오시지 않고는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뱀이 창조된 것과 선악과를 먹은 아담을 원망하겠지만 이 선악과 사건으로 주님이 이 땅에

오시고 그 주님을 통하여 영생을 얻게 되니 뱀의 미혹이나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물론 아담의 범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선악과 문제와 뱀의 문제는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에 감사할 일이다.

이제 우리는 손도 아니요 외인(外人)도 아니다. 성도들은 하늘에 속한 시민(市民)이요, 하나님의 권속(眷屬, 가족)이라고

했다(2:19). 하늘위에 있는 이십사 장로들이나 어떠한 천사들이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였으나

다만 피의 은총을 입은 자녀들에게만 베푸시는 사랑의 열매인 것이다.

4) 마귀인 뱀을 만드신 하나님은 범죄케 하는 분이신가?

하나님은 피조물인 뱀을 간교(奸巧)하게 만들어 선악과를 따 먹는 운동을 하게 하였고 인생은 하나님의 법을 파괴하므로

범죄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죄악의 고통과 죽음을 만드신 분으로 생각하며 악을 조장(助長)하는 분이라고

불평을 할 수도 있겠으나 하나님의 창조하신 목적을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모든 것이 예정 안에서 빛과 어두움 즉 선과 악의 역사가 나타나게 됨을 이미 아시고 계획하셨으며 그대로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다. 모든 것이 아들안에서 창조하셨고 아들의 피로 자녀가 되는 과정은 이 땅 창조때 순서에 넣고

진행하였으며 그 뜻이 성취될 것을 보시고 좋아하신 것이다. 창세(創世) 때의 저녁과 아침은 해가 뜨는 아침과 해가 지는

저녁과는 아무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녁이 오고 아침이 오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땅은 저녁이 되는 어두운 시대가 먼저 오게 되고 그 다음에 둘째 아담을 통하여 아침이 오는 빛의 시대가 완성되므로

창조의 목적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각본 안에서 먼저 나오는 저녁은 악한 어두움이 먼저

득세하고 불의한 시대가 오게 되므로 죄악의 밤이 시작되었다.

그 다음에 아침이 되는 것은 둘째 아담이 이 땅에 오시므로 악이 없는 의로운 시대가 임하게 되는 작업과정을 말씀하신

것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하신 것이었다. 그 시작의 출발이 선악과의 나무 열매였던 것이며 이 작업을 시작할 때 악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마귀인 뱀을 만드신 것이다.

수천 년 동안 마귀는 자기가 맡은 사명을 위하여 쉬지 않고 하나님께 악한 충성을 하고 있으나 성도들의 상급이 결정되고

어두움의 자녀들의 갈 곳이 결정의 날이 올 때에는 지옥 불 못에 버리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이나 악, 그리고 빛이나 어두움이 그분에게는 아무상관 없이 항상 빛이시요, 어두움은 없는 분이시다. 다시 말해서 선하신 하나님께는 빛뿐만 아니라 그분 안에는 어둠도 언제나 빛이신 분이다.

하나님은 선과 악을 초월(超越)하여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속성(屬性)은 악이 없으신 분이시다.

다만 어둠이나 악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다.


악도 하나님에게는 악이 아니고 선이다. 우리 인간편에서 보았을 때 선하다고 하든지 악하다고 할뿐이지 하나님은

다 선한 것이다. 예를 들어 밤과 낮도 인간편에서 볼 때 밤과 낮이지 하나님편에서는 밤과 낮이 필요 없이 다 낮이다.

계시록 167절과 192절에 하나님께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도 의로운 심판이라고 했다.

인간이 인간을 죽였을 때에 그것이 무서운 범죄가 되고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되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다 죽인다고 해도 그것이 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만드신 분이 부수고 취하신 분이 어떻게 버리든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마치 연극에서 배우와 같은 것이요 이 세상은 무대에 불과한 것이다. 연극에서 배우는 그 대사에 충실할 뿐이며,

그 대사의 내용을 시시비비(是是非非)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토기장이가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있는 것처럼 인간은 그분의 피조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가롯유다 같이 버릴 자는 악역(惡役)을 주어서 연기(演技)를 하게하고 그 맡은 사명이 끝나면 버리는데 누가 입을 열겠는가? 또한 에덴동산에서 뱀도 자기가 받은 각본(脚本)대로 사명을 감당했을 뿐이다.

야곱과 에서가 뱃속에서 죄도 모르는 상태에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기로 결정했다고 하셨는데(9:10-13)

이런 하나님을 편벽(偏僻) 된 하나님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지음 받은 인간들을 진노(震怒)의 그릇과 긍휼(矜恤)의 그릇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진노의 그릇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寬容)하시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요, 긍휼의 그릇은 영광 받기로 예비 된 그릇으로서 구원하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였다고 했다(9:21-2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불의한 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그 주권자 앞에 쓰임 받음에 감사하며 귀한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소원(所願)해야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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