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속 이야기

왕 같은 제사장이란 무엇인가?

안명애 2017. 6. 11. 22:12

베드로 사도는 핍박을 당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주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지만 자기의 권리부분만 알고있지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은 쏙 빼고 알고있습니다.이 부분을 집중 질문하여 보면 정말 각각 대답이 다릅니다.오해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이 무엇이고 왕이며 제사장인가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할 때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고난 당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한마디로 ‘성도’라 합니다. ‘聖徒’란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거룩’을 ‘코데쉬’라고 하는데 “잘라낸다”, “구별하다”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서는 ‘성도’라는 말 대신 ‘선민’이란 말을 썼습니다. “선택받은 백성”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택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선택받은 자가 되었다면 아브라함 이외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들은 모두 버림받은 것일까요.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의 선택에는 배타성이 있느냐는 소리입니다. 아브라함 이전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선택하셨을 때는, 노아 가족을 제외한 당시 사람들 중 누구도 선택받은 무리에 포함되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노아의 가족들만이 선택받아 홍수의 심판을 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나머지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사실 이 물음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나머지 인간들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고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홍수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배타성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선택하려 하심)을 소홀히 여기고 응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르심에 응하지 않았기에 선택받은 자의 무리에 속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한 친구는 중학교 입학을 했는데 그 학교에 있는 불량배 써클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 친구가 좀 껄렁거리는 것은 있었지만 불량 써클에 가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써클에 있는 아이들 눈에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서클아이들에게 특별히 선택되었습니다. 한 학년에 몇 명씩 선택한 그 중에 선택된 것입니다. 그 친구는 그 아이들에게 특별히 선택되었기 때문에 불려가서 그 써클에 가입하든지 아니면 한 번 늘씬하게 맞고 가입을 안하든지 해야만 했습니다. 그 친구는 맞는 것이 겁이 나서 그만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중학교 2학년 때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에는 중학교 졸업도 못했습니다.

그 친구는 특별히 선택되었기 때문에 참으로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것에 선택되면 이렇게 인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되느냐, 사탄에게 선택되느냐의 문제입니다.그러면 하나님은 우라를 어떻게 택하셨을까요?



[벧전2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 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의 네 가지 신분을 말씀합니다. 주님이 택하여 주셨고, 신분을 높혀주셨고, 주님나라에 백성삼아 주셨고, 주님과 화목하여 가까히 갈 수 있는 제사장 직분을 주셨습니다.

① ‘택하신 족속’ 이란 말은 ‘게노스’라는 말로 ‘혈통’또는 ‘출생’을 가리키는 말임.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혈통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 되었다고 자랑하지만 진정으로 택함을 받은 족속은 혈통이나 민족의 차별이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선택된 자들입니다.이런 자들이 천국 갈자로 택함 받은 자입니다.혈통으로 따지면 우리는 택하시 족속이 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위해 제물되시고 자기의 피를 가지고 하늘 자성소에서 단번에 제사를드려 나의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또 나를위해 기도하심을 믿고 신인하면 믿는 자가 택하신 백성입니다.

② ‘왕 같은 제사장’ 이란 말은 그리스도인은 왕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서 만국을 통치하며,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왕은 다스릴 나라와 백성이 있어야하며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고난만 격고 오히려 도망만 다녀야 했던 것처럼 성도는 오히려 고난을 다스려야 합니다. 다스릴 것이 또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다스려야 합니다. 둘째로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셋째로 자기에게 있는 달란트를 다스려야 합니다.

③ ‘거룩한 나라요’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현 직책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거룩한’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린 것을 나타내는 말로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선별하신 존재들임을 시사합니다. 그중에 제사장역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제사장은 죄인과 하나님의 중계자 입니다. 나의 죄를 예수로 제물삼고 하나님께 피를 드려서 매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물과 피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하여야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예수의 피로 제사를 잘드려야 죄인이 죄를 용서받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은 상대도 하지않습니다. 상대하는 것은 피를 가진 제사장입니다. 피는 곧 생명입니다. 한생명을 죽인 피를 하나님앞에 보여주어야 죄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곧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바라보십니다. 예수안에서 거룩해 지시길 원합니다.

④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소유된’ 의 헬라어 ‘페뤼포이에신’이란 말은 특별한 값을 지불하고 획득한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값으로 지불하시고 그의 자녀로 삼으신 언약의 백성입니다. 우리의 인간대표 아담이 마귀와 도박을 하여서 자신뿐 아니라 후손 모두를 마귀에게 소유권을 넘겨주었습니다. 그것을 원래대로 복귀할 값이 없어서 영원한 마귀의 소유가 되었습니다.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인간몸을 입고 오셔서 마귀에게 죽으심으로 그값을 치루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죄와 마귀의 종에서 자유인이되게 하셨고 믿는자에게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허락하셨습니다.이제 둘째 아담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인류의 대표로 죽고 피흘리시고 다시살아 나셨습니다.이제 그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은혜의 해를 선포하였는데 자기가 죄의종에서 벗어난 것과 예수께서 마귀를 박살 낸것을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가 이켜서 우리는 자유자라고 외쳐야 합니다.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950년대나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필리핀이나 오지의 밀림 속에서 일본 패잔병들 가운데 그 때까지 동굴 속에서 몇 년, 혹은 십여 년씩 숨어서 지나던 사람들이 발견되곤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기사는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에 누더기가 된 옷차림을 한 이들이 구식 소총을 들고 동굴 앞에 서 있는 사진과 함께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 패잔병들은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숨어서 극도의 불안한 생활을 하며 때때로 마을에 몰래 내려와 식량을 훔쳐먹거나 도마뱀을 잡아먹고 열매로 배를 채운 것입니다. 쓸모 없게 된 녹슨 소총을 소중하게 간직한 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불행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죄와 사단과 사망의 권세는 예수그리스도 앞에 항복을 했습니다. 그 동굴에서 나오세요. 밝은 곳으로 나오세요" 분명하게 복음을 알려 주어야 할 소명(召命)자들이 바로 우리들 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과 책임을 잘 감당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때 "왕같은 제사장"이란 단어만 보고 다음에 있는 핵심단어를 보려고도 않합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위의 네 가지 신분을 주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두운데서 불러내어’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과정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권리만 보지마시고 우리가 해야 할 사명과 책임을 보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값없이 구원해주신 것을 감사하여서 소리만 쳐주면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내 가슴판에 깊히 새기고 밑줄을 쳐놓으셔서 주님의 부르시에 영광돌려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서 지냈었으나, ‘만세전에 예정하신 뜻대로’ 불러내셨다는 사실과 불러내시고 네 가지 신분을 부여하신 목적은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덕’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타스” “아레타스”라는 말인데 ‘찬미’ 또는 ‘탁월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속성과 그 사역을 선포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다음 번에 귀한 손님을 모시고 다시 갑니다. 혹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데리고 찾아갑니다. 왜 그 곳에 다시 갑니까? 전에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맛을 알기 때문에 다시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로움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자주 배반하고 그 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자신의 자비로움과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주십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 마냥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학생이 자신의 신분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게 될 때 청소년 범죄가 생겨나게 됩니다. 부모가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리게 될 때 그 가정에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신분을 잊어버리고 있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산돌로 세워진 신령한 가정의 성전에는 제사장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제사장입니까? 구약에는 택한 레위족속이 있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장입니다. 과거 구약시대 때 제사장들이 했던 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중보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 없이도 우리가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신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막혔던 담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제사장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하여금 제사장이 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그 제사장의 신분으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언제든지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놓고 그분께 나아가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그 분은 여러분을 만나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9절에서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왕같은 권세와 권위와 능력을 함께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몸을 드려라 그런데 구약시대 제사장은 소나 양을 잡아 피를 제단에 뿌리고, 백성들의 죄사함을 위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의 제사장인 우리는 무엇을 제물로 드려야 하는가?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시대 제사장의 의무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특권만 생각하고 책임은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되게 하신 것은 다른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큰 특권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특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책임도 함께 주어졌습니다. 책임이란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안에서 부름받은 거룩한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뿐만아니라 거룩한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이제 세상을 살면서 고난이 오고 슬픔이 있어도 왕같은 제사장의 신분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음으로 축원합니다






왕같은 제사장의 특권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직접 나갈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희 육체니라"(히10:19-20)

성전을 들어갈 담력이란 말은 제사장의 특권을 말합니다. 이 성소는 대제사장만 출입하는 지성소입니다. 일반 제사장도 백성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피없이는 들어가면 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실 때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육체를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찢기시고 피흘림으로 우리가 담대히 성전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중보자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악을 해결하신 이는 예수의 피 밖에는 없습니다.

이 엄청난 구원길, 천국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왕같은 제사장은 하나님께 담대히 나갑니다.

히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두렵고 떨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특권을 가진자는 은혜의 보좌입니다. 때마다 일마다 은혜베푸시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면 용서하십니다.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 풍성하십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의 특권을 자랑스럽게 활용해야 합니다.

룻은 이방모압 여성이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 결혼하여 소망이 없는 시어머니 따라서 베들레헴에 가서 이삭을 주어서까지 봉양하고 하나님을 잘 섬긴 것은 왕같은 제사장에 대해 알았기 때문에 사명을 감당하여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되고 다윗왕의 증조모가 되며 예수님의 왕록에 끼어 빛나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군인이었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온집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한 가정이 되어 항상 기도하고 구제할뿐만아니라 가족과 친구 친척까지 불러서 한 자리에 모여 베드로 사도를 초청하여 말씀 듣다가 성령이 임하여 이방사람에게도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확신하고 세례받고 주님 영접하여 구원에 확신과 감격이 넘쳤습니다.

오늘도 성령께서는 왕같은 제사장을 통하여 혈족과 국적을 초월하여 임하시는 능력을 믿으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은총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거룩한 제사장, 왕 같은 제사장?


교회마다 많은 사람들이 봉시하며 섬김의 일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봉사와 섬김에도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는 영적인 생명이 성숙 되어야 하고 성숙 된 후에는 몸으로 섬겨야 합니다.



오늘 아침 묵상은 벧전2:5 한절 묵상입니다.


“너희는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 지니라”



이 말씀은 너무도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입니다.


먼저 내가 산돌이신 예수님처럼 신령한 영적인 집으로 세워져야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 누구입니까?


구약시대 때 성막이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봉사 할 때 그들은 개별적으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의 봉사는 반드시 팀을 이룬 단체적인 봉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신 말씀(벧전2:5)은 우리가 영적인 집으로 지어진 이후에 단체적인 제사장 팀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 때 성막이나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봉사할 때 그들은 절대로 개인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각자의 맡은 일을 수행하면서 팀 전체가 마치 한 사람이 봉사하는 것처럼 섬기는 몸의 봉사였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협력과 동역입니다.



교회는 동역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건축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에서 우리는 한 몸 되는 훈련을 받는 곳임을 한시도 잊어버리면 안 됨을 알아야 합니다.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을 생각해 봅니다.


사실 거기에 모인 120명의 제자들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마치 하나의 몸이 동역 안에서 행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복음전파는 능력이 있었고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복음전파는 몸의 봉시였고 몸으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두 가지 측면의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한 면으로는 거룩한 제사장들이고 다른 한 면으로는 왕인 제사장들입니다.


구약의 예표를 빌리면 아론의 반열인 제사장과 멜기세댁의 반열인 제사장 두 가지제사장 반열이 있습니다.


아론의 반열은 거룩한 제사장 반열이고 멜기세댁의 반열은 왕의 반열입니다.



이 두 가지 측면의 제사장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이 되지 않으면 왕인 제사장이 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하는 주된 임무가 무엇입니까?


죄지은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중보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서 용서 받고 안간과 하나님이 서로 화목 할 수 있도록.......그래서 인간이 구원 받는 일에 쓰임 받는 직책이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오늘 날 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든 성도들을 예표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려면 무엇보다도 한 몸으로 건축되고 군대로 편성되어야 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은 10일 동안 기도하여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완전히 주님께로 분별되어 거룩한 아론의 제사장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이것은 한 몸으로 기도 할 때 거룩하게 되고 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멜기세댁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아론의 반열인 제사장들은 거룩했고 항상 사람들의 필요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갔으며 멜기세댁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신령한 것을 가지고 나와 사람들에게 공급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후 멜기세댁에게 떡과 포도주를 공급 받았던 것이 그 예입니다. 이것이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벧상 2장 9절) 왕같은 제사장?
왕이면 왕이고 제사장이면 제사장이지 왕같은 제사장은 무엇인가?
이 구절로 성도들을 우쭐되게 하는가?
혹시 진짜로 이 구절대로 한국교회에 왕같은 제사장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가?
이 구절은 출애굽기19:6절 의 인용으로서
'왕국의 제사장'이 바른 번역이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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