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어원
1. 일반적인 개념
'이단'이란 일반적으로 철학적 사상이나 종교적 교리를 추종함에 있어서
유형을 같이한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될만한 이념적 차이가 발생할 경우
보수주의 측의 반대 입장에 서는 자들을 일컬어 지칭하는 명사이다.
한국사람들의 언어에 있어서 '이단'이라는 말의 일반적 의미는
자기가 신봉하는 도와 다른 길을 걷는 것,
또는 전통적인 것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이단을 'Heresy'라 하고 독일어로는 'Ketzrei',
라틴어로는 'Haeresic'인데 이들은 모두 헬라어 'Hairesis'라는
말의 음을 자기들의 글로 받아 적은 것들이다.
헬라어의 'Heiresis'라는 말은 보통 붙잡힘(Srizure), 선택(Choise),
결심(Resolve)등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이 헬라인들이 좋아하는 철학이나 과학등 학술적인 용어로 활용될 때는
전통적인 것과 특별히 구별된 어떤 견해나 학파 같은 것을 가리키는 뜻이 되었다.
이 용어는 70인역 헬라어 성경에는 선악(善惡) 간의 "선택"이란
의미(창49:5; 레22:18; 느12:40)로 쓰여졌고 요세푸스가 쓴 책들에서는
비난의 의미가 없이 일종의 "파당"이나 "분파"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데
성경에서도 이와 같은 의미로 활용된 경우(행5:17; 15:5; 26:5)가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신약성경에서 대체적으로 교회 안에서 일어난 한 분파주의나
그 추종자들을 능멸(행24:5; 고전11:19; 갈5:20; 벧후2:1; 딛3:10;
고전1:10, 11:18, 12:25; 롬16:17)하는 의미로 쓰여졌다.
히브리의 랍비적 용어에는 헬라어 'Heiresis'에 해당된 말은
나르바(Narba)와 메부(Meboo)인 바 이는 바리새, 사두게, 엣세네와 같은
유대인의 내부에 나타난 당파를 말할 때 사용되는 언어였다.
2. 성경적 개념
이단의 성경적 개념은 넓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 곧 진리에 거슬린 이론과
그것에 의한 동작이며 나타난 모든 행사이며
좀 더 좁혀 말하면 하나님이 싫어하는 삶의 행위이며
아주 좁혀서 말한다면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 아닌 종교적 이론이나 행동을 말한다.
기독교의 역사는 이단과의 투쟁사이며
성경은 그 투쟁사를 수록한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요청인 진리와 그 진리로 이루어진 인간들의 삶 안에
하나님의 요청이 아닌 다른 것 곧 비진리가 들어와
잘못된 삶을 바르게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록한 책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단의 연구는 신약과 교회사만을 자료로 활용하는
그 동안의 태도를 버리고 신,구약 66권 전체와
구속사를 활용하는 연구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본다.
이단에 관하여 구약 성경을 총 대표하는 말씀은 십계명의 머리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곧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20:3)고 하신 말씀이다.
역설(力說)하면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God)을 섬기는 것이 이단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서 말한 이단의 개념을 올바로 알려면
다른 신이 무엇인가를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첫째, 인간의 자율 이성을 부추겨서 자신을 하나님같이 보도록 해준 인본주의 신이다.
거룩한 에덴동산에 죄가 들어 와서 아담을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시킨(창3:5) 다음
자신의 것으로 존속시켜버린 마귀(요8:44)가 바로 그 신이다.
둘째, 각 지역의 부족이나 민족들의 풍속 안에 빌붙어서
신앙의 객체로 군림하는 신비주의 신들이다.
이스라엘 나라를 부패시켜 멸망으로 치닫게 한 바알신이나 아시스신
또는 말뚝신 같은 토속신이나 이방신들(사18:19) 그리고 드라빔이나
금송아지나 나무에 매달린 뱀같이 인공으로 만든 신들이 다 이것에 해당된다.
셋째, 하나님은 떠나버렸는데(렘3:16)도 깨닫지 못하고
율법적 겉치레만 강요하는 형식주의 신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게인들은 이런 허상신을 숭상하고 있다가
하나님의 독생자도 알아보지 못하는 비극을 연출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인본주의와 신비주의와 형식주의의 모든 삶의 방식을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닌 것
곧 이단으로 그것을 척결하는 일에 고심하셨음을 알 수 있다.
신약 성경에는 이단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함축하는 귀절이 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번 훈계한 후 멀리하라"(딛3:10),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갈1:7)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화시켜 인간들이 유리하도록 활용하는 것이
다른 복음이며 이단인 것으로 인식된다.
복음이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포한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서이다.
이것만이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요3:16; 14:6)이며 완전한 계시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복음 앞에 다른 복음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교회에는 처음부터 다른 복음을 전하는 다른 영이 들어와서
역사함에 따라 다른 예수를 증거하고 혼란을 획책(고후11:13~14) 하였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성경을 통하여 이들을 조심하라고 교훈하였다.
그들이 말한 다른 복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 이단은 성경곡해(聖經曲解)의 논설로 이루어진 기독교 형태이다.
성경곡해의 논설이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거역하고
인간이 사적인 탐심을 인하여 지어낸 말로 그 진리에 어긋난(벧전2:3~4) 이론을 말한다.
그러므로 자동적으로 비성서적(행5:17)이며 반복음적(갈1:7)이다.
② 이단은 전통부정(傳統否定)의 교리로 전통에 역행하는 기독교 형태이다.
전통부정교리란 사도시대부터 내려온 제도와 관행을 변경함으로 교회의 단결을 저해하고
분열을 획책(고전1:11~12; 11:18~19; 벧후2:1등)하는 것을 말한다.
③ 이단은 공해사익(公害私益)의 행위로 남에게는 막대한 손해를 입히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유익을 추구(벧전2:3; 골2:4; 고후2:17; 딤전6:5등)해 나아가는 자들이다.
구약의 이단관과 신약의 이단관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같은 것이다.
구약에 있어서 이단의 주체는 "여호와가 아닌 다른 신을 섬김"이고
신약에 있어서 이단의 주체는 "예수의 것이 아닌 다른 복음을 믿음"이라 했다.
여기 두 주제에 나온 여호와와 예수가 같은 분이며 섬김과 믿음이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다른 신을 섬긴다는 말과 다른 복음을 믿는다는 말은 결국 같은 뜻이 된다.
3. 신학적 개념
이단의 신학적 개념은 그것들을 심도있게 연구하는 신학자들의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 학설들로 나타나는데 정리해 보면,
교부시대에는 사도들과 속사도들이 퇴장한 2세기 초반에서부터 기독교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황제로부터 공인을 받은 4세기 초반까지
100여 년간 교부들이 기독교를 지도했던 시대이다.
이 시대에는 로마의 권위주의, 헬라의 사변주의, 히브리의 율법주의,
동방의 신비주의, 중동의 기복주의 등 잡다한 이단적 요소가
기독교로 몰려 들어 왔던 시대였다.
교부들은 이들이 언급하는 근원들을 많이 남겼다.
익나티우스(Ignatius)는 이단(Hairesis)이란 말을 최초로 사용한 교부급 신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하여 이단은 "교회의 단일성을 파괴함으로
기독교와 거리가 멀다고 하였고,
유스티아누스(Justianus)는 이단 편에 선 사람들을 가리켜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 "신앙심을 벗어난 자",
"불경스러운 신성 모독 자"라고 말하였다.
오리게네스(Oligenes), 이레나이누스(Irenainus), 터틀리아누스(Tertrianus)등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릇되게 부르고
전통적인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을 그르치는 교리"를 이단이라고 인식하였다.
이처럼 초기 교부들은 외부에 나타난 상황을 보고 이단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후기 교부들은 보다 더 진지하게 내면적인 것을 보고 이단을 언급하고 있다.
히포리투스(Hipolitus)는 "신앙에 어긋난 것"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기독교 이전의 교의까지도 이단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평가하였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와 아리우스의 논쟁 때 와서는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에 어긋나는 악마적인 이론"을
이단이라 인식하고 피나는 논제를 전개하였다.
곧 후기 교부들은 사단의 사주를 받은
인간의 의지로 지어낸 신학적 이론을 이단이라고 하였다.
가톨릭 교회(Rome Catholic Church)의 이단관은 로마 가톨릭에서는
"교회내에 있으며 교회의 단일성을 파괴하려는 교의"를 이단이라고 간주한다.
가톨릭에서는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기관이며 진리의 보고"라는
교회관이 일찍부터 정립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의 결정에 의하여 그 진리성의 진위를 판별받게 되어 있다.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가 교회에 그런 권한을 전폭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재판에 의해서 이단과 정통이 판별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2세 시대에 이르러서
이단은 중대한 범죄로 정죄 받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가톨릭에 있어서 이단은 교회에서 정죄를 받은 교설과 그 집단을 일컫는다.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의 이단관은
로마 가톨릭에서 이단이라고 정죄된 교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종교개혁자의 효시인 마틴 루터(Martin Ruther)가 파문을 당함으로
그 이론은 로마 가톨릭에서 완전히 배척 당하였기 때문이다.
루터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서품을 받은 신부로서
자신이 소속된 로마 가톨릭에 도전하여 95개 조항을 써서
비텐베르그 교회 정문에 내어 걸음으로서 종교개혁의 불을 붙였다.
그러므로 그의 개혁 이론은 자연히 가톨릭의 이단성을 지적해 나가며
기독교의 정통성을 찾으려고 노력해 나간 흔적이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살펴볼 때 루터의 이단관은
곧 자신이 세운 정통교리의 역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루터는 첫째 비 신앙적인 교리와 교회이며,
둘째 반 은총적인 교리와 교회이며, 셋째 비 그리스도적인 교리와 교회이며,
넷째 비 성경적인 교리와 교회를 이단시 한 것으로 보인다.
칼빈(John Calvin)의 이단관은 어떠한가?
그는 자신이 쓴 주석들에서 비교적 소상히 이단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였다.
"이단이라는 명칭에 관한한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항상 악하고 높은 가증한 것들"(벧후2:3의 주석)이라고 그 주체를 설명하고
"무엇이 이단을 생산하는가? 그것은 야심이다.
야심은 낮고 천한 감각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의 최고 주요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감정이다"(갈5:20의 주석)라고 말하면서
그 근본을 밝혔고 "거짓 사도들의 교훈인 다른 복음은
혼란과 파괴의 원인"이라(행24:14, 갈1:7)고 정의를 내렸다.
인본주의 교설로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침해하는 제 교설과
그 추종세력을 이단이라고 본 것이다.
이상과 같이 이단의 개념을 성경적인 의미에 기초를 두고
일반적 의미와 신학적 제 의미를 종합하여 정의를 내려보면,
이단이란 성경을 곡해하여 인간이 자기 주관대로 해석(벧후3:16)하고 말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장시켜 하나님이 세운 교회를 파괴코자 하는
다른 복음(갈1:7)을 전하는 일이며,
영원한 절대적 온전한 진리(딤후3:16~17)인 기독교 경전
신·구약 66권을 가감(계22:18~19)시켜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는 주장을 말한다.
2. 이단의 정의
이것은 16세기 종교개혁자인 칼빈의 견해다. 이단들은 자신의 정체를 위장하고 교회에 침투하는 위장술에 능하다. 그래서 칼빈은 이들은 마스크(mask)를 쓰고 있다고 했다. 사도시대의 이단들도 동일한 현상을 나타냈다. 유다서 1:4절에는 “이는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이 있느니라”고 했다.
이단들의 지도자들은 영적인 카리스마적인 신앙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았거나 개인적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절대적인 복종과 순종을 하도록 교화시켜 나간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단들의 교주는 대부분 과대망상증 환자이며 임상심리학적으로 볼 때 성격장애자 혹은 피해망상증세가 심한 자들이다. 이단연구가인 마틴은 “이단 지도자들이 자아도취적 고립주의에 의해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이것은 과장된 자아상, 즉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신을 인쳐 영적으로 으뜸 되는 위치에 승격시켰다는 믿음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고 꿈과 같은 계시를 통해 신의 직접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대개 정식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몽상적인 현실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을 보면, 1) 외모는 상당히 매력적이며 보통 이상의 지능을 갖고 있다. 2) 외형적으로는 망상이나 비논리적 사고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정상인처럼 행동한다. 3) 불안이나 신경증적 증상을 보이지도 아니한다. 4)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자기의 일에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5) 진실성이 없고 후회할 줄 모르고 수치심이 없다. 6) 충동적으로 보이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정당화 한다. 7) 병적인 이기주의를 보이고 진실한 사랑을 못한다. 8)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며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결여되어 있다 (정동섭, p.291-292)
이단들은 개인의 신비적 혹은 특별한 신앙체험을 근거하여 주관적인 계시사건을 일반화하여 신흥이단운동의 기반으로 삼는다. 이들은 무분별한 신비적인 체험을 신적인 계시와 동일시하고 절대화 시키는 경향이 짙다.
이단들은 자신들의 계시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개인의 미래, 역사의 미래적인 사건들을 예언한다. 요한은 “영들이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했는지를 시험해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요일 4:l)
이단들이 집단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여기에는 그들의 선민의식과 배타주의가 깔려있다. 그들의 판단은 대단히 독선적이기 때문에 어떤 충고나 조언도 듣지 아니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회와 격리시켜 운거하면서 특정한 지역을 성역화 한다. 신앙촌, 예루살렘, 천년왕국 등으로 표현한다.
이단들은 사람들을 자극하고 위기의식을 고취시키는 특징이 있다. 세상의 종말이 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노아의 시대처럼 신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신들의 집단만이 구원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단들은 정통기독교의 가르침은 참 진리를 이탈하였다고 강조하면서 새로운 교회의 갱신과 진리운동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기독교에 환멸을 느끼도록 신도들을 유도하며 공격과 비난을 일삼고 나아가서 기존 기독교를 위선과 거짓 종교 집단으로 몰아붙인다.
이단들은 공통적으로 성경외의 계시에 의존하는 경향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통일교의 원리강론, 몰몬교의 몰몬경, 여호와의 증인의 새세계성경 그리고 엘리야복음 선교원의 천국사람들 등이다. 만약에 특정한 정경이 없으면 교주의 설교집이나 저서가 곧 성경의 권위와 동일하게 여겨지거나 위에 군림하는 경향이 짙다. 그리고 성경을 그들의 주장에 필요한 참고문헌으로 사용한다.
이단들은 진리가 교회역사의 부패 가운데 상실되었거나 숨어 있다가 자신들에 의해 회복되었다고 주장한다. 지방교회(1982)는 “교회는 여러 세기에 걸친 역사를 통해 타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래의 뜻대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했다. 구원파의 경우도 권신찬은 “교회의 참뜻은 성경에 비밀히 감추어져 있는 진리”로서 구원파가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했다. 박옥수는 “죄 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을 자기들만 독점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독선적인 확신이 이단들의 특정이다.
이단들은 외형적으로는 거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윤리적인 결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율법페기론적인(anh-nom떠msn) 사상을 갖고 있다. 그들은 구원의 완벽주의를 주장하는 만큼 도덕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베드로는 거짓 사도들은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가운데 행한다”(벤후 2:10)라고 했다. 그리고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 하기를 쉬지 아니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14절)
이단들은 기존사회 질서의 보존에 관계없이 불법적인 행위를 자행한다. 남녀간의 성문제의 문란은 물론이고 가정 파괴 등의 반사회적인 행동을 동반한다. 예를 들면 이단종파의 교주나 창시자는 대부분 가정으로부터 부실한 남편으로 인정되었으며 여러 번에 걸친 이혼과 재혼의 사슬에 매여 있다. 문선명의 빈번한 이혼과 4번의 재혼, 박태선의 재혼, 몰몬교의 요셉 스미스는 50명의 부인이 있었고 크리스찬 사이언스의 에디 부인은 1번의 이혼과 3번의 재혼을 했다. 여호와의 증인의 렷셀도 이혼당했다. 이혼의 이유는 여자들에 대한 부적당한 행위 때문이었다. 그리고 반윤리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집총 거부 동을 내세운다. 독신강조, 금욕주의 등도 나타난다.
이단들의 공통적인 특정의 하나가 금전의 강조와 비리에 있다. 교주를 중심으로 교권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제적인 조달을 위해 교인들의 맹목적인 기부와 헌금을 유도하여 이를 충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헌금과 기부금을 교주와 중심세력의 사치생활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된다.
이단들의 이원론은 단순한 현실 도피나 염세사상을 넘어 성경관, 신관 그리고 기독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영의 세계와 물질세계를 존재론적으로 이원 화시켜 세상의 선악의 이중구도로만 생각하는 지나친 이원론 인식론에 젖어 있다. 김기동의 귀신론이 이러한 이원론 사랑이 극단적으로 적용된 대표적인 예이다.
공교롭게도 이단들은 그 계보가 존재한다. 초대교회도 영지주의라는 하나의 왜곡 3 사상이 말시온이나 세렌투스나 발렌티우스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의 이원론 3인 사상은 마니교를 거쳐 동서방교회에 영향을 미쳤고 중세기에 나타난 카타리나 모고밀 그리고 알비겐시스도 이원론적인 강한 색깔을 띠고 있다. 또한 이들은 종말론 적이고 기존교회를 부인하는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거짓 예언과 반사회적인 윤리사상을 갖고 있다. 사실 이들은 과대 망상적인 성격 장애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문선명, 유병언, 이장림, 펄시 콜레, 요셉 스미스, 박태선, 정명석, 박명호 등 모두 과대망상 증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단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정들은 대부분 동일하다. 그러나 서구의 이단들과 한국의 이단들의 이질적인 신앙의 요소들과 유형들을 찾는다면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이단들은 서구의 이단들의 유형과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난 귀신론은 서구 이단들에게서 발견하지 못하는 한국의 이단들이 갖고 있는 특징적인 요소이다. 대표적인 예가 김기동의 마귀론이다. 김기동은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귀신론에 대한 경험적인 확신을 가지게 된다.
전도관의 교리를 전승했기 때문에 그의 이러한 주장은 조금도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세일교단의 이유성도 자신을 가리켜 말세의 종, 사명자로 표현함으로 전도관이나 통일교의 교주의 신격화와 동일한 시도를 하였다.
2) 회생의 세뇌원리 3) 주변환경 통한(milieu control) 원리 4) 신비적인 조종(mystical manipulation ) 원리 5) 투자(investment)의 원리 3) 포기(renunciation)와 순결 원리 7) 고립(isolation)의 원리 8) 친교 또는 영교(communion)의 원리 9) 초월감(feeling of transcendence)의 원리 l0) 교리와 이념의 원리
2) 교회지도자들과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갱신 3) 영적생활의 유지를 위한 영성훈련(기도생활의 올바른 지도) 4) 교인들의 욕구충족을 위한 신앙심리 연구와 적용 5)신앙생활의 가치관과 이념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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