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잠시 거론 했지만 성막의 모든 기초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기초이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보여주는 모든 재와 원리들은 영적으로 보는 성막론이기 때문에 많은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그동안 율법적인 믿음안에서 보와 왔던 성막의 구조는 상당히 많은
재료들을 통해서 심령 성전을 짓는 법과 원리를 영적을 살펴 볼 때 내 뜻과 맞지 않다고 해서
정죄하지 마시고 끝까지 인내하고 읽어 보시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1) 울타리와 뜰의 관계
모든 집을 짓는 데는 울타리가 있어야 하는데 울타리가 아무렇게나 기분이 내키는 대로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재료와 식양과 법도에 따라 세워지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성막의 뜰과 세상과의 분별되는 이 울타리라는 오늘날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세상과
성막의 뜰은 세상과 구분되는 교회당과 건물과의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이 성막의 뜰의 크기는 주님이 정해 주는 것으로서 남편과 북편의 광을 백 규빗이라는
규칙을 세워 놓았으며 서편과 동편의 광은 오십 규빗이라는 규격을 정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성막 뜰의 구격과 법칙은 구약적이며 율법적인 성막으로서 온전한 성막이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출27:9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을 향하여 뜰 남편에 광이 백 규빗의 세마포장을 쳐서 그 한 편을
당하게 할지니
출27:10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출27:11 그 북편에도 광이 백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기둥의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출27:12 뜰의 옆 곧 서편에 광 오십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출27:13 동을 향하여 뜰 동편의 광도 오십 규빗이 될지며
이 말씀처럼 남과 북의 규격은 백 규빗으로 일치하지만 서와 동의 규격은 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
오십 규빗이기 때문에 정 사각형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절반의 규격으로 지으라고 하신 이유가
영적으로 따로 있는 것이다.
계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이 말씀처럼 영적으로 성전이 완성되면 장과 광이 같아야하지만 출애굽기에 나오는 구약의 성막은
반쪽자리 성전으로서 이는 율법의 성막과 성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완성을 이루어 장과 광이 똑 같도록 지어지면 율법의 완성을 이룬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보여주는 성막(전)은 반쪽짜리로서 율법적인 믿음으로 세운 율법의 집이나 같은 성막(전)이다.
그래서 성경을 영적으로 보지 못하면 심령 성전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과 분별이 되어 교회에 들어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쪽자리 성막이라는 심령을 만드는 것이 율법적인 믿음 이라는 것이며
율법적인 성전을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문자가 가지는 언어의 속성은 예수의 생명을 담고 있는 것인데 자칫하여 초등 학문적으로
성경을 풀어보면 역사적인 관점과 교훈적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어 영적맥과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율법적이라는 반쪽짜리 성전을 짓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으로 먼저 규빗으로 말하고 있는 장과 광의 폭도 영적 의미가 있는데 먼저 문자적으로 보면
일 규빗의 길이는 약45-50㎝로 보고 있지만 우리의 심령 성전이 쎈치미터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규빗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규빗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영적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보면 백 규빗의 영적 의미는 바늘귀를 통과해서 들어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방이 백 규빗을 만들면 성전이 완성되어 바늘귀를 통과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오십 규빗은 영적으로 물고기라는 성도를 의미하고 또 법이라는 의미가 적용되는 것으로서
또 다른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의 손길로 할 수 있도록 하여 겨우 숨구멍이 트이고 있기 때문에
율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영적 의미가 적용되는 것이다.
세마포 장의 영적 의미
울타리를 막는 데는 세마포로 장을 쳐야하는데 여기에 없어서는 안 될 세마포는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하므로 이는 매우 중요한데 요즘 성막론이 많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이 말씀을 풀어 놓은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의와 성도들의 의를 나타낸다고 했지만 이것이
틀리다는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 보지 못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세마포의 영적의미는 계19장6-8절로 말씀하시는 것처럼 빛난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말하지만
그보다 깊이 보면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말씀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세마포에 쌓여
무덤으로 내려가신 것을 보면 결국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15:46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15:47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이처럼 세마포는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말씀으로서 결국 세상과 분리되는 성막 뜰을 만들기 위해서는
울타리를 쳐야 하는데 이 울타리를 중심으로 밖은 세상이지만 세마포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짐승을 잡는 곳이 있고 번제단이 있는 것처럼 이 울타리 안에는 피 냄새가 진동을 하고 짐승을
태우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 죽음의 장이 된다.
그러므로 세마포의 장을 경계로 밖은 자유함이요 안은 죽음의 장소로서 이를 영적으로 보면
내 심령 속에 살아있는 짐승 같은 모든 속성들을 잡아서 불태워 드려야 하는 것이다.
물론 문자로 보면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를 잡아 태우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내 심령 속에 숨어서
살고 있는 짐승들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혼적이며 영적인 짐승을 잡아서 피는 단 앞에 뿌리고
몸은 불태워 드려야 하는 것이다.
출27:9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을 향하여 뜰 남편에 광이 백 규빗의 세마포장을 쳐서 그 한 편을
당하게 할지니
이처럼 성막의 뜰을 만들면서 세상과 성막뜰을 분별하는 것은 세마포를 장으로 길게 만든 울타리지만
그 영적인 뜻은 세상과 죽음을 뜻하는 영적인 의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라는 말을 수 없이 하면서도 실제적인 영적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믿음의 현실로서 영적으로 라는 뜻을 눈에 보이는 현상적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영적으로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적으로라는 말을 풀어보면 영은 언어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라는 말 자체는
순수한 언어적으로라는 말인 것이다.
사람의 심령에 말이 만들어지면 그 말이ㅏ 만들어지는 데로 사람이 움직이게 되는 원리가
영이 육신을 다스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이처럼 영적이란 언어적인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내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주님이 하신 뜻조차 모른다.
기둥의 영적 의미
기둥의 몸통의 재료는 싯딤 나무에 놋을 입혀서 만들었으며 밑부분 밭침에는 놋으로 만들었으며
갈고리와 가름대라는 머리 부분은 은으로 만들었다.
출27:10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출27:11 그 북편에도 광이 백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기둥의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이처럼 분명하게 부분 부분들을 정확하게 만드는 재료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부분 부분들의
가지게 되는 영적원리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자적으로 보면 형식적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그 의미와 뜻이 분명하기 때문이 하나하나 가지고 있는
영적 의미를 모르면 초등학문에서 성경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먼서 싯딤나무는 척박한 사막에서 자라면서 단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영적으로 보면 이 싯딤나무는
우리의 심령을 말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심령이 율법적이며 세상적인 혼적인 삭막한 삶에서 강퍅하고
돌처럼 단단한 심령을 싸고 있는 놋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놋은 인간의 육체를 통해서 죄를 짓고 있는 영적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싸고 있는 놋은 인간의 죄와 혼적인 육신을 상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혼적이며
육성적이며 죄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광야 교회 생할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자 뱀에게 물렸던 것이며 이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 놓고 이 놋뱀을 보는 자는 살게 되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놋뱀을 예수 그리스도로 보고 있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구원을 얻게 되는 것처럼 이 놋뱀을 보는 것은 곧 내 죄를
보고 회개하면 산다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놋은 죄와 혼적인 육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45:2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사45: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이처럼 험한 곳은 죄의 속성을 말하고 놋 문은 인간의 입술에서 죄의 속성을 가진 언어를 말하는 문으로서
쇠빗장을 꺾는다는 것은 사랑의 언어가 나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죄의 속성을 단단히 채워놓은 것을
꺾어서 치워버린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각과 말이라는 영의 속성이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48:4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이처럼 완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언어의 속성이 강력한 악을 쓰는 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목의 힘줄은
무쇠라고 하는데 이 말씀의 영적 뜻은 사람이 악을 쓸 때 목 줄기에 힘줄과 핏대가 강력하게
줄이 서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무쇠라고 하고 이마라는 말은 생각이 죄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놋은 죄의 송성과 세상의 속성을 의미하므로 다른 성구도 보겠다.
렘6:28 그들은 다 심히 패역한 자며 다니며 비방하는 자며 그들은 놋과 철이며 다 사악한 자라
이처럼 패역하고 비방하는 말을 하는 자들을 두고 놋과 철이라고 하기 때문에 사악하다는 것이며
이 외에도 수없이 놋에 대하여 죄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단2:32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여기서 보면 더욱 확실하게 말하는데 우상이라는 죄의 속성은 비유할 때 넓적다리가 놋이라고 한 것이나
기둥의 기초가 놋이라고 한 것이나 영적의미는 같은 것으로서 결국 우상을 받치고 있는 것은
놋이라는 죄의 속성이다.
뒤로 넘어가면서 부분적으로 물두멍과 여러 놋 기구들에서 영적으로 자세하게 말씀드리겠다.
그리고 기둥의 숫자도 매우 중요한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남과 북편으로 스물씩 세우라고
하는 것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손길로 집안이라는 의미와 적용이라는 의미가 있는 영적 숫자로서
이는 세상과 분별이 되어 지도록 하나님의 손길로서 합하면 사십이 되기 때문에 천국 문에
매달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출27:9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을 향하여 뜰 남편에 광이 백 규빗의 세마포장을 쳐서 그 한 편을
당하게 할지니
출27:10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출27:11 그 북편에도 광이 백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기둥의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그리고 서편과 동편은 기둥이 열씩인 것은 열은 하나님의 손길을 뜻하는 숫자의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고
동과 서를 합하면 스물이 되므로 집안이라는 울타리가 쳐지는 것을 의미하는 영적 숫자인 것이다.
출27:12 뜰의 옆 곧 서편에 광 오십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출27:13 동을 향하여 뜰 동편의 광도 오십 규빗이 될지며
이처럼 동과 서의 양쪽을 다 합쳐 보아도 남과 북의 숫자에 반박에 되지 않아 정사각형의 네모 방장한
사복음서의 모퉁이 돌이신 진리의 말씀을 중심으로 성전을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쪽짜리인
율법적인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의 뜰의 경계선을 표시하는 세마포 장과 기둥은 결국 우링 인간의 심령 상태와
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놋 받침과 가름대와 은의 영적 의미
출27:10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이 말씀처럼 놋 받침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놋은 죄와 혼적인 육신을 싸고 있는 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받침이 놋이란 우리의 인간은 너희 아비 마귀로부터 태어난 혼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혼적이며
육성적인 인간을 기초로 머리에는 가름대를 씌울 때 은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가름대를 왜 은으로 만들어야 하는 영적 의미를 알아야 하므로 먼저 가름대라는
의미를 보면 세상과 성막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기 때문에 가름대라고 하며 또 은으로 만든다는 것은
은은 율법을 상징하고 비유하는 말씀이다.
그래서 세상과 성막의 뜰과 분리되는 가름대라는 잣대는 율법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를 영적비유로 말하는 것이다.
5) 울타리 문의 영적 의미
출27:14 문 이편을 위하여 포장이 십오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요
출27:15 문 저편을 위하여도 포장이 십오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출27:16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이십 규빗의 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출27:17 뜰 사면 모든 기둥의 가름대와 갈고리는 은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출27:18 뜰의 장은 백 규빗이요 광은 오십 규빗이요 세마포 장의 고는 오 규빗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출27:19 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그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을 다 놋으로 할지니라
성막문은 동편으로 나는데 십오 규빗에 기둥이 셋을 세우라고 하고 있으므로 십오에 대하여
영적 숫자에 대하여 알아보면 십은 하나님의 손길을 말하고 다섯은 열매 맺는 숫자로서
숨구멍과 호흡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인도함으로 성막을 들어가서
회개하게 되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은 양의 문으로서 여러 가지의 실로 만들어지는 성막문의 실이 가지는
영적의미를 알아야 이 양의 문이 생명의 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출27:16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이십 규빗의 장이 있게 할지니
여기서 말하는 청색 자색 홍색과 가늘게 꼰 베실이 나오는데 이 색깔별로 가지고 있는
영적 의미는 매우 깊고 오묘한데 일반적인 성막의 책들을 보면 지식적으로 풀어놓았기 때문에
처음 들어보는 소리이지만 끝까지 읽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일반적인 성막해석에는 이렇게 해석을 해 놓았다.
청색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자색 - 왕권 상징, 만왕의 왕
홍색 - 피 색갈, 고난의 주님
가늘게 꼰 베실 - 완전, 의로움
이처럼 말씀을 풀어 놓았지만 저자는 지식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순수한 영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실에 대한 영적 이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실의 색깔에 따라 언어라는 영의 속성과 질과
종류가 영적으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영적으로 실의 의미는 결국 말씀의 속성과 질에 대해서
나타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청색 = 하늘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는 것 같지만 계시록에 보아도 주님이
청색 옷을 입고 나오시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성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청색 실이란 실은 말씀이라는 언어의 속성이 하늘에 속한 말씀은 말씀이되 흰색으로
깨끗한 색이 아닌 율법적인 속성을 가진 언어의 속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마음의
색깔을 말하는 것이다.
자색 = 초등 학문적으로 보면 왕권을 상징하고 만왕의 왕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색옷을 입은 자는 왕이 된 적이 한 번도 없고 왕은 언제나 황금색을 입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자색이란 검정색과 붉은 색이 함께 섞이면 자색이 되므로 영적 자색은 사랑의 흰색과
혼적인 감장색이 혼합되어있는 색으로서 이는 종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요셉도
자색 옷을 입고 애굽의 총리는 되었지만 바로의 종이요 다니엘도 자색 옷을 입었지만
느부갓네살과 또 다른 왕들의 종으로 살았던 것을 보라 결코 자색 옷은 왕권이 아니라
종의 옷 색깔이기 때문에 누가복음에서 역사하는 생물로서 자색을 가진 율법의 영이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어야하거늘
자색 옷을 입었다는 자체는 율법적인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 상태와 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홍색 = 피의 색깔과 고난의 주님을 상징하는 것은 맞지만 주님은 피 묻은 옷을 입고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내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 입을 수 있는 깨끗한
세마포 흰옷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홍색 실도 결국 언어의 속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홍색 실이 가지는 영적의미는
내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결국 우리가 내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양의 문은 영적으로 우리의 심령의 문인 입술을 말하는데 이는
마가복음에서 역사하는 생물의 색깔로 붉은 말을 뜻하는 율법의 영이다.
가늘게 꼰 베실 = 완전함과 의로움을 가진 심령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회개의
말씀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공교하게 수놓은 문을 통과해서 성막 뜰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므로 이는 사복음서의 하나를 나타내는 말로서 마태복음을 상징하는
생물중 하나를 말하는 것으로서 율법의 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십 규빗으로 할지라고 하셨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이십 규빗의 숫자적인 영적의미는
성막안으로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손길의 인도함을 받아야 되는 것을 비유하고 있는 것으로서
사람의 심령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네 가지의 언어의 속성으로 얽히고 섞어서 짜놓은 율법의 문을 통과해서
성막안에 들어가려면 짐승을 끌고 들어가서 짐승을 잡아 불 태워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의 색깔이 계시록에서 진주 문이 되지 못하고 율법적인 속성을 가진
심령으로 만들어진 원망과 불평과 정죄의 속성을 가진 짐승들을 잡아 주님에게
들여야 하기 때문에 문의 색깔이 흰색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네가지의 실을 섞어서 짠 천의 색깔이 얼룩덜룩한 것은 사복음서의
영의 속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네가지의 언어의 속성이 결과적으로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는 바로 새하얀 세마포의 흰옷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의 흰색이 되어야
진리의 문인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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