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속 이야기

[스크랩] 통곡의 벽, 성전

안명애 2014. 6. 6. 10:08

통곡의 벽, 성전

 

거룩한 산 예루살렘에서



 

1. 통곡의 벽

십자가의 길은 따로 만들어 지난번 보내 드린 글에 설명 드린바 있다. 시장바닥처럼 복잡하고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을 피해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그 발자취를 더듬으며 우리의 온 여정을 마무리하고 이제야 대장정의 마무리 지점에 서게 된 것을 본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부터 가야바의 집과 성전과 빌라도의 법정이 생각보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음을 본다. 하지만 주리고 목마르며, 땀방울이 피 방울 되듯 흘리시며 기진맥진하신 그 몸으로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수모와 멸시 천대를 받을 뿐 아니라 당나귀나 달리는 말을 때려도 아플 채찍으로 찢기신 그 현장이 얼마나 내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이 길을 따라가며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 지신 주님 보며 나도 그길 가기를 더 다짐한다. 내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통곡의 벽이다. Via Dolorosa 에서 나오면 바로 연결되고 어깨너머로 El Aqsa 모스크와 황금돔 사원이 보이는 바로 앞에 서쪽 성벽으로 되어 있는 통곡의 벽이 보인다. 바로 앞에는 모스크, 그리고 벽에는 유대인 통곡의 벽, 그리고 그 앞에는 유대인에 의해 십자가 달리신 골고다 모두 지척에 두고 있다.

솔로몬 성전 이후 느헤미야와 스룹바벨 그리고 에스라가 협력하여 BC 515 년 성벽과 성전을 재건했다. 일명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한다. 그런 성전이 또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한 헤롯의 계략으로 그 성전을 헐고 새롭게 성전을 건축한다. 이른바 제3 성전이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이며 예수님의 예언대로 AD 70 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천년만년 갈 것 같은 대리석의 고풍스런 성전이 파괴된다. 그때 파괴된 성전 가운데 남은 것은 성전이 무너질 때 그 무너진 성전의 무게를 지탱해 준 성전산의 서쪽 편 축대였다. 그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통곡의 벽”이다. 통곡의 벽은 당시 성벽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예루살렘에 많은 것이 무너진 후 솔로몬 성전의 영화도, 그리고 헤롯 성전의 추억도 오직 기억할 수 있는 드문 곳 중에 하나이다. 이곳이 유대인이라면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와서 기도하고 싶어하는 지역이다.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옛 성전을 추억하는 것이지만 철거머리처럼 질기고 반항적인 유대인은 로마인들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예루살렘 수성을 위해 싸웠던 저들의 용맹을 보고 로마의 디도 장군은 내심 놀랬을 것이다. 마카비 전쟁으로 끝까지 헬라 세력을 이겨낸 유대인데… 그러기에 디도 장군은 제2성전의 다른 부분을 다 파괴하고 유일하게 이 벽만은 남겨 두었다. “봐라! 위대한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자는 이 엄청난 돌 무더기에 깔리게 하여 주리라” 라고 말하고자 했을까? 당시 로마 제국은 제도적으로 유대인에게 입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AD 70 년 이후 예루살렘이 훼파되고도 유대인 살금 살금 들어와 살더니 급기야는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들의 꺽이지 않는 기개를 보면 한민족을 참 많이 닮았다. 과장도 유분수지 수천 년 앞서는 유대인이기에, 한민족이 유대인 닮았겠지…… 그게 그거지 뭐…… 주여 저들이 곁길로 가고 있나이다.. 이째 저런 논쟁이 이 시간 이 장소에…… 비잔틴 제국에 들어와서는 일년에 단 한번 성전 파괴 기념일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다. 솔로몬 성전 파괴 일이나, 헤롯 성전 파괴 일이 같은 날이다! 이 날이 바로 유대인들의 달력으로 “아브”(Av)달 9일이다. 지금도 그날이 돌아오면 유대인들은 하루 종일 금식하고 기도한다. 그들이 기도할 대 읽는 성경이 “예레미야 애가서”인데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한 것이 예레미아서이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며 죽은 자를 보고 애곡하듯 하는 성경이 예레미야 애가이다. 그들은 성경을 택해도 합당한 말씀을 택함이 놀랍기만 하다.

통곡의 벽은 옛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서쪽의 일부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 벽을 서쪽 벽으로 부른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던 서쪽 벽은 헤롯대왕 때 쌓은 성벽의 일부이다. 이미 말한 것처럼 66년 유대인은 로마통치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AD 70년의 예루살렘의 파괴 즉 대재앙을 몰고 왔다. 로마군대의 무력 진압에 대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저항했다고 한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돌 위의 돌 하나 남기지 않고 파괴해버린 것이다. 이미 말한 것처럼 성전을 받치고 있던 이 서쪽 축대의 일부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성전산 서쪽 벽의 총 길이는 약 485m였으나, 현재 약 60m 정도만 남아 있어, 아픈 유대인의 과거를 말해주고 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성과 이 통곡의 벽을 되찾은 것은 이미 말한 것처럼1967년 6일 전쟁에 승리한 결과이다. 당시 서쪽 벽을 포함하여 성전 지역은 요르단 지역이었고, 유대인들은 접근할 수가 없었으며, 일년 중 정해진 날에만 방문이 허가되었다.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 정예공수부대는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6월 7일 사자문을 통해 예루살렘성에 입성했다. 그 모든 것은 다 잃어도 통곡의 벽은 반드시 찾겠다는 2000년 노력의 결실이었다. 자 그러면 6일 전쟁 이전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이곳 통곡의 벽에서 기도할 수 있었나? 아니다! 그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통곡의 벽을 유대인은 Hakotel Hama'aravi라고 부른다. 솔로몬 당시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하기까지 성전도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도 무너졌으나 아직도 이 벽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기에 이 벽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언제가 돌아 오면 반드시 기도하는 유대인의 구심점이요 또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각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볼 수 있는 벽은 사원 에스프레나이드의 서쪽에 지금까지 잘 보존된 벽의 큰 부분일 뿐이다. 그러면 이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AD 70 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멸망 받은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뿐 아니라 유대 전역에 유대인을 학살을 불러 일으킨다. 살아남은 자들은 다 흩어져(Diaspora) 다른 나라에 살아야 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서슬 퍼런 칼날아래에서는 할 수 없던 순례가 동서 로마 교회로 나뉘면서 기회가 찾아 왔다. 유대인들은 비잔틴 제국의 허락을 받아 이 성벽에 일년에 한번씩 모여 그것도 ‘성전 철거 기념일’에 돌아와 예배의식을 올릴 수 있었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에레츠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의 귀환을 꿈을 꾸게 되었다. 이 벽은 이스라엘 회복의 상징이 된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이 1948년에 유엔에 의해 독립을 선언했어도 예루살렘은 여전히 요르단 통치하에 아랍 지배하에 있었다. 하지만 6일 전쟁이 일어남으로 이 통곡의 벽과 예루살렘 일부를 회복하게 된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예루살렘의 회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회복’을 두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시계침’이라는 말을 쓸 수 밖에 없다. 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절기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나는 여러 번 세미나에서 재림과 관계된 절기가 앞으로 성취될 것을 말한바 있다. 초림과 관련된 절기는 다 성취되었고, 이제는 재림 시에 일어날 절기만 남겨 두고 있다. 나팔절, 장막절, 그리고 속죄일이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실 때 그 발 앞에 메시야임을 인정하게 되는 장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장구한 세월 동안 로마 제국 이후 비잔틴 제국에 의해 유대인은 통곡의 벽을 자주 갈 수 없었다. 오직 일년에 한번밖에 가볼 수 없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성전이 파괴된 그날, 쉽게 말하는 장례식 기일에 한번 입장이 허락되었으니 비통한 그들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래서 이곳을 ‘통곡의 벽’ ‘wailing wall’ 이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죽으면 곡하는 것을 wailing 이라고 하지 않는가? 바로 Wailing Wall 은 1948년 독립이 되어서도 갈 수 없는 아랍 지역에 있는 그 땅을 밟기를 얼마나 갈망했을까?. 우리는 이 통곡의 벽을 돌아 보면서 함께 기도하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통곡의 벽 사이에 촘촘히 들어 서 있는 기도 제목을 보며 저들의 기도 제목이 궁금하기도 하다.

이번에 함께 한 아틀란타에서 오신 조수아 김 목사님은 유대교에 조예가 깊은 분이시다. 김 목사님은 미국에서부터 Messianic Jew 가 선물한 Talit 을 가지고 오셨다. 나는 보스톤에 있는 유대 지도자로부터 Talit 을 직접 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돈도 주지 않으면서 맡겨 놓은 사람처럼 사오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게 되었다. Talit 즉 Prayer Shawl 은 한번 사면 일생을 입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 살 때 잘 사야 한다. 이것은 직접 손을 짜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비싸다. 가격을 보고 너무 비싸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대인들이 Talit 을 어깨에 두르고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볼 것이다. 내가 아는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도 통곡의 벽에 와서 자주 기도한다. 예수님이 친히 쓰고 다니셨고, 베드로와 바울이 일생을 쓰고 다녔다. 다행이 조수아 김 목사님이 Talit 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는 통곡의 벽에서 Talit 을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안내해 주시는 박 영국목사님도 비싸서 아직 사지 못하셨다고 안타까워하신다. 하나 사드리고 싶었는데 주머니가 허락 지 않았다. 다음에는 제일 귀한 것으로 꼭 선물해 드려야지…





2. 성전 산 (Temple Mount)

우리가 예루살렘에서의 보낸 시간은 반나절밖에 되지 않는다. 점심을 공원에서 먹고 바로 요르단으로 내려 가야만 한다. 국경선을 닫기 전에 건너 가려면 갈길 이 무척 바쁘다. 그러기에 그 많은 것들을 어찌 다 볼 수 있었으랴? 다음을 기약해야지….하지만 비록 안으로 들어 갈 시간적 여유는 없었지만 비아 돌로로사를 걸어 나오는데 성전산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돔이 찬란하게 반짝인다. 저곳이 바로 비극의 주인공이구나! 비아 돌로로사와 통곡의 벽 그리고 성전산은 다 붙어 있다. 우리는 통곡의 벽으로 향하며 걸어갈수록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 같은 성전을 바라 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갈 때에도 보고, 전망대에서 뻔히 내려다 보았다. 유대인에게는 솔로몬 성전이 있음으로 당연히 성전산이겠지만 무슬림들에게는 다르게 불린다. 유대인 못지않게 이 성전은 무슬림들에게도 중요하다. 이 성전산은 이슬람의 3대 성지의 하나로 황금돔 사원이고 바로 그 옆에는 예루살렘에서는 가장 크다고 하는 엘 아크사 모스크가 떡 하니 서 있다. 무슬림들은 이 황금 돔 (Dome of the Rock)을 그들의 3대 성지에 포함시킨다. 또 바로 옆에 있는 사원은 ‘엘 아크사 모스크(El-Aqsa mosque)’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가장 멀리 떨어진 사원’이라는 말이다. 또 다른 말로는 ‘가장 오래되었다’ 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잠시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 모스크는 AD 709년부터 715에 걸쳐 칼리프카 세운 사원이다. 십자군 전쟁 때 1099년 들어 온 템플 기사단에 의해 확장되기도 하였다. 13세기 말에 마멜크인이 십자군을 몰아 낼 때 비로서 인 건물 전체가 Mosque El-Aqsa 가 되었다. 어째튼 황금돔 사원을 바라보니 에스겔 5:11의 말씀, 네가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다"이 기억난다.

자 이 성전산을 설명하기 위해 성경으로 돌아 가 보자. 성전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곳이다. 무슬림들은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라고 한다. 동예루살렘에 낮게 자리잡은 산 모리아(Mariah) 산이다. ‘모리아’는 ‘경외’와 ‘빛’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아랍인들은 이곳을 ‘모리아’라고 부르지 않고 ‘하람 알-샤리프’라고 부른다. 세계 많은 곳 중 같은 성경을 가지고, 또한 같은 장소와 같은 내용을 갖고 이렇게 다르게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바로 그 자리 위해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진 것이다. BC 950 년 솔로몬은 모리아 산상에 성전을 짓고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이는 역대하 6장 18-19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여기까지 타자를 칠 때 손가락에 너무 힘을 주어서인지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손마디가 아파온다. 잠시 쉬었다 해야지… 구약 성경 전체를 일일이 손으로 필사한 서기관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판도 컴퓨터도 없던 시기에 갈대에 잉크 묻혀 양피지에 일일이 기록하지 않았던가? 맛소라 학자들이 자음 독법인 ‘케티브’와 모음 독법인 ‘케레’만으로 성경을 거의 완벽하게 필사하였다는데… 나도 소시적에는 컴퓨터 타자법 독학을 해서 적어도 abc 와 가나다는 찍게 되었는데… 어험… 알량한 컴퓨터 타자법과 ‘케티브’와 ‘케레’를 비교하다니. 무엄하구나… 에구 기 죽어…나는 어찌 내가 쓴 글도 읽어보면 틀린 글씨가 그리 많이 나오는지…이미 글을 써서 보내고 나면 꼭 틀린 글씨를 그렇게 먼저 들어온다. 마치 교정 마치고 서점에서 보면 틀린 글씨가 먼저 들어 오듯이… 실제 우리 부부는 아내가 20권 이상, 내가 10권 이상을 출판을 했는데 3교(세번 교정했다는 뜻)를 해도 오자가 그리 많이 나옴을 보았다. 서기관들의 필사법 ‘마세켓 소페림’을 배우면 타자 속도가 빠르고 정확해지려나…에구..더 이상 손가락이 아파서 칠 수 없다. 10분 정도 쉬어야지…

잠시 앞마당을 다녀 오니 맑고도 부드러운 완연한 봄날씨의 정점에 와 있다. 화창하기가 더할 나위 없다. 사무엘을 내 품에 안고 뱃놀이 한번 하면 참 좋겠다. 아!

“가당치 않은 꿈을 꾸고 있구나 꿈 깨라!”는 주님의 음성 들리는 듯 하다! 내가 좋아하는 로즈댄드롬 꽃 여러 송이가 며칠 전 온 비에 떨구더니 벌써 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 꽃잎 다 지기 전에 이번의 모든 글을 마치면 좋겠다. 각설하고…

솔로몬이 지은 이 성전은 예루살렘 동쪽, 다시 말하면 낮은 지역이 아닌 비교적 높은 지대였다. 언덕 같은 산 위에 떡 하니 성전을 지어 올렸으니 얼마나 아름다울까? Israel Ariel 과 Chaim Richman 이 지은 Carta’s Illustrated Encyclopedia of the Holy Temple in Jerusalem 이라는 책에는 당시의 제사장의 복장과 성전 예식, 제사 모습, 솔로몬 왕이 성소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대하 6장 과 대하 7장의 낙성식을 비교적 정확한 화보로 만들었다. 난 매일 밤바다 이 책을 보고 또 본다. 내가 늘 기도하던 Temple Prayer 의 모습이 시각화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렇게 천년만년 갈 것 같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지게 된다. 바벨론 제국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멸망 당한다. 예루살렘은 불에 타고 성전도 화염에 휩싸이고 그리고 다른 것은 몰라도 법궤가 발견되지 않았다. 요즈음 YouTube 이 법궤를 찾았다는 Ron Wytte 의 증언이 놀랍다. 이미 보내 드린 주소(다시 알려 드림, http://www.youtube.com/watch?v=dfYpYv_A4Ns)에 보시면 그의 놀랍기 그지 없는 증언이 나온다. 그가 발견한 법궤 바로 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고 그의 피는 정확하게 법궤 위에 흘러 내렸다고 한다. 얼마나 놀라운 구속의 은혜인지…

통곡의 벽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반골 기질이 다분한 유대인을 결코 로마 당국은 예루살렘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훼파되어 방치된 지 어느 해, AD 690 년대의 일이다. 족보도, 혈통도, 가문도, 배경도 잘 모르는 사람이 나타났다. 쓰다 보니 그 말이 그 말인데 괜히 손가락 아프게 글을 길게 썼구나. 오호통제로다! 그가 바로 마호메트, 무함마드, 또는 모하메드 무엇으로 말하든 아람어, 히브리어, 아랍어는 자음만 같으면 모음에 따라 발음이 달라도 그리 상관없다. 그를 따르는 이슬람 교도들이 난데없이 나타나 이 성전산 기슭에 모스크 대사원을 건축해 버렸다. 이유인즉 마호메트가 이곳에서 승천했다나…… 비약도 유분수이지…… 그들의 말에 따르면 마호메트와 그를 따르는 최초의 무슬림들은 610년부터 624년까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했다고 한다. 그 기도의 방향은 AD 624 년에 예루살렘에서 메카로 방향이 바뀐다. 이때부터 예루살렘은 메카, 메디나와 더불어 이슬람의 3대 성지가 된다.

모리아 산 즉 솔로몬의 성전 자리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던 제단 바로 바위이다. 아랍인들은 이곳이 이스마엘을 드린 곳이라고 믿는다. 그 자리에서 가브리엘 천사의 도움으로 마호메트가 승천했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코란이 주장하는 바요, 저들이 믿는 믿음이다. 믿어도 제대로 믿어야 한다. 이슬람이 말하는 예언자, 모하메트는 AD 621 년에 날개가 달린 말 ‘부락’을 타고 메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모스크 (지금의 황금 사원 이름 옆에 있는 알 아크사 모스크)까지 갔고, 그곳에 있는 모리아산 바위(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려고 했던 곳)에서 하늘로 올라가 하루에 다섯번 기도하는 것 등 많은 계명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바로 바위의 길이가 13.5m, 폭이 10.8m, 높이가 1.8m 인데 여기에 그들의 모스크를 세우게 된 것이다. 바위 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모하메트가 승천했다고 이슬람교도들은 굳게 믿고 있다. 기가 막힌 사탄의 속임에 기만 당하고 있음이다. 지금 우리가 ‘황금돔 사원’이라는 비교적 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두개의 이름이 합해졌기 때문이다. 황금빛 나는 ‘돔’(Dome)과 거룩한 ‘바위’가 합쳐서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이 된 것이다.

‘황금돔 사원’(Dome of the Rock)’ 사원을 최초로 건축을 명령한 사람은 초대 칼리프였던 오마르로 그의 이름을 따서 ‘오마르 사원’이라고도 한다. 그의 이름이 좀 긴데, full name 은 오마르 이븐 알 캇탑 갈리프(580-644)이다. 그가 예루살렘을 정복하던 해가 AD 638년인데 그는 성전산에 가득 쌓인 쓰레기더미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알라는 위대하시다. 그의 손으로 나의 영혼을 붙잡은 분의 이름으로 맹세컨대, 이곳은 알라의 예언자가 자신의 밤의 (승천)여행을 우리에게 설명했던 다윗의 모스크”라고 말했다. 그는 성전산에 있는 쓰레기 더미를 손수 치우기 시작했고 그 장소를 모스크로 바꾸어서 이슬람 예배를 드리게 된다. 이미 있던 자리에 모스크로 예배를 드리다가 사원으로 드리게 된다. 바로 옆에 있는 엘 아크사 모스크도 건축된 것은 후대의 무슬림 지도자에 의해서이다. 그는 아랍 통치자 “알 말리크(Abd Al Malik)”다. 그는 벽면에 자기의 이름과 건축 연도(서기 691년)를 새겨 놓았다. 십자군 때의 격동기를 지나고 다시 회교 사원이 된 것은 1187년이다 그후 오토만 투르크의 슐레이만(술탄)이 이곳에 사원의 내부에는 바위를 목제각으로 치장했던 곳에 그가 추가로 장식했다 한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가 기증한 카라라 대리석과 이집트의 파록왕에 의해 기증된 천정 장식이 더해졌다고 한다.

그러면 엘 아크사 모스크 옆에 있는 황금 사원 그 황금은 언제 입혀진 것일까? 이것은 십자군이나 아니면 술래이만 대제 때도 아니고 비교적 아주 최근의 일이다. 바로 요르단의 후세인 왕이 그 일을 행한 사람이다. 요르단의 후세인 왕은 650만 달러의 사재를 털어 구리와 니켈 합금인 24K 순금으로 그 돔(Dome)을 씌우게 했다. 1993년 1월 시작된 이 공사는 15개월 동안 계속되어 1,200장의 얇은 순금 판이 “돔” 위에 입혀져 글자 그대로 “황금의 돔”이 되었다. 아랍인에게 점령당한 이 사원에 두 개의 큰 사건이 발생한다. 1951년 7월 20일에는 요르단왕 아브다라가 이곳에서 암살된 것이다. 아브다라 왕의 옆에는 손자가 있었는데 그는 무거운 가슴장식을 달고 있었다. 그 덕분이 그가 살아 났고 나중에 요르단의 왕이 된다. 그때의 총탄 자국이 기둥이 남아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사건은 1969년의 정신이상자였던 오스트리아 사람이 모스크에 불을 질러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다.

아브라함부터 솔로몬까지, 솔로몬에서 오마르까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성전 자리에 이슬람의 ‘황금돔 사원’과 엘 아크사 모스크가 버젓이 서 있는 것 자체가 종말론적이다. 이는 친히 성전 되신 예수님을 배제하고 눈에 보이는 성전 짓기에 더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과 유대교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에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밤이 낮이나 한편에서는 유대인의 통곡의 기도가, 또 다른 편에서는 하루에 다섯 번씩 드려지는 기도 가운데, 진실로 참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모든 민족, 모든 족속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만 엎드리도록 우리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종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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