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라(히브리어:סלה )는 기도나 시편에서 "멈춰서 들으라"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앞 구절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셀라는 아멘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이 의미에서 셀라는 읽는 이에게 잠시 멈추어서 앞의 내용을 묵상하라는 의미로 생각된다. 다른 해석으로는, 셀라는 음악 용어라는 해석과 (이는 시편 전반에 걸쳐 이 단어가 나오는 것을 잘 설명해준다) "영원히"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어원 [편집]
셀라의 어원과 정확한 의미는 알려져있지 않다. 이 단어는 시편의 39개의 편 중에서 71번 등장하며, 하박국 3장에서 세 번 등장한다. 셀라는 시편 3, 4, 24, 46편에서는 끝부분에 나오며, 다른 대부분의 경우에는 한 절의 끝에 등장하나 예외로서 시편 55:20, 57:4, 하박국 3:3, 9에서는 절의 중간에 등장한다.
이 단어는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 의미가 고대의 성경 주석가들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Septuagint, Symmachus, Theodotion는 διάψαλμα 라는 단어로 번역하였는데, 이 그리스어 단어는 히브리어 "셀라"와 마찬가지로 수수께끼의 단어이다. Hexapla는 단순히 음역하여 σελ라고 썼다. Aquila, Jerome, Targum은 "언제나"로 번역했다. Hippolytus 에 따르면 그리스어 διάψαλμα는 리듬이나 멜로디의 변화 또는 주제나 사상의 변화를 표시하는 단어라 한다. Baethgen은 셀라가 몇 편의 시편에는 끝에 등장하는 점을 들어 이 의견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단어는 Masoretic text에서의 편 구분에서 끊지 않고 연속으로 낭송하는 것으로 여긴 편집자가 삽입하였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재의 시편의 구분이 히브리어 원본에서도 동일한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셀라는 [calah]라는 히브리어 어근에서 파생된 것으로 [calah]의 의미는 무게를 달거나 무엇을 측정할 때 "달다"라는 의미이다. 성경에 기술되는 고대 시대에 음식이나 다른 귀중한 필수품들은 천칭에 달아 그 가치를 측정했다. 천칭의 한 접시에는 추를 놓고 다른 접시에 물건을 놓는 방식이다. 이 단어의 용례는 욥기 28장 15절과 16절에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 단어는 회중이나 경배자들에게 언급한 주제나 소재들을 주의깊게 재고 검토하라는 권유를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현대의 해석 [편집]
일반적으로 "셀라"는 문법적인 연결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셀라는 예배음악의 기호이거나 글을 읽을 때의 지시사항일 것이다. "악장에게"(To the choir master [])라는 설명이 붙은 39개의 시편중에서 31개에 "셀라"가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셀라의 음악적인 용도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 발맞추어, "셀라"는 히브리어에 모음을 잘못 붙인 것으로 올바른 단어는 "Sollah"라는 주장이 있다. (Ewald, "Kritische Grammatik der Hebräischen Sprache,"p. 554; König, "Historisch-Kritisches Lehrgebäude der Hebräischen Sprache," ii., part i., p. 539). 이 지시어 (Sollah)는 "높이다"라는 의미로, 목소리가 없는 구간에서 오케스트라가 크게 간주를 연주하는 부분을 표시하는 포르티시모와 같은 용도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가창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멈추는 표시가 된다. 이 의미 또한 셀라가 "shelah" (잠시 멈춤)의 변형이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절의 중간에서 "잠시 멈춤"이라는 의미는 적용하기 힘들고, 연속된 의미를 중단하는 부분에서도 셀라가 등장하기 때문에 이러한 가정은 큰 반향을 끌지 못했다.
Grätz는 "셀라"가 새로운 문단을 시작하고, 때에 따라서는 인용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시편에서 네 번에 걸쳐 마지막에 "셀라"가 등장하고 있으나, 위에 기술된 것처럼 시편은 연속적으로 읽을 수 있으며, 여러 편은 부분으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시편 9편과 10편은 Septuagint의 번역에서는 하나로 되어 있으며 διάψαλμα가 없으며, 또한 시편 3편, 24편, 46편에서도 이 단어를 쓰지 않고 있다. B. Jacob은 어원을 통한 해석이 불가능하므로 "셀라"는 사원에서 부르는 노래에서 잠시 멈추는 부분을 나타내며, 시나고그나 교회가 사원의 특권을 얻을 수 없도록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셀라는 현대의 래스터패리언 음악에서도 사용된다. 대부분 노래의 가창이 멈추는 부분에서 사용되며, 그 의미는 그 전 구절을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셀라'는 시편에 74번 기록되어 있고 하박국에서도 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자그마치 77번이나 기록되고 있는 이 '셀라'라는 말씀에 대해서
우리는 하찮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셀라'는 매우 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씀입니다.
'셀라'는 때때로 엄숙함을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때로는 장엄함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때로 이 '셀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불병거가 우레 소리와 같이
큰 소리를 내면서 달려가는 모습을 표현해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셀라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시적 의미
먼저 '셀라'는 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는 수필이나 소설과는 달리 매우 짧고 함축적인 글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를 읽을 때에는 빨리 속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읽고 한 단어 한 단어를 깊이 상고하며 그 의미를 곱씹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셀라'라는 말씀을 발견하면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셀라가 붙어 있는 말씀의 비유적인 의미, 혹은 거기에 담겨져 있는 깊은 뜻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상상의 날개를 펴서 날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본문 시46:2-3절의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셀라)"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셀라'라는 단어는 읽지 않습니다. 음악의 악보로 본다면 기호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셀라에 대해서 말씀함으로 모두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46:3절 끝에 '셀라'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깊이 상고하고 뜻을 살피라는 뜻입니다.
그냥 지나칠 단순한 말씀이 아니고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셀라'가 붙어 있는 말씀이면 어떤 뜻이 있는 것일까? 하고 그 의미를 깊이 살펴야 합니다.
시46:2-3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도우시며 특히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큰 힘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인데,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먼저 '땅이 변하든지' 라고 했습니다. 땅이 변해도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땅이 변하려면 지진이 일어나거나 큰 천재지변이 일어나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땅이 변하는 것과 같은 매우 충격적이고 큰 환란과 역경으로... 오늘 우리 성도들의 믿음은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고 크게 위축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며 산이 요동하는 것과 같은 큰 시험과 어려움들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핵전쟁과 같은 가공할 만한 전쟁에 휩싸인다든지 우리가 사는 사회가 갑자기 무정부 상태가 되고, 사회 질서가 완전히 파괴되는 상태로.... 돌변하는 그런 상황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경제가 도탄에 빠지고, 이단이 성행하며, 초대교회의 시대처럼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재현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말세에 나타나는 징조입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일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완전한 피난처가 되시며, 큰 힘이 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이보다 더 무시 무시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으며 이런 일들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깊은 뜻을 상고해 보라는 뜻으로 성경은 '셀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셀라는 시적인 의미, 즉 짧지만 매우 깊고 함축적인 뜻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셀라'라는 말씀이 나오면 그 말씀의 의미와 깊이를 자세히 살펴보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이와같은 말씀은 얼마든지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시60:4절 말씀에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기를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시61:4절에서도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셀라)"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셀라'는 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천천히, 자세히, 그리고 깊이 상고해 보라는 것입니다.
2. 중지의 의미
둘째로, '셀라'는 중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게세니우스(Gesenius)와 톨루크(Tholuck), 행스텐벅(Hengstenberg)과 같은 신학자는 '셀라'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것은 종종 음악에 있어서 중지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헬라어에 따르면 '셀라'는 엄숙한 찬양을 끝내는 말이나 또는 쉼, 중지 등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음악의 기호로 볼 때에는 잠시 멈추고 쉬면서 기다리는 의미도 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셀라'를 성경에 기록해 두신 이유는 우리의 바쁜 생활을 멈추고 생각하며, 멈추고 숙고하며, 멈추고 경배하며, 멈추고 회개하며, 멈추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멈추는 것은 더 진보된 전진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자동차가 속도를 내는 엑셀레이터만 있고 브레이크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자동차는 필경 큰 사고를 내고야 말 것입니다.
앞으로 잘 전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멈추어야 할 때 멈추어야 하고, 중지해야 할 때 중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7일을 주시면서 그 중에서 하루를 쉬게 하셨다. 6일동안 일하고 하루는 멈추라는 것입니다.
현대 의학이 밝힌 바에 의하면, 인간의 생체리듬과 건강을 고려해 볼 때 인간은 일주일에 하루를 쉬어야만 한다는 연구 조사가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주일 내내... 일년 내내... 일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치명적인 병을 얻어서 정말 멈추어 버리는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정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루를 쉬고, 멈추어서.... 육신만 쉬라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질서요 신비한 비밀입니다.
출16:4-5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욕심을 내며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었지만 곧 썩어 없어지므로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꼭 하루에 먹을 수 있는 분량만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 육일에는 갑절로 거두라고 하셨는데, 이는 안식일에 모든 것을 정지하고 쉬기 위함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갑절로 거두는 육일에는 안식일이 되어도 만나가 썩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불순종하고 안식일에도 만나를 거두러 나갔고, 그들은 헛탕을 치고 돌아왔습니다.
주일에 일하면 많이 벌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느 말처럼.... 결국에는 손해를 보고 마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쉬지 못하니 건강이 나가고, 주일을 지키지 못하니 마음의 평강이 나가고..., 시간이 나갑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의 복이 나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쉬어야 합니다. 정지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주일에 교회에 와서 일을 많이 하니까 더 피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일을 해서 피곤해도... 하나님께서는 새 힘을 주시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능력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성일로 지키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거두시고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복으로 역사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일이 우리를 지킨다는 말씀이 맞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셀라'는 정지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멈추라는 것입니다. 멈추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삶에 쫓기어 피곤하고 곤비한 삶을 살지 말고 잠시 중단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출14:13절 말씀에 보면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고 했습니다.
삼상12:16절에서도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멈추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모든 일손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 한마디를 읽는데 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한 구절을 읽는데 하루가 걸릴 수도 있으며 일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멈추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 그리고 그것의 보편성과 영원성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시51:15절의 말씀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라는 말씀을 읽고서.... 그는 모든 것을 중지하고 오랫동안 묵상하였습니다. 결국 그 말씀은 그를 회개시키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신학자 카우퍼(Cowper)는 롬3:24절의 말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라는 말씀을 오랫동안 묵상하였을 때, 결국 그 말씀은 그를 깊이 회개시키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병이나 재산이나 사고 등으로 중지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그러한 중지는 결코 몰락이나 붕괴가 아니라, 그 중지는 과거에 받은 은혜를 보다 풍성하게 해 주는 것이며, 또한 미래를 평탄하게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고통을 받는 것은 무익한 것이 아니요 오히려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고통을 받을 때 멈출 수 있으며,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시편과 하박국서를 읽을 때에 77번이나 멈추고 묵상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다른 64권의 성경책을 읽을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때때로 읽는 것을 중지하고 깊이 묵상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셀라'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멈추어... 보다 강한 계시의 빛을 간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강조의 의미
셋째로, 셀라는 강조의 의미가 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에발드(Ewald)는 말하기를 셀라는 히브리 단어 '올라가다' 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며, 그 올라가다라는 말은 '목청을 높이고 특이하게 발음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곧 강조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삶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강조하며 사십니까?...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면에 오는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적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관이나 강조하는 면에 있어서 얼마나 많이 시정되어야만 하는가를 생각해야만 할 것입니다.
영국에 캐리라고 하는 큰 부호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죠지라고 하는 큰아들과 윌리엄이라고 하는 작은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두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매우 잘 났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정직하게 신실하게 살아서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이 두 아들에게 기대가 매우 컸습니다. 이 두 아들이 캐리 가문에 크게 명예를 높여주는 훌륭한 두 기둥이 될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의 기대와 같이 큰 아들 죠지는 국회의원이 되었고, 사업 수완도 있어서 돈도 많이 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 아버지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 윌리엄은 느닷없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선교사로써 인도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강력하게 만류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선교사냐?, 왜 그 미개인들 속에 가서 한평생을 살려고 하느냐?"고 말렸지만 아무도 그를 만류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선교사로 나가서 일생을 헌신했고, 세월이 흘러 기한이 되자 두 사람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대영백과사전'에 두 사람의 이름이 올라갔는데, 선교사 윌리엄 캐리에 대해서는 무려 한 페이지 반에 걸쳐 기록되어 있지만 그의 형 죠지에 대해서는 '윌리엄 캐리의 형'이라고 하는 말 밖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누가 더 자랑스런 사람이 되었습니까?
우리는 어느 것이 참된 것인지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당장을 두고 잘됐느니 못됐느니, 성공했느니 실패했느니 하는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정말로 자랑스러운 사람인지는 훗날에 가봐야 아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날, 주의 재림의 날에 가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1:12-14절에서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자랑이 되어야 그게 자랑이지, 그 날에 가서 부끄러워 질 것, 아무런 소용이 없이 되고, 오히려 치욕스러운 일이 된다면 그것은 자랑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육신적으로 볼 때 자랑거리가 많았던 사람입니다. 훌륭한 가문, 명석한 두뇌, 최고의 학벌, 도덕적인 삶 등등... 모두가 자랑거리입니다.
그러나 그는 참 진리를 알고 예수를 영접한 다음부터는 지난 날에 자랑거리로 여기던 그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그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면서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갈6: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하여 지나치게 집착하고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면 거기에서 돌이키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아야 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자랑하고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곧 우리의 기쁨이 되시며 영원한 기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4. 영원한 의미
넷째로, 셀라는 영원한 의미가 있습니다.
셀라는 '영원히'라는 의미로도 해석되고 있습니다. '셀라'는 단지 시적인 의미와 중지, 혹은 강조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메아리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원히'라는 말은 하나님의 선은 영원하며, 하나님의 통치도 영원하며, 의인의 기쁨도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라는 말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 하나는 성도의 미래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이 세상을 유한한 것이요 한계가 있는 것이며, 반드시 종말이 올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세계, 저 천성을 바라보므로.... 오늘의 수고와 고통을 오히려 기쁨으로 감수하고 이겨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영원한 세상을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전부요, 이 세상을 낙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결국은 이 세상이 끝날 때 끝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계21:8).
다시 말씀드려서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에서... 그리고 안믿는 자들은 영원한 지옥 형벌에 거하게 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영원히'의 의미는 믿는 자들에게는 소망을 주고 힘을 주시는 말씀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경고의 메시지요 심판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말씀가운데 '셀라'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1) '셀라'는 시적인 의미가 있어서 쉽게 지나쳐서는 안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고 그 깊은 뜻과 의미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2) 또한 중지의 의미가 있으므로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능력을 바라보며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3) 또한 '셀라'는 강조의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강조해야 될 부분, 자랑하고 드러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영적 자세를 갖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 마지막으로 '셀라'는 영원한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주의 영광이 영원하며, 그의 신성과 능력이 영원하며, 주의 나라와 주의 세계가 영원함으로 유한한 이 세상에 낙을 두지 말고 영원한 저 천성을 바라보며 소망중에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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