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 約 神 學
後 先 知 書(이사야~에스겔)
강의 이현채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신학연구원
舊 約 神 學
後 先 知 書
(이사야~에스겔)
차 례
서론 2 ...................................................................................... 5
제 1장 이사야 5 .......................................................... 23
1. 유대와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들 5 ............................................... 9
2. 제 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신탁 9 ............................................... 12
3. 여호와의 위대한 심판들 12 ............................................... 13
4. 예언적인 경고들 13 .......................................................... 15
5. 역사적 부록 15 ................................................................. 16
6. 하나님의 교회의 존재와 운명 16 ...................................... 23
제 2장 예레미야 24 ......................................................... 51
1. 예레미야의 여행 29 ....................................................................... 51
제 3장 에스겔 51 ............................................................... 64
1. 에스겔의 여행 54 ............................................................... 64
舊 約 神 學
(후 선지서)
이사야의 총 제목: 십자가의 승리 | |||
보 좌 | |||
왕 | |||
주 권 | |||
통 치 (공의와 순종으로 다스림) | |||
원리 |
거룩, 의, 공평. | ||
방법 |
제시, 설명, 적용. | ||
성격 |
인내, 지속, 능력. | ||
은 혜 (사랑과 감사) | |||
성 경 |
예수님 |
성 도 | |
복 음 |
선 민 | ||
사 랑 |
세 상 | ||
구약에 나타난 복음서가 이사야서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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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 야
1. 책명
이 책은 주인공의 이름을 따라 히브리 성경에서 ‘예샤야’ 혹은 ‘예샤야후’라 부른다. 이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란 뜻이다. 70인역에서는 ‘헤사이아스’라 부르고, 벌게이트역은 ‘에사이아스’라고 부른다.
2. 주제
이사야서의 기본 주제는 인간의 구원이 인간 자신의 힘이나 선한 행위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구속자이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해서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전체를 통하여 보여 주는 바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그의 계약 백성을 불경건하고 추한 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단련시키고, 징계하셔서 그의 구원의 역사에 참여케 하신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사야서 7장 9장, 그리고 52장 13절로 53장 12절의 메시야 노래 등은 기독론을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의 어느 책보다도 깊고 오묘한 기독론 적 통찰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
3.저자
이사야를 비롯하여 익명의 선지자들이 포로 귀환 이후에 보충한 종합 예언서라는 주장이 있으나 유다 왕정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당시의 국제 정세와 국내 정세를 민감하게 파악한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책으로 기술한다.
이사야가 전장의 저자임을 부인하는 부정적 비평주의에서 우리가 받은 인상은 그것이 저자가 누군가에 대해서는 전혀 일치할 수 없다. 신약의 명백한 증거에 의해서 저자가 이사야가 저자임을 확신케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전책의 목적을 고려할 때 이사야를 40장부터 60장의 저자로 단정함이 그러한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상의 이론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중에 있을 분해 연구에서 예언서의 저류에 흐르는 통일성과 조화가 제시될 것이므로 몇 마디로 본서의 목적을 진술하려 한다.
3. 목적
이 고귀한 예언의 목적은 구원이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요 즉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지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는 진리를 가르치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선지자의 이름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또한 그것은 그의 말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첫 장에 ‘시몬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27절)는 말이 나타난다. 이 구절은 선지자가 계속 확장시키고 있는 주제를 소개한다. 실로 40장부터 66장들은 이 사상에 대한 개괄적 설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사야 선교는 유대 역사의 중요한 시기에 나타난다. 앗수리아 세력이 발흥했고 이로 인해 국내에 두개의 정견이 나타났다. 하나는 애굽과 동맹을 맺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앗수리아와 동맹을 맺자는 것이었다. 이사야는 인간사이의 동맹을 금하고 국가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것을 역설한다. 구원의 징조로서 그는 메시아 탄생을 선포하고 왕국의 성격에 관해 예언했다. 그의 예언 뒷부분에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의 영적 활보와 운명을 진술한다.
본 성경을 기록한 특징으로는 메시야 예언이 가장 상세하고도 많이 언급되어 있는 구약의 복음서이다. 문체는 산문과 시 양식, 그리고 다양한 수사법과 은유를 구사하여 심도 깊은 문학성을 지녔다. 또한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심판(1장-39장)과 메시야를 통한 세상 구원(40장-66장)을 묘사한 신구약 성경의 축소판이 본 성경이다.
이사야의 주요 주제들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적 심판을 선포하고, 심판 후 베풀어질 은혜의 회복을 예언한 본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보여 준다.
1. 한 분이신 하나님: 오직 유일하신 참 신이며 다른 이방신들은 실재하지 않으며 그 이름들은 결국 훗날 조소의 대상이 된다.
2. 만물의 통치자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은 또한 이 세상의 역사를 당신의 구원 경륜에 합당하도록 이끌어 나가신다.
3.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죄악 된 인간 존재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시다(5:19, 24; 10: 20; 30:15).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죄악에서 떠나 항상 성별된 생활을 해야 한다.
4. 심판자 하나님: 앞서 살펴 본대로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당신의 백성들이 거룩하길 요구하신다. 도덕적· 종교적으로 타락하여 죄로 더럽히면 마땅히 징계로서 심판하신다.
5. 하나님의 나라: 메시야를 통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희망찬 미래는 당시의 암담한 상황과 마찬가지로 온갖 우상들과 불의가 많아서 오늘날 이 시대에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도 큰 위안과 소망을 준다.
분 해
1. 유대와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들(1:1-12:6)
크게 규탄함(사 1:31): 1절은 일반적인 표제로서 전권을 집약한 서론이며 인물, 저자, 제목, 연대를 나타내고 있다. 이 장은 백성의 죄와 수난과 순결을 위한 앞으로 있을 형벌의 필요성 사이의 관계를 보여 주려는 것이 목적이다. 2절로 9절에서는 국가의 부패는 하나님을 떠난 결과이며 백성에게 임하는 재앙의 원인이 됨을 설명하고 있다. 10절로 20절은 이러한 부패와 종교적 실천 생활과의 관계로서 마음이 여호와로부터 멀리 떠나서 이루어지는 의식들은 그 자체가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보여주려고 배안된 것이다. 21절로 31절은 현재의 도덕적 부패와 전날의 성읍의 영광과 악한 통치자가 멸망 될 미래를 대조시킨다. 본장의 첫 부분과 둘째 부분은 소돔과 고모라의 이중적 언급으로 연결되어있다(10). 셋째 부분은 앞의 기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돋우는 울부짖음으로 소개된다(21). 일관성과 통일성 있는 작문으로 어떤 하나의 특수한 위기에 잘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이 장은 일반적인 서론으로서 신민들이 경험한 어떤 위기보다도 더 많이 당해야할 연쇄적인 사건들을 서술한다.
백성에 대한 메시아의 통치와 심판(2:1-4:6): 2장 1절은 예언에 대한 서론적 표제를 구성한다. 2절로 4절은 참된 종교에 있어서 훈계의 자료인 선민의 고귀성을, 그리고 5절부터 4장 1절까지는 이사야가 살고 있던 당시의 백성의 정황을 얘기하고 또 외국과의 동맹이 세 가지의 커다란 악을 초래했으므로 벌이 내릴 것을 얘기하고 있다. 2장 9절로 11절은 백성의 비천을 말하고, 12절로 17절은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을 여호와의 날과 백성이 신뢰하던 것이 천하게 될 것을 소개한다. 18절로 21절에 우상들이 파괴될 것을 말하고, 3장 1절로 7절에서는 유다의 지도자들이 사로잡혀 가게 될 것을 각각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관원들의 죄 때문임을 8절로 15절에 서술했다. 3장 16절로 4장 1절까지는 유다의 여성들이 사치와 교만에 빠지는 것을 보여 준다. 4장 2절로 6절은 메시아의 주제를 회상하므로 마지막을 맺는데 거기서는 메시아가 통치할 때의 교회의 내부적 정황을 본다(2:l3절과 51:4. 2:2절과 56:7절. 3:17절과 20:4절을 대조해보라).
유다에 만연된 악들(5:1-30): 1절로 7절은 비유로서 애호 받는 일국의 높은 지위와 그 몰락을 서술하려고 했다. 8절로 30절은 그 비유의 해설로서 백성의 죄와 그들에게 내릴 재앙이 서술되어 있고 다음엔 여호와의 심판이 경고되어 있다.
이사야의 환상(6:1-13): 본 장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1절로 8절은 환상, 9절로 13절은 메시지이다. 그러나 이 두 부분들의 정확한 관계는 결정키 어렵다. 다음을 비교해 보자. 6:9절로 12절과 53:1절, 6:10절과 63:17절, 6:9절과 42:18절로 20절과 43:8절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란 구절이 전권에 아주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그것은 이 장엄한 환상에 기초하고 있다.
아하스 치세동안 토설한 예언들(7:1-12:6): 7장 1절로 16까지는 수리아로부터 구원의 약속과 메시야의 이적적인 개념과 인간으로 탄생하신다는 메시아 강림의 선포 등 상징적 형태를 기록하였고, 7장 25절까지는 불신하는 아하스가 추구하였던 앗수르와 동맹의 결과로 일어날 악의 위협을, 8장 1절로 4절은 수리아의 정복에 대한 예언의 부활과 이사야 자신의 아들에게 적용되어질 그래서 그의 유년기 생활이 그 사건을 측량케 되어지는 하나의 상징적 이름의 형태로서 이스라엘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있다. 8장 5절로 8절까지는 이스라엘의 인간 신뢰 때문에 유다 역시 형벌 받을 것을 이야기하고, 8장 9절로 22절은 메시야 자신이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며 자기 말씀에 상론할 것을 역설한다. 9장 1절로 7절에서는 지금까지 흑암이 그 땅에 임했다할지라도 앞으로는 처음의 괴로움처럼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을 말한다. 그리고 큰 빛이 비치고 우주적인 평화가 있을 것이며 신적인 메시야의 탄생으로 즐거움이 도래하게 될 것을 말한다. 9장 8절로 12절에서 선지자는 자기 자신의 시대를 돌아보고 또 다시 이스라엘의 패배를 예언한다. 9장 13절로 17절을 보면 백성이 회개치 않았고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는 더하여 가지만 국가는 여전히 망하여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21절에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었다. 이들은 함께 유다에게 달려들었다. 이는 죄악 때문이며 그렇게 싸울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않고 더욱 진노하실 것을 말한다. 10장 1절로 4절에서 국가 죄악상의 발전이 계속된다. 10장 5절로 15절은 앗수리아 인이 소개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노를 실행하는 막대기에 불과한데 앗수리아 인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정복한 것처럼 거만하고 있다고 말한다. 16절로 19절은 불타서 거의 소멸된 한 사림의 그늘 아래 있는 원수의 운명을 서술한다. 20절로 23절은 오직 외로이 남은 자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것을 보여주며, 24절로 34절이 남은 자에게 이사야는 격려의 말을 해 준다. 11장 1절로 4절은 한 줄기가 싹을 돋을 것이며 그 위에 여호와의 신이 강림하실 것이다. 그래서 5절로 9절의 메시야의 의로운 통치는 완전한 평화를 초래할 것을 서술한다. 10절로 13절은 흩어진 자들이 모일 것과, 14절로 16절은 하나님의 백성의 고대 원수들은 신국의 확장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정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12장 1절로 3절은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며 둘째 편에서 4절로 6절은 그들은 서로서로 권면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하신 것을 알게 한다.
2. 제 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신탁(13:1-23:10)
1) 바벨론의 멸망이 선포됨
여호와는 그의 사역자들에게 침략자 메대를 소환해 오도록 명령한다. 13장 1절로 9절은 무서운 형벌이 바벨론 인들에게 내습하는데 천체가 그 빛을 내지 않고 초상으로 표현한다. 13장 10절로 18절은 바벨론의 말할 수 없는 패망과 황폐를 말한다. 14장에서는 바벨론의 멸망이 다시 서술되는데 이스라엘이 속박에서 벗어난 것과 더욱 결정적으로 관계한다. 본장은 멸망된 원수에 대한 승리의 개선가로 시작한다(14:1-8)
. 그리고 강포한 성 바벨론의 멸망을 음부의 깊은 구렁 속에서 타락한 폭군을 보여준다(14:9-23). 또 예언에 대한 결론을 말하고(14:24-27) 바벨론에서 수난을 받았던 불레셋 인에게 멋없이 자고 하거나 기뻐하지 말 것을 경고 한다(14:28-3
2). 14:8절과 55:12절, 14:17절과 43:13절을 비교해보라. 부정적인 비평주의 학파가 위의 원리에 일관한다면 13장과 14장의 이사야 저작권을 부인해야만 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비평학자 파이퍼는 14장 28절과 32절만이 이사야가 기록한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이사야 시대가 지난 오랜 후에 기록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서두의 분명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 장들은 이사야의 것으로 인정하기를 부인함은 예언적인 예언을 불신하는 증거이다. 이사야가 기록하지 않았다고 아무리 우겨도 신적 영감을 받은 이사야의 작품이다.
2) 모압에 대한 경고(15:1-116:14).
15장은 모압의 멸망에 대한 생생하게 글로 표현했다. 16장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 모압인들에게 권면하여 다시 다윗의 집과 동맹을 맺고(1-6), 그런 다음에는 모압 멸망의 기술이 나오고(7-12), 마지막으로 3년 이내에 모압의 영광이 파멸될 것을 선포한다(13, 14).
3) 다메섹에 대한 경고(17:1-14)
이스라엘의 원수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멸망에 대한 선견적 묘사이다. 수리아와 에브라임이 함께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하고(1, 2), 에브라임의 특수한 멸망(4-6)을 예언했으며 심판의 결과로 국가가 여호와께 돌아간다는 것을 말한다(7-11). 하나님 백성의 원수들에게 임할 파멸을 서술했다. 그들이 비록 함께 모일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흩으실 것을 말한다.
4) 구스에 임할 재앙(18:1-7)
구스와 모든 세상에 임박할 재앙을 소개한다(1-3). 그래서 재앙 자체가 열매를 맺은 성숙한 포도넝쿨로서 묘사되었다가 갑자기 파멸됨을 보여 준다(4-7). 분명히 이 신탁은 산헤립 군대가 하나님의 간섭으로 결국은 끊어질 사이에 대하여 구스 인에게 알리는 하나님께 사로잡혔음을 알림이다.
5) 애굽인은 혼란과 육체적인 재난으로 위협을 받는다(19:1-10). 그리고 사악한 영이 그 땅에 들어왔다(11-17). 그래서 그들의 수난의 결과로 그들은 참된 신을 인정하게 되고(18:22), 마지막으로 장래의 축복이 예언된다(23-25).
6) 구스와 애굽의 멸망 예언(20:1-6)
구스는 애굽을 통일시켜 25대 왕 에디오피아 왕조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 단락에서 구스와 애굽을 동시에 취급하고 있다. 실제로 이 예언 후 약 40년 후인 기원전 7세기 중반에 애굽은 앗수르에 의해 징벌되었다. 이사야는 유다인들이 절대 의지하고 있었던 애굽의 허망한 멸망을 예언하므로 유다인들에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7) 메대를 통한 바벨론 심판 경고(21:1-17)
죄악 된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바벨론이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점은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버렸다. 본장은 바벨론 함락 시 느껴지는 공포와 그들을 침략하는 침략자들의 당당한 모습으로 나눌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주의 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는가? 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에게 고통과 탄식이요 어떤 이들에게는 승리의 면류관을 받는 날이 될 것이다.
두마에 대한 경고(11-12),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13-17)는 예언들은 선지자는 메대와 파사로 말미암아 바벨론의 몰락에 대한 분명한 예언이다.
8) 환상의 골짜기에 대한 경고(22:1-25)
포위 때 예루살렘을 말한다. 아마도 므낫세 때에 앗수르인들의 예루살렘 포위로 간주할 수 있다. 혹은 특별한 기록으로 백성이 견디어 내야만 했던 많은 포로들을 인용한 총칭적이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15절로 25절은 셉나가 그 국고 맡은 지위에서 퇴거될 것을 예언한다. 이는 셉나가 백성의 지도자로 간주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일반적으로 국가에 대해서 예언이 행해지는 동안에도 예언은 특히 지도자 셉나에게 초점을 모은다. 우리는 어려움이 오면 손가락질 받음이 신앙인가? 잘못된 죄악인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유다의 멸망 원인은 백성뿐 아니라 권력층에 있는 지도자들에게도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백성이나 지도자들이나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9) 두로에 관한 경고(23:1-18)
두로의 멸망이 선포되고(1-7), 이 멸망을 목적한 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갈대아인은 그 실행 도구가 된다(8-14). 70년 동안 두로는 잊혀질 것이고(15), 그 후에 회복되어 노래를 부르며 여호와께 헌신 봉사할 것이다(16-18). 여호와의 권고를 무시한 채 끝내 열방과 음란을 저지르는 두로를 보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영성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당신에게 권고하고 계신다. 이 같은 주의 권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3. 여호와의 위대한 심판들(24:1-27:13)
‘여호와께 땅을 공허하게 하신’ 결과로서 재난 아래 있는 국가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다(24:1-12). 그러나 ‘감람나무를 흔듬 같이’ 적은 수가 먼 땅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13-15). 그 다음 시온에서 통치하시는 여호와의 존귀하심과 심판의 서술이 나온다(24:16-23).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에게나 오는데 우리는 그 날이 기쁜 날일까. 슬픈 날일까? 깨어 있는 자로 남아 있자. 25장 1절로 5절에는 과거의 심판에 대한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기도가 나오고 이것 다음에 여호와께서 기름진 것들의 축제를 만들며 가려진 것(즉 영적 맹목)을 옮기면서 백성 위에 던질 것이고 승리 중에서 사망을 삼키며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으신다는 선포가 뒤따른다(26:1-19). 그러나 분명히 승리가 임한 것이 아니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짤막한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어둠의 세월과 암흑의 현실과 하나님의 공의가 무시되는 현실 속에서도 예수님만 사모해야 할 것이다. 인내로써 생의 목표에 도달하기를 힘쓰고 인내하는 자에게 주신 하늘의 기쁨을 받자. 이사야 27장 1절로 5절은 여호와의 원수들의 멸망이 바다 뱀 리워야단의 멸망의 초상으로 진술되며 이스라엘은 번창할 것인데 그것은 그 수난이 원수들의 수난처럼 크지 않기 때문이다(27:8, 9). 그러나 원수들은 27장 10절과 11절에 어떠한 자비도 받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은 다시 모일 것을 말해 준다(27:12, 13). 하나님의 징계 이면에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크신 사랑이 숨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숨겨진 사랑을 발견했는가? 징계하신 의도를 이젠 알겠는가? 로마서8장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하셨다. 끊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자.
4. 예언적인 경고들(28:1-35:10)
1) 유다와 앗수르와의 관계(28:1-33:24)
이사야 28장 1절로 6절에 사마리아 멸망에 대한 선포가 있으며, 28장 7절로 22절에 애굽을 신뢰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28장 23절로 29절은 하나님의 목적이 확실히 이루어질 것과 29장 1절로 4절은 시온도 역시 공격을 받을 것이나 원수가 궁극적으로 패배할 것을 말한다(29:5-8). 그리고 29장 9절로 16절은 심판의 원인들과 17절로 24절은 궁극적인 회복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30장 1절로 7절에는 애굽을 신뢰하는 죄와 그 어리석음이 진술되며, 8절로 26절은 백성의 믿음의 결핍과 그 특징 그리고 영적 상호간의 관계가 묘사된다. 마지막으로 앗수르인이 하나님 자신에 의해 정지되어 짐으로 인간을 의지하는 것이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27절로 33절은 애굽을 의존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단지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31장에 여호와께서 확실하게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고 백성은 그에게로 돌아가야만 하며(1-9)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시고 당신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보호자 역할을 하는데 나와 누가 있을 것인가? 32장 1절로 8절은 왕 되신 예수님이 공의로 통치하시기 때문에 여호와의 품에서만 은혜로운 축복들이 있다고 말한다. 부녀들이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녀들에게 연설하게 되며 황폐가 계속되며 높으신 곳에서 성령이 부어질 그때까지 할 것이라고 한다(9-10). 예수님은 분명 이 땅에 의로운 왕으로 오셨고 통치를 원하셨지만 사람들이 거절했다. 지금 우리마음 속을 들여다보라! 예수님을 거역한 자들의 마음이 없는가?(약 1장 17).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어떤 모습을 보여드릴 것인가를 준비하자. 그리고 33장 1절로 24절에 침략하는 앗수르의 결말이 선포되며 황폐된 다음 회복될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현재의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만의 도우심을 바라는 전투적 삶을 계속하여 영적 군사가 되어야 한다.
2) 에돔과 이스라엘의 장래의 대조(34:1-35:10)
위의 두 장은 하나의 예언으로 형성된다. 34장은 하나님의 위협인데 일반적으로 제국가에 대한 것이고 다음은 특히에돔에 관한 것이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대표해서 표출되었다. 그리고 본장은 아마도 영적 이스라엘인 하나님 교회의 원수들에 대한 일반적인 위협으로 간주함이 좋다. 그리고 35장에서는 영광스러운 메시야의 장래 초상이 제시된다. 왜냐하면 이사야서를 3부분으로 나눌 때 1) 1장부터 35장까지, 2) 36장부터 39장까지, 3) 40장부터 66장으로 분류할 때 본 35장은 1부의 결론이라 할 것이다. 그동안 이사야는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유다의 타락, 열강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등과 암울한 주제들을 예언했는데 본장에 이르러 환희의 교향곡을 연주하므로 새 왕국에 대한 비젼을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비젼은 오늘날 성도들에게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잠시 고난중에 회복된 선민처럼 우리도 고난을 뚫고 나와 찬란하게 꽃 피울 날이 곧 도래할 것이다.
5. 역사적 부록(36:1-39:8)
36장은 산헤립의 유대 침공을 이야기 한다. 사단은 성도된 자를 넘어뜨리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다. 이에 당신은 이런 사단을 물리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가지고 있는가?(엡 6:14) 37장은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를 찾으매(1-5), 그가 위안의 메시지를 전한다(6-35). 그리고 앗수르 군대가 여호와의 천사에 의해 멸망된다(34-38).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으나 신앙고백을 드리니 여호와께서 생명을 연장하신다(38:1-8)우리 앞에 위기가 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이겨 내는가? 히스기야와 같이 당신 역시 여호와께 의뢰하는 일은 최우선적으로 하고 있는가?(살후 3:3). 히스기야의 감사가 38장 9절로 22절에 나온다(39:9-22).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다. 지금 당신의 기도를 들으시는 그 하나님이 어떤 기도를 들으시고 계시며, 어떤 기도를 기대하시는 가를 생각하자. 39장은 바벨론의 침입에 대한 예언이다. 본장은 병에 걸린 히스기야가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에서 사신이 축하차 방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본장의 기록 연대를 살펴보면 기원전 701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701년 앗수르 산헤립이 1차 침입시 상당한 공물을 그에게 바쳤기에 궁중은 피폐해 졌다(왕하 18:13-16). 그런데 본장에서는 상당한 궁중 보화를 바벨론은 사신에게 보여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701년 이전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편 바벨론 사신의 방문 목적은 실제로 다른 것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것은 정치적 문제로서 당시 바벨론은 지속적인 앗수르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그러한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반앗수르 정책을 주도한 히스기야와 동맹을 맺기 위한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신을 맞이하여 경거망동하게도 국가의 기밀을 모두 공개하고(2) 이에 대하여 이사야는 준엄한 책망과 더불어 바벨론에 의해 당할 유다의 수치를 예언하고 있다. 바벨론 왕이 보내온 예물에 흡족한 나머지 자국의 기밀을 말하는 히스기야의 경거망동한 모습을 보라 세상에 취해 경거망동한 모습이 있다면 해결해야 한다.
6. 하나님의 교회의 존재와 운명(40:1-66:24)
이사야 예언의 마지막 27장은 단일화된 전권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알렉산더는 5개의 위대한 주제를 발견했다. 1) 죄 많은 국가 이스라엘에 대한 기술. 2) 신앙이 약하기는 하나 여호와의 은총의 대상인 영적 이스라엘. 3)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과 장래 처우 예시. 4) 메시아의 강림. 5) 새 시대의 특징이다. 41장은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국가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선민 앞에 망할 것이다(1-16). 선민은 약하나 여호와는 보호하실 것이며 구원할 것이다(17-29). 당신은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고 있는가? 그런데도 당신의 생활 중에 자신도 모르게 배어버린 미신적 생각과 행동들을 당신은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신 10:17). 42장의 내용은 여호와의 종이 인류의 구주로 나타난다(1-5). 그분의 평화롭고 종용한 사역 방법이 기술되며, 6절로 9절에는 그 일의 영적 효과들이 진술된다. 우리는 부족하나마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당신은 생활 중에 여호와의 종된 자로서의 모습을 충분히 보이고 있는가?(벧전 4:19). 하나님은 우리에게 끝까지 인도하시며 승리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주위의 어떤 유혹과 비난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환경에 좌우되어 신앙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자(고전 10:13). 43장은 이스라엘이 자기 백성으로서 친히 함께 계실 것이며(1-4), 그들이 선택된 것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8). 이 은혜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음을 선포하고 있다(9-13). 43장 14절로 21절에 구원의 방법은 과거 애굽 군대를 홍해 가운데서 멸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14-17). 그리고 이스라엘은 평화의 나라가 될 것을 말하고 있다(18-21). 하나님은 스스로 구원을 계획하시고 집행하시기에 인간은 결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방법이다. 혹시 우리가 여호와를 잊었다할지라도 여호와께서는 그 때에도 당신을 위한 구원 계획과 방법을 모색하신다는 사실이 감사하다(슥 2:8). 43:22-28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모습이다. 선지자의 시각이 위로에서 다시 책망으로 바뀌고 있다. 비록 선택 받고 구원 받은 백성이지만 그 백성이 짓는 죄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다. 하나님이 원하신 요구는 사치나 값비싼 예물이 아니라 충성과 순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도말하시고 기억치 않으신다. 이와 같은 사랑을 받았는데 우리는 이웃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주고 있는가?
44장은 선민은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은 풍성한 축복을 베푸실 것이다(1-5).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확정함에 있어서 우상의 무능을 지적하고 전능성에 호소한다(6-9). 우상은 사람이 만들고 무가치하고 유익이 없지만(10-20), 범죄 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속하시며 그 구원자로 고레스를 보낼 것이다(21-28). 21절로 28절은 용서의 자리에 초청된 백성의 모습이다. 우상 숭배를 지적한 선지자는 죄악에서 돌이켜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촉구한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는 계속되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24절로 28절에는 전능하시고 세상의 주인이 되심을 선포하고 있는데 특별히 고레스를 나의 목자로 선포함은 하나님의 주권과 더불어 이후 전개되는 많은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지금도 용서의 잔치를 베푸시며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신 하나님, 당신은 자신의 죄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어디로 가겠는가?
45장 1절로 13절은 고레스가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께 사용되어짐으로 승리할 것을 말하며, 그 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나라와 이스라엘이 구원을 청해야만 하는 유일한 구주로 등장한다(14-25). 성경은 조물주와 피조물과의 관계를 토기장이와 진흙으로 비유하곤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그분의 형상대로 빚어진 토기는 바로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이 오히려 자신들의 존재를 허락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부인한다면 어떠하겠는가? 우리가 그분께 묻고 찾아야할 삶의 이유와 목적을 인위적인 학문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것과 고난 속에서 그 도움을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구하는 것, 이 모두가 도공이 되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토기들의 불쌍한 모습이다. 23절의 맹세는 엄정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정한 절차를 밟는다. 간단하게 손을 들어서 뜻을 밝힘과(신 32:40), 특별한 경우는 환도 뼈 밑 즉 생식기 밑에 손을 넣어 그 맹세의 효과가 자손들에게까지 미침을 상징한다(창 24:2). 또는 제물을 쪼개어 벌려 놓고 맹세하는 자가 그 사이를 지나감으로써 맹세를 어길 경우 죽음을 불사한다는 경고로 삼는 방법도 있다(창 15:10). 그리고 대중적으로 타인의 맹세에 동의하며 신뢰 한다는 표현으로 아멘으로 화답한 맹세가 있다. 이사야 46장은 진리의 특수한 예증을 기록함에 있어서 본장은 바벨론 우상의 몰락을 말한다(1-2). 3절로 4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온전히 보호하시나 우상은 실로 공허함을 말하고 여호와께서 고레스를 일으켜서 그의 전능을 보여주실 것을 말씀하신다(5-11). 12절로 13절은 불의한 자들은 여호와의 구원을 예비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사야 47장 1절로 3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처녀로 의인화 되어진 바벨론에 떨어질 것을 말하고 바벨론은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 교만, 악에 대한 신뢰와 그 지혜와 지식 때문에 멸망해야 하며 바로 이것들이 바벨론의 몰락을 촉구하는 것이다. 12절과 15절은 초개같은 이들이 갖가지 사술과 이적으로 앞날을 예언하는 자들의 비참한 종말을 보여 준다. 마술과 점술을 통해 바벨론의 부흥을 점쳐 보려는 이들의 노력은 헛수고이며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미래와 현재와 과거가 모두 그분께로 통한다.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미래의 고난에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보다 초개같은 것을 의지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영원한 미래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자. 이사야 48장 1절로 2절은 신실치 못한 마음으로 신을 부르면 성실치 않음과, 완고함 때문에 모든 예언이 생기고 그들이 알지 못하던 새로운 사실들이 보여 짐을 말한다(8-9). 9절로 11절은 자비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멸하시지 않음과, 12절로 16절은 땅을 창조하신 분이며 바벨론에 대한 자기 뜻을 이루시는 영원자이다. 17절로 22절은 수난이 자기 죄로부터 왔지만 포로에서 해방됨은 은혜임을 알고 기뻐하라는 것이다. 이사야 49장 1절로 6절은 종을 속박함과, 7절로 12절은 여호와가 땅을 축복할 수 있는 종을 예비하심과, 13절로 26절은 여호와가 원수를 멸망함을 말한다. 이사야 50장 1절로 3절은 죄가 재앙을 초래할 것을, 4절로 9절은 종이 자기 슬픔을 묵상하지만 이유를 밝히지 않으며, 10절로 11절은 경외 자가 신뢰해야 함을 말하고 구원의 길이 진술되며 자신을 의뢰하면 파멸될 것을 말하고, 여기 종은 공동체가 아니고 오직 메시야로서만 간주된다. 이사야 51장 1절로 3절은 의인이 아브라함을 따르며, 4절로 8절은 구원의 확실성이 단정되고 원수가 멸망하며, 9절로 19절은 자기 백성은 생명의 홍해를 건넘과 같이 구원의 확신을 준다. 23절까지는 연약한 시온이 깨어 여호와를 신뢰토록 명령 받는다. 이사야 52장 은 포로생활을 탈출하도록 명령을 받은 과거 상태와 대조된다. 자기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알게 되며(1-6), 복음의 전달자가 이미 나타났고 힘찬 탈출이 있게 된다(7-12). 종은 지도자이며 존귀하게 될 것이며 그가 취해야 했던 비천함만큼 존귀해질 것을 말한다(13-15). 이사야 53장은 메시야가 선포되었을지라도 믿는 이가 적었고(1), 용모는 천하며(2), 경멸의 대상이었고(3), 그의 특징은 슬픔이었지만 그 슬픔은 위생적이며 그는 타인의 죄 때문에 참는다(4-6). 종은 무죄이지만 불의의 재판을 참고(7-8), 죄가 없지만 그의 죽음은 부자나 악인과 같을 것이며(10), 하나님은 그를 높여서 많은 불의한 자 대신 그를 대속자로서 세우셔서 중보하실 것이다(10-12). 예수님의 죽음을 자기 죄를 대속하기 위함을 믿을 때 평화와 나음을 입을 수 있다. 요한과 바울은 유대인들이 예수의 메시지를 거절함이 본문의 예언의 성취하고 설명한다(요 12:38, 롬 10:16).이사야 54장은 미래에 있을 선민의 영광과 주의 백성의 불가침성을 강조하며 화평을 약속하시는 여호와의 모습과 이스라엘의 영광과 번영을 말한다. 이사야 55장 1절로 13절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 잔치로의 초청장이다. 마치 신약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그리스도의 초청과 일맥상통한 본장은 개인의 결단과 호소가 있다. 개인의 결단은 주관적이지만 은혜에 의해서 영접하게 된다. 이사야 56장은 1절로 12절은 옛 시대의 제한이나 구분이 없이 온전히 계시될 것이다. 죄 많은 국가는 무가치하다. 세상 모든 만민이구원의 잔치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특히 하나님께서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오직 믿음만 보시고 취하심을 알아야 한다(갈 3:6). 백성을 책망하실 때 이유와 목적이 있다. 우리는 책망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들의 계획을 보는 눈을 소유하자. 이사야 57장 1절과 2절은 죽은 의인들이 죄악에서 구출될 것을, 3절로 9절은 악인들의 우상숭배가 정죄되고 계속적인 범죄는 멸망이요 회개는 구원을 받는다(14-21). 세상의 평강을 위협하는 악의 세력을 완전히 정복하신 예수님 안에만 참 평강을 누릴 수 있다. 이사야 58장 1절로 7절은 궁핍자를 사랑하기보다 오히려 위선을 행한다. 잘못된 금식과 발을 금하지 않은 안식일 준수가 공동체의 어떤 목표에 장애임을 말하고 있다. 오직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분께 받지 못한다면 모든 원인을 스스로에게 찾는 각고의 반성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 59장은 죄악이 하나님과 불리시킴을 말하고 종말에 구속자를 통해 참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으로서 중재할 것을 보여주신다(16-21). 60장은 영적 이스라엘을 기다리는 변화는 시온을 향한 새롭고 축복된 광명이다. 전 세계의 흑암에 거하는 자들이 시온을 향해 돌아오고 시온은 영원히 영화롭게 되는데 옛 시대와 새 시대의 사이에 차이를 제시한다. 오늘의 성도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 피조물이다. 그렇다면 영광을 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시 60:21). 61장 1절로 3절에 큰 변화를 가져올 메시야의 사명이다. 상한 자에게 치료, 포로에서 자유, 갇힌 자에게 놓임을 베푸시는 분께 지금 맡기자(마 6:25). 4절로 11절은 메시아 왕국의 모습이다. 우린 그분의 제사장이다. 우리의 생활은 제사장의 범주 안에 있는가?(엡 4:1). 62장은 종의 사역이 의와 구원의 때까지 계속되며 하나님의 백성이 모든 국가들의 인정을 받으며 버려지지 않아서 세계가 시온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신랑을 맞는 신부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가? 세계가 찾은 신부로서 어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어떤 노력을 하는가?(벧전 2:9). 63장은 악인에 대한 공의의 심판과(1-6), 이스라엘에 베푸셨던 은총(7-14), 이사야의 구원간구(15-19)등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심은 상선 벌 악이다(레10:3). 우리는 어느 때에 예수님을 찾는가? 어려울 때만 찾는 이기적인 신앙을 해결하자(요일 4:16). 64장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확신(1-3),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 대한 축복들(4), 이스라엘의 무가치성, 시온의 광야 등 외부적인 특성들이 없어짐으로 자기 백성들을 멸하지 않을 것임(5-12). 65장은 이방인들이 초대되며(1), 유대인은 그들의 죄 때문에 거절됨(2-7), 그러나 택한 자로서 남은 자가 있음(8-10), 믿지 않은 이스라엘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기쁜 마음을 노래하며(11-16), 신천지의 축복들(17-25)이다. 앞으로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가? 그 날의 안식과 기쁨을 생각할 때 지금의 수고쯤은 거뜬히 이길 수 있는 신앙이 당신에게 있지 않은가?(살전 5:18). 66장은 옛 시대와 새 시대의 차이, 여호와는 땅의 성전이 아닌 겸손한 심령에 거하심과(1, 2), 시온의 축복을 받을 것(3-14), 고대 이스라엘은 멸망될 것이나 남은 자는 거기로부터 나올 것이다(15-24). 본서를 막을 내리면서 심판과 회복이 최종적으로 집약되어 있으며, 앞으로 임할 메시아 왕국에 선명한 그림을 그렸다. 여호와를 향한 당신의 신앙 행위에 진실함이 담겨져 있는가 보라. 혹 길들여진 것에 의해 교회생활로 찬양, 기도, 예배인가? 형식적인 행위를 버리고 유행을 떠나서 예비하자(롬 12:1, 2). 신실한 자녀들을 회복시키고 번성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인가? 그렇다면 삶 속에서도 그 신실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가?(고후 5:17). 새 하늘과 새 땅은 에덴인데 그 때부터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서 달리고 있다.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가?(갈 4:19). 이러한 일들은 비밀을 믿는 자의 특권이라고 한다.
예레미야의 총 제목: 크게 외쳐 말하라(1:7, 2:2, 20:9, 32:38-43) | ||||||
외치는 자의 기적 |
복중에서 구별함 |
확실한 사명 | ||||
하나님이 세우심 |
권위의 사람 | |||||
말씀을 입에 두심 |
말씀의 사람 | |||||
외치는 자의 사명과 권위 |
뽑으며 |
죄악의 근원과 요소를 뽑음 | ||||
파괴하며 |
죄악의 세력을 파괴 | |||||
파멸하며 |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와 백성들 | |||||
넘어뜨리며 |
교만한 권세 자를 | |||||
건설하며 |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 |||||
심게 하라 |
거룩한 자손과 복음을 심자 | |||||
외치는 자의 기본 능력 |
자신의 겸손 |
나는 아이라 | ||||
하나님이 하게 하심 |
주의 손에 붙잡힘 | |||||
쇠기둥 놋 성벽 |
성령님의 능력 | |||||
외치는 자의 고난과 각오 |
짐승 같이 끌려감, 가족들이 비난함, 제사장들이 착고에 채움, 친 구들이 핍박함, 왕 제사장 백성에게. | |||||
무엇을 외치리이까 |
영적 지도자들의 죄, 백성들의 두 가지 큰 죄, 씻을 수 없는 무서 운 죄, 의인 한 사람도 없는 세상, 선한 길로 행하라, 구원의 기회 를 상실한 백성, 회개를 위한 눈물의 호소, 회개를 위한 눈물의 호 소, 토기장과 진흙의 교훈, 하나님을 찾는 비결, 새 언약의 축복, 타 락한 목자들, 말씀을 무시하는 왕. | |||||
외치는 자의 기쁨과 행복 |
신앙소유 |
환란에서 오직 기도, 말씀사모, 말씀 찾아 발견, 말씀 먹는 신앙, 숨어 있는 말씀 발견, 비전을 보는 신앙. | ||||
말씀간직 |
말씀은 마음을 움직임, 말씀은 국가를 움직임, 말씀의 발견= 보석, 마음속에 말씀=기쁨, 입술의 말씀= 전도, 손에 말씀= 병기 | |||||
예레미야 |
예레미야 선지자 |
출생 전에 선지자로 선택, 능력부여와 선지자로 임명, 눈물의 선지자, 말씀과 마음 중심, 생활은 인내와 기쁨, 주의 이름의 사람, 뜨거운 불의 사람. | ||||
예레미야의 요약 |
선지자의 소명(1장) 유대에 대한 책망 경고와 약속(2장-20장) 정치 가의 타락과 선지자의 타락과 목자의 타락(21장-23장) 예루살렘 멸망과 70년 포로 생활(24장-29장) 유대 나라의 회복과 축복약속(30장-33장) 여호야김 왕과 시드기아왕의 죄(34장-39장) 포로의 비참한 상태와 장래 의 예언(40장-44장) 바룩에 대한 위로(45장) 유다의 여러 적대국의 예언 (46장-52장). | |||||
예레미아 애가서 |
시온의 황폐한 상태, 황패한 원인은 죄 때문이다. 구원을 바라보는 개인의 슬픔, 원수의 포위와비참한 멸망, 구원을 애원하는 국가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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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레 미 야
예레미야 내용 전개와 구성
유다 왕조 말기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근 40년간 예언 활동을 한 예레미야의 사역과 예언을 기록한 본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
하나님의 예정으로 출생 전부터 선지자로 소명을 받은 예레미야의 신상명세서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 교육을 받고 선지자로 임명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제 2부
2장부터 45장은 유다 왕국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예루살렘 멸망)과 그 이후의 회복에 대한 예언을 다루고 있다.
제 3부
46장부터 51장은 앞에 언급된 유다에 대한 예언과 달리 이방 9개 국가를 향하여 행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모은 것으로서 이방 민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다루고 있다.
제 4부
52장은 예레미야가 행한 예루살렘 멸망 예언이 성취되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간 정황을 기술하고 있다.
1. 책명
이 책은 주인공의 이름을 따라 히브리 성경에서는 ‘이르메야후’ 혹은 짧게 ‘이르메야’라고 부른다. 이 이름의 한 어근인 동사 ‘라마’를 ‘기초를 놓았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예레미야의 뜻은 여호와께서 세우셨다는 말이 된다. 70역 성경에서는 이 책을 예레미아스라 부르고 있으며 라틴역 벌게트도 예레미아스라고 부른다. 개역 성경 책명은 본서의 주인공이자 저자인 예레미야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2. 주제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민족에게 포로가 되는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상 숭배와 죄로부터 돌아서야 한다고 엄하게 경고한다. 히브리 사람들이 범죄 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들을 책망하며(19:15,; 20:7, 8), 유다가 회개하지 않은 바벨론의 포로가 된다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외친다(21:1-25:3-11). 예레미야는 후반부에 가서 유다민족이 바벨론에게 거역하기보다는 반벨론에게 복종하라고 한다.(27장, 38:17-23).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포로 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으므로 벌하신 것이다. 또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메시야에 의해 구원될 날이 올 것을 말하며, 참 이스라엘은 사람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을 외친다(23:3-8; 24:4-7; 29:10-14; 30:8-11).
3. 저자
본 성경은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구술하여 바룩에 의해 기록된 책이다(36장). 특히 52장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증하기 위하여 첨가된 내용으로서 바룩의 저작으로 추정된다. 한편 본 성경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13년에 선지자로서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아나돗 제사장 가문에 속하며 그의 삶의 대부분 고향인 아나돗에 거하면서 연중행사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예레미야서 32장 6절로 15절에서 그의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엘이 파산을 당해 어쩔 수 없이 밭을 팔게 되었을 때 어려움이 없이 은 17세겔을 주고 산 것을 보면 그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이다. 역대하 35장 25절을 보면 요시아의 죽음에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는 요시야의 죽음을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의 규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고 했다. 예레미야는 다른 제사장들이나 방백들에게 그들의 우상 숭배, 부정, 부패, 불의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책망하였으므로 미움을 사게 되었고, 고독한 예언자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2:8-9; 3:6이하). 그가 전한 말씀 때문에 예루살렘 사람들과 고향 아나돗 사람들이 죽이려 했다(11:21-22).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때리며 착고에 채웠고(20:2), 유다의 방백들은 예레미야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있는 토굴 감옥에 가뒀다(37:16). 하나님을 두려워한 시드기야가 예언들을 신임하여 요나단의 집에 있는 토굴에서 예레미야를 구해내었다. 또 말기야의 구덩이에서 건져 내어(38:28; 37:2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함락했을 때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들 중에서 해방되고 후대를 받았다. 그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역했으나 바벨론 왕에 의해 유다의 총독이 된 그다랴가 이스마엘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41장) 잔존한 유다의 군대 장관들과 요하난에 의하여 이집트에 끌려가(42:1절 이하)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예레미야는 받은 고난, 역경, 조롱과 멸시 때문에 그의 생일을 저주하면서 “나의 어머니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20:14-15) 하였다. 때로는 그가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이 이상 더 여호와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으며 여호와를 선포하지 않으려 했으며, 선지자 노릇을 하지 않으려 했다(20:9). 그러나 그의 삶은 다시금 주를 붙잡고 끝까지 헌신과 눈물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다.
4. 예레미야서의 본문의 역사
예레미야서 36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예레미야는 바룩에게 두루마리 책자에 기록하게 하였다(1-4). 그리고 여호와의 집 뜰에서 낭독하게 하였다(10절).
유다 방백들의 요구에 의해 바룩이 방백들 앞에서 그것을 낭독하고(15), 방백들이 그 두루마리의 내용들을 여호야김과 여러 방백들 앞에서 읽었다. 그 때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기는커녕 그 두루마리를 작은 칼로 잘라 화로 불에 태운 사실을 볼 수 있다(렘36:23). 그러나 여호야김 왕이 그 두루마리의 말씀을 태워버린 후,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여호야김이 불살라버린 모든 말씀과 그의 비슷한 많은 말씀들을 다시 다른 두루마리 책에 바룩을 통하여 기록했다(27-32). 이러한 예레미야 본문 내용의 기록 과정이 반복되었던 사실은 맛소라 본문과 70인 역을 비교해 봄으로써 더욱 알 수 있다. 즉 가장 권위 있는 본문으로 인정되는 맛소라 본문과, 또 다른 70인 역 사이에 실려 있는 예레미야서에는 차이가 있다.
맛소라 본문: 1:1-25:13절. 25:14-45:5절, 46: 1 -51:64절.
70인역 본문: 1:1-25:13절. 32:1-51:35절, 25:14-31:44절.
맛소라 본문보다 먼저 편집되어 예레미야 생존시 이집트에서 읽혀지고 있었고, 나중에 예레미야가 죽은 후 바룩이 그의 스승인 예레미야의 설교를 보다 많이 수집하여 체계 있게 놀리 적으로 적립한 것처럼 보인다고 아처가 말했다.
예레미야의 여행
하나님의 부르심(1: 1-10): 유다의 멸망의 시기가 급박하게 다가오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동시에 새로운 구원의 소망을 전파하는 예레미야의 눈물에 찬 선지 사역을 기록한다. 그 중에서 본장은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소명 받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특히 신분과 활동시기(1-3), 그리고 처음 소명 받은 장면(4-10)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본문은 예레미야 전체를 통해 그토록 대담하게 예언했어도 처음에는 인간적으로 극히 연약했음을 보여 준다. 순응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5-6), 진리가 외면되고 의가 핍박당하는 당시의 타락한 시대 상황 속에서 그에 대한 심판을 선포해야 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는 인간적인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은 주권과 보호와 도우심을 강조하며 그를 격려하고 있다(7-10).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 직분과 그가 본 성경에서 선포하고 있는 모든 예언의 말씀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서 그 신적 권위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확신을 준 환상과 약속: 인간적 한계와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소명에 순응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환상과(11-16), 신실한 약속(17-19)을 통해 확신을 준다. 환상으로 당신의 주권적 섭리로 친히 도우심을 보증하신다. 우리는 지금 당신 손으로 만든 물질과 이론과 사상을 오히려 숭배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는가?
백성의 범죄에 대한 책망: 예레미야를 통해 범죄를 정죄와 심판을 예언한다. 유다의 고의적인 범죄에 대한 설교의 부분으로 유다의 배신에 대하여 책망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첫 열매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들을 애굽 땅으로 인도하여 광야에서 보호하시며 기름진 땅에 들어간 후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각종 우상 숭배의 타락의 죄를 범하고 만 것이다. 반역 행위에 대한 책망이 예레미야를 통해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책망은 예루살렘 멸망의 근거이다.
유다의 죄와 심판(9-37): 여호와를 떠난 죄악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공의의 심판을 예고하며 두 가지 죄를 제시한다(9-13). 생수의 근원이 된 여호와를 버림과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다. 즉 여호와를 버림과 경외함이 없는 악이다(14-19). 참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행음하므로 이방의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다(20-27). 책망들이 유다를 심판하시는 원인들이 되며, 또한 여호와께서는 심판에 앞서 책망과 경고를 반복하심으로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보여준다.
더럽혀진 유다(3:1-5): 고의적 범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행위임을 선포하고 그 범죄는 용서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는 성령님의 해방 죄와 같은 것이다. 행음하는 죄와 같은 것이다(신 24:1-4). 유다가 더 이상 정결한 신부가 될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돌이켜 회개하는 자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기 원하셨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 완악함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주는 교훈(6-10): 우상숭배를 자행하다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으로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북 왕국 이스라엘이 남긴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유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고 있다. 유다는 교훈받기보다 오히려 동일한 배역을 행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과거의 역사 속에서 주의 축복과 저주를 초래했던 조건들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전 12: 1)
회개의 촉구와 축복의 약속(3:11-4:4): 본문의 회개하라는 촉구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범죄 한 자들에게 진심으로 회개를 요청하시므로 궁극적인 뜻은 정죄와 심판에 있지 않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임을 보여주신다. 회개를 통해 얻게 될 축복을 분명히 밝히신다. 죄악에 미련을 두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하신다. 진노보다 긍휼을 원하시는 분께 해결받자(렘 3:12, 13).
유다에 임박한 경고(4:5-18): 예레미야에게 임한 두 번째 메시지 중 앞에서는(3:6-4:4) 북이스라엘의 예를 통하여 유다의 회개를 촉구하고 축복의 약속을 제시한다. 본 단락에서는 유다에 임할 심판을 구체적으로 경고하고 있다(39장에서 임함). 내용은 북방이란 바벨론 민족을 사용하심을 밝히시고 이들은 사자가 그 수풀에서 나오는 것처럼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서 불어오는 것처럼 회개치 않는 유다에게 하나님의 도구로 심판을 베풀 것임을 말하고, 다른 선지자들에 의해서도 예언된 바 있었던 것으로(사 29:1-16; 미 3:12), 끝내 돌이키지 않은 백성에게 임할 것을 말한다(23:1-8).
유다로 슬픈 예레미야(4:19-31): 심판이 필연적인 것을 보고 슬퍼하는 선지자가 애가를 부르고 있다. 백성이 악을 행함에는 지각이 있고 선을 행하기에 무지함을 한탄한다. 마치 여인이해산하는 때의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소리 같다고 묘사한다(31). 하지만 남은 자를 두시고 그들을 통해서 세워나가실 것을 암시하신다. 유다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통해 진실 된 것보다 인간의 말을 좋아했던 것이다. 평화와 안전만을 선포한 거짓 선지자인 하나냐와 스마야의 예언을 따랐다(29장).
불가피한 심판(5:1-19): 예레미야의 두 번째 설교이다. 회개를 촉구하시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심판의 당위성을 두 가지 관점에서 말한다. 1)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이 백성 되기를 거부하며, 인정치 않고, 살아계심도 부인한다. 이는 보냄을 받은 자를 무시하면 보내신 분을 무시함과 같은 것이다. 2) 불가피한 심판에 있어서 강한 나라를 도구로 쓰실 것을 예언하였다(1:13-15; 4:5-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의 이러한 범죄와 심판에도 새 언약과 새 백성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18절).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고백하는 삶인가?(시 19:4).
심판의 이유(5:20-31): 유다의 거역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것이다(출 4:3-11). 즉 하나님께 대한 배역의 죄(20-25), 사람에 대한 죄(26-29), 온 백성이 죄를 즐겨 범함을 지적하신다(30-31). 오늘 예수님의 축복과 은총을 기대한 우리는 원하는 것을 받음직 한가? 혹시 받을 수 없도록 쌓아놓은 죄의 탑이 제거되지 못했다면 해결하자(렘 5:24, 25).
유다의 심판과 부패상(6:1-21): 예루살렘을 정복하려고 원수의 접근에 대한 예언이다(1-9). 그리고 유대 민족의 심각한 부패에 따른 징벌을 기록하고 있다(10-21).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악을 계속적으로 지적하심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사랑의 표현이었다. 우리 곁에 서 계신 예수님께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항상 긴장하자(렘 6:17).
비참한 심판(6:22-30): 본문은 유다에 임할 예레미야의 두 번째 설교의 마지막(3:6-6:30)부분이다. 심판으로 오는 원수에 두려움과 유대 민족의 비참한 처지(22-26), 선지자 사역의 결과(27-30)에 대한 것이다.
유다의 위선적인 성전 봉사(7:1-15): 본문은 유다를 향한
예레미야의 세 번째 메시지이다(7:1-10:25). 메시지의 주제인 유다의 위선 중에 성전 봉사에 대하여 제시한 다음, 의식을 행하고 도덕을 버린 죄를 책망한다(8-15). 그들이 성전이라고 말하는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행위를 도덕적으로 바르게 한 곳에 여호와가 계신다는 것이다. 공의를 행치 않으면 여호와가 계시지 않음을 잊지 말자. 범죄자들과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성전에 와서는 구원을 얻었다고 선포하는 자들의 가증한 행위를 경책하며 성전을 도적의 굴혈로 만듬을 책망하셨다. 역사적인 배경은 유다 왕 요시야의 말기나 여호야김의 통치 시기인 것으로 추정된다(B.C. 608-597).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이스라엘 전체를 향하다가 유다의 백성을 향했는데 이제부터 그 언약에 핵심인 예루살렘 성전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3:12; 4:4). 오늘 우리가 이웃과 행하고 있는 것은 공의인가? 불법인가? 그것은 진정 예수님을 경배하는 자의 마땅한 모습인가 살펴보자(히 10:24).
유다의 위선적인 신앙의 죄와 징벌(7:16-8: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언약을 맺으셨다. 곧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다고 약속하시며 당신이 명한 길로 가면 축복을 약속하셨다(23).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약속들을 청종치 않고 자기들의 죄와 강퍅한 대로 행하며 하나님을 멀리 했다(24). 외형적인 성전제사와 입술만 가깝고 마음과 행함에는 멀리했다.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새 언약에서 대신할 것이다. 제사보다 순종(7:21-28), 우상숭배자들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시는 말씀이다(7:29-8:3).
유다의 죄악들(8:4-17): 악을 뉘우치고 회개치 않은 백성들의 우매함(4-7),과 서기관과 제사장의 범죄는 지도자들이므로 영향이 크며(8-12), 그 결과로 전쟁의 환란을 당할 비참한 유대 땅(13-17)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공중의 학도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도 그 올 때를 지킨다고 하셨다(7). 그런데 이 백성이 각각 자기 길로 행한다고 하셨다(6). 여기서 우리에게 적용해보자. 우리는 예수님께 더욱 가까이 가는 편인가? 아니면 그 위치에서 맴돌고 있는가? 예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지 않도록 힘쓰자(약 4:8). 순종에 있어서는 동물보다 못한 면이 없지 않다.
선지자의 탄식과 성읍의 황폐(8:18-9:11): 세 번째 메시지가 계속되고 있다. 먼저 상처 받은 유다 백성의 참상을 아파하는 애가로서(18-22) 민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말씀의 선포자로서 범죄를 책망하는 그의 사역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의 패역함을 슬퍼하는(9:1-11) 부분이다. 선지자의 눈으로 본 원인은 여호와 알기를 싫어하고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함이 가득함이다(8).
유다에 대한 애가의 원인(9:12-26): 애가의 원인은 유다 심판의 필연성이다. 유다 멸망이 정당하다고(12-16) 말하며 또한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거부로 유다 백성 파멸하여 애곡하리라는 것이다(17-22). 우리도 하나님 외에 우리의 힘이나 지혜나 특권을 의지하는 어리석음이 있으면 안 된다. 모든 장점의 원천이 여호와께 있는 것이다(23). 하나님은 법을 주셨는데 그 법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 그런데 법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것이다(13). 그러므로 성전 제사보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행하라는 것이다(24). 곧 마음에 할례를 받으라는 것이다(26).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의 심비에 새겨질 새 언약의 약속을 암시한다. 우리에게 진정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의 지혜와 용기와 물질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어찌 예수님 앞에서 내세울 만 하겠는가? 이를 실천해야 한다(롬 12:23).
우상 숭배의 헛됨과 하나님의 위대성(10:1-16): 예레미야는 지금까지 불순종과 우상숭배에 따른 심판을 경고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우상숭배가 얼마나 무익한 것인가에 대하여 신앙과 본질적인 차이점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먼저 우상 숭배의 헛됨(1-5).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나타내신다(6-11). 열방의 왕이시며 참 하나님이시고 사시는 하나님이심을 힘주어 강조한다(10). 전능하신 증표를 제시하고 있다(12-16) 세계 창조와 자연의 섭리와 거짓된 신상들을 멸하신 분과 나무에서 도끼로 잘린 후 공장에서 만든 것이 어찌 화와 복을 주겠느냐? 로 비교하신다(12-16; 5).
유대 민족의 포로 됨과 선지자의 탄원(10:17-25): 이제는 심판이 실시되어 그들이 내어 던져질 것이지만(18),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여 호소하고 있다. 자신과 민족을 일인칭 표현 형식으로 동일시하고 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백성들을 하나의 인격적 집단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그 대표자로서 백성이 당할 고난을 자신이 당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포로가 될 것이니 꾸러미를 수습하라고 포로 될 것에 대한 경고와 두 번째로 유다의 모든 성읍들이 훼파되고 황폐 되어 사랑의 거처가 될 것이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나로 없어지게 하지 말라는 탄원이다(19-25).
언약에 근거한 징벌(렘 11:1-17): 예레미야의 네 번째 메시지 초반부이다(11:1-12:17).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 때에 시내 산 언약에 기인하고 있음을 말해준다(출 24:3-11; 레 26:12). 선지자를 통해 불순종, 우상숭배 행위는 열조와 맺은 언약이 파기한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10절).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속의 은혜를 베푸시고 파기된 옛 언약을 새 언약으로 복을 주신다(23:1-8; 31:31-34). 본 단락을 나눌 때 1) 유다 인들에게 언약의 말씀을 기억하게 함으로 모세가 시내산 에서 맺은 언약을 상기시키고(1-7), 2) 순종치 않음을 꾸짖는 내용과(8-10), 3) 바알에게 분향하는 단을 쌓은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저질렀기에 벌하신 내용이다(11-17).
선지자를 죽이려는 음모(11:18-23): 유다 백성들의 악행을 지적한 이유로 살해 음모에 대해 언급한다. 예레미야는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보수해 주실 것을 선포한다. 악한 세상의 미움과 핍박을 감수할 수밖에 없으나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 의로운 하나님이 계시기에 진리를 외치는 성도들은 담대할 수 있다.
예레미야의 질문(렘 12:1-4): 사악한 유다 인들이 형통하며 평안한 것을 보고 악한 자가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안락함은 무슨 연고인지를 질문한다(1). 예레미야는 여호와는 의로운 분이시며, 악행이 속히 끝나기를 탄원하고 있다. 사실 그는 인간적인 약함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고향사람들에게 인기도 없고 배척을 받고 외롭게 살아가는 상황 속에서 자기의 인간적인 약함을 솔직히 드러내는 진솔한 태도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응답(5-17):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질문에 먼저 위로하시고(5, 6), 그들의 타락과 받을 환란에 대하여 언급하신다(7-13). 유다의 징벌은 언약의 파기에 대한 징벌임을 말씀하시고 유다가 비록 ‘내 집’이었으며 ‘내 산업’으로써 하나님이 지키셨지만 이제는 그들을 땅에서 뽑아버리겠다고 말씀하셨다(14). 뽑아낸 후에 그들을 다시 돌이켜 긍휼히 여기심으로 각 사람을 다시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신다(15). 이는 곧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새 언약이 체결됨을 암시적으로 보이신다. 오늘 우리도 입술은 가깝지만 행동이 수없이 배반했지만 지금 평화와 축복을 누림은 전적으로 주의 긍휼하심 때문이다.
상징적인 두 가지 비유(13:1-14): 선지자의 다섯 번째의 메시지가 시작된다. 선지자의 안타까운 심판의 경고에도 계속적으로 범죄 한 백성들에게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불가피함을 선포하고 이는 언약의 파기를 뜻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내백성이지만 지키지 않으면 그 약조가 파기 된다(신 4:13절 이하와 불순종에 대한 권고는 신 4:25-31). 두 가지 상징적 비유로 교훈하시는데 첫째 썩은 베띠이다. 하나님의 명령 따라 값을 주고 산 띠가 허리에 힘을 쓰지 못함이다. 버림 받은 모습이며, 두 번째는 포두주가 가득 찬 병의 상징이다. 이는 죄악의 술에 잔뜩 취하여 피차 충돌하다가 멸망당할 것을 나타낸다(12-14).
유다에 대한 회개 촉구(렘 13:15-27):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막 바람에 날아가는 초개같이 흩을 것이라고 경고한다(24).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뿐이라고 한다. 설교를 끝맺으면서 흑암 산의 비유로(15-17) 때가 늦기 전에 돌아올 것과, 왕과 왕후가 화를 당할 것을 비유하며(18-19), 구스인의 피부를 통한 비유이다(20-27). 이는 겸손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유다에 닥친 가뭄(14:1-6): 여섯 번째 설교(14:1-15:21)의 서두이다. 일반적으로 가뭄은 죄악에 빠진 자에 대한 형벌이다(신 11:17; 28:23-24; 레 26:19). 본문의 가뭄도 회개치 않은 유다 백성에 대한 징벌이다. 우리의 곤비함이 해결되지 않음은 하나님의 관계상 문제 때문일 것이다(사 55:6).
선지자의 위하여 기도(렘 14:7-15:9): 예레미야는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다. 유다 민족의 패역함과 죄상을 인하여 울고, 심판이 확정되었음을 말한다. 14:7절로 9절은 유다가 죄가 많을 지라도 여호와께서 구원자가 되어 주실 것을 간구한다. 14:10절로 12절은 응답으로서 위하여 기도를 금하고 유다의 멸망을 분명히 하신다. 13절은 백성들의 죄는 거짓 선지자로 인한 것이라고 백성들의 죄를 변명하며 용서를 구한다. 14절로 18절은 거짓 예언을 받은 백성들의 책임을 말씀하시며 그들에게도 거짓 선지자들에게 임하는 심판이 함께 임한다고 말씀하신다. 19절로 22절은 유다의 악과 조상들의 죄악이 있음에도 온전히 버리지 아니하실 것을 간구한다. 즉 백성의 주인 되신 주의 이름을 위하여 주의 언약을 기억해주실 것을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15장 1절로 9절은 유다가 반드시 징벌을 받을 것을 분명히 한다. 모세와 사무엘이 간청할지라도 결코 용서함이 없이 벌하실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징벌을 전한다. 즉 오래 동안의 경고와 책망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죄악을 돌이키지 아니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키로 까불 듯 벌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들에게도 잘못을 인하여 엄청난 진노의 손길이 이 백성 위에 피할 수 없이 가깝게 멈추어 있음을 나타낸다.
선지자의 탄식에 대한 위로(15:10-21): 오직 의와 진리만을 외치는 고독한 선지자의 모습을 본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용기와 힘을 예레미야는 간구하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그 받은 멸시로 인하여 자탄(咨歎묻을 자, 읊을 탄)함과, 하나님께서 이를 위로하시는(10-14) 것과 선지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저주함을 호소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를 강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자기를 위하여 간구함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15-21)을 기록하고 있다. 즉 예레미야는 자신을 박해하는 자에게 주께서 보복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주를 위하여 치욕당하는 사실을 호소한다. 이러한 호소에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내 입같이 되게 할 것이며 견고한 놋 성벽처럼 그를 구하여 건져낼 것을 말씀하신다.
유다에게 닥칠 재앙과 원인(16:1-13): 유다에 임할 심판의 내용을 선포하고(1-9), 후반부에서는 그 심판의 이유를 뚜렷이(10-12) 제시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앞에서 하나님의 위로(15:19-21)로 인하여 담대함을 얻은 예레미야는 자신의 생활과 직접 관련하여 환란에 대한 예고를 선포 하므로그 현실성을 더욱 심각하게 나타낸다. 즉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 땅에서 아내도 취하지 말며 자녀도 두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상가에 들어가서 통곡하거나 애곡하지 말며, 잔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도 말라고 명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유다의 멸망이 실로 가까움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섬기던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는가?(렘 16:10, 11).
약속과 범죄의 결과(16:14-21): 선지자의 일곱 번째 메시지가 계속되고 있다. 본 단락에서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유다에게 심판을 내리신 것과(16:16-21) 그들에게 하나님의 참된 능력을 보이실 것을(21절) 말씀하고 계신다.
심판의 불가피성과 선지자의 기도(17:1-18):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심판을 면치 못할 유다 백성들의 죄악에 대하여 언급하고(1-4), 유다는 필연적으로 심판을 당케 되리라는 것을 역설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5-13) 순종해야 하는 일반적인 원리로서 시편 1편과 같은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말씀을 떠나면 저주요 의뢰하면 복이다. 세 번째는(14-18) 예레미야의 기도인데 재앙의 날에 주는 그의 피난처가 되심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만이 참되시며 그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기에 오직 여호와 한 분만을 섬기며 경배해야 한다.
안식일 교훈(17:19-27): 언약가운데서 율례와 법도를 좆아 성결하게 행해져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안식일에 짐을 지지 말며 그 날을 거룩히 지키면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영원할 것이다(25).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멸망할 것(27)이라 경고하신다.
토기장이의 비유(18:1-20:18): 여덟 번째 메시지이다. 본 단락에서는 토기장이의 상징(1:1-23)과, 깨진 오지병의 상징(19:1-15)적 비유를 통해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국가가 악하여 멸망하겠다고 했어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심판을 거두신다. 그리고 축복을 약속했어도 악을 행하면 오히려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이는 변하신 것이 아니라 주권적인 행위이시다.
바벨론 침략에 대한 권고(21:1-23:8):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시대를 역사적인 배경으로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하나님께 기도를 부탁했는데 예레미야로 받은 응답은 유다는 폐하고 갈대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할 것이니 항복할 것을 권유했다. 곧 회개함으로 건짐을 받으라(21:11-14)라고 했다. 그리고 22장 1절로 9절까지 듣지 않으면 황무케 된다고 경고했다. 왕은 하나님께 위임 받은 백성을 지도할 때 그분의 뜻대로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유다는 왕과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섬긴 연고(22:3)이다. 지금 당신 주의에서 불의가 자행되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곳에 공의의 실현을 위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렘22:3). 예레미야 22장 10절로 30절은 유다 말기의 악한 왕들에 대한 심판인데 철저하게 하나님의 언약들을 저버리고 악행을 일삼았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우상숭배하며 외세의 힘만을 의존했던 자들이다. 우리들은 어떤가?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주의는 자칫 다른 사람에 대한 불의를 초래한다. 우리생활 영역 속에는 그런 모습이 없는가?
회복에 대한 약속(23:1-8):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악과 거짓을 행한 백성들에게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새로운 목자를 그들 위에 세우실 것을 약속하신다(4).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이다(5-8).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도 회복을 약속하시며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당신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함을 기억하자(민 23:19).
23장 9절로 40절은 열 번째 메시지: 유다의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심판이다. 그들은 1) 말씀을 백성들에게 듣기 좋게 전했고, 2) 인기와 권력을 지향하며, 3) 인간의 이상과 꿈과 제도를 위하여 살며, 4) 권력 구조의 핵심적 인물로 살아갔던 것이다. 현 시대에는 거짓 선지자의 말이 참 선지자의 말씀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혹 우리는 말씀을 어떻게 받는가?(고전 4:20).
광주리 비유(24:1-10): 11번째 설교로 무화과 두 광주리는 1장부터 23장까지의 경고에 대한 실제적인 심판이 실시된 것과 또 앞으로 실시될 것을 언급한다.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 광주리가 제시 된다. 끌려간 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름이요 포로를 거부한 자는 극히 악한 무화과로서 버려진 것이다.
포로 예언(25:1-38): 12번째 설교로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전반부는 회개를 촉구하셨다. 거절로 70년의 포로생활로 섬길 것의 기록인데 10번째와 11번째 설교보다 먼저 기록되었으나 편집은 기록 순이 아니어서 12번째로 기록되었다. 역사보다 내용과 주제에 따라 배열되었던 것이다. 다만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진노를 격동시킬만한 것이 없는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렘 25:6, 7). 후반부는(렘 25:12-38) 70년이 지나면 자기 백성을 괴롭힌 바벨론의 심판의 예언이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이며, 선민의 심판 도구가 끝나면 공의롭게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핍박 받은 선지자(26:1-24): 12편의 설교가 끝나고 말씀을 선포하면서 체험한 사건들을 자서전처럼 기록하고 있다(26:-29:). 범죄와 대조적인 끝없는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이 가슴에 닿는다. 오늘 이 사랑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우리이다. 본문에 성전 뜰에서 심판을 예언하는 예레미야를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체포하여 죽이고자 했다.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구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해도 반응이 없다면 잘못이다. 좋은 반응만이 다가 아니다. 이 시대의 아히감을 만나는 우리가 되자.
바벨론의 통치(27:1-22): 자주 독립을 위하여 온갖 방법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을 섬겨라 했다. 거짓 선지자를 믿고 영원한 예루살렘의 존립을 믿었다. 예레미야는 줄과 멍에의 상징을 통해 열국이 바벨론에 정복될 것을 말했다(1-7).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바벨론 왕을 섬기지 말라고 했다(14). 예레미야는 바벨론 왕을 섬길 것과(17), 거짓 선지자를 공격하며, 정하신 뜻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갈 것과 정한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을 예언했다. 우리는 칭찬과 권면 중에는 칭찬을 택해도 옳은 것과 하나님의 뜻을 따름에는 분명해야 한다.
하나냐의 대적(28:1-17): 그는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으시고 두 해가 가기 전에 모든 것이 회복된다는 예언이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목숨의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선포하였다. 이때에 하나냐가 자기의 말을 실증하기 위하여 예레미야의 목에 있는 나무 멍에를 취하여 꺾어 버렸다. 그 일로 그해 칠월에 참 선지자의 예언 따라 죽었다(9). 두 선지자의 논쟁이 있었지만 백성들은 참 선지자를 구별하지 못했다. 영적 통찰력이 심각한 그들이었다면 우린 어떤가?
선지자의 편지(29:1-32):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보낸 편지로서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살라고 하면서 70년 동안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른 생활을 제시했다. 거기서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으면 만날 것임을 약속한다(13). 본국에 남은 자들도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예언을 했다(15-20). 마치 부패한 무화과나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흩어 놀램과 모욕거리가 됨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음임을 분명히 하신다(19-20).
그리고 거짓 선지자의 경고가 있음은(24-32) 바벨론에서도 거짓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음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뜻대로 행하는 완악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난 속에서도 뜻을 깨닫지 못하고 속고 있지는 않은가(요일 4:6)?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약속함(30:1-24):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을 말하며(3) 목의 멍에를 꺾고, 다윗 왕을 섬기는 포로생활의 끝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징계를 받으나 고침을 받을 것을 약속하시며 회개를 통해 이루어질 필연적인 회복에 대한 소망과 인내가 절실히 요청된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들에게 임하는 영육간의 축복과 예수님을 통해 완성될 것을 남과 북의 회복을 예시한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회복과 새 언약(31:1-40): 30장에서 두 나라가 회복할 것을 예언하시고 31장 1절로 22절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구체적으로 약속하신다(1-9).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과 춤추며 즐거워함과 마음에 만족이다. 지금 슬퍼하고 근심하는 일은 무엇인가? 해결되었을 때의 기쁨을 왜 누릴 수가 없는가? 23절로 40절은 유다의 회복으로서 31절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죄에 관하여는 영원히 사하시고 기억도 않고(34),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피의 언약을 예표 한다. 우리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33)?
아나돗에 밭을 산 예레미야와 기도응답(32:1-44): 시위대 뜰 궁중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1-5), 유다가 바벨론에 함락되기 전 예레미야는 유다의 배역과 우상숭배 등의 범죄로 인해 징계를 받을 심판을 선포하다 옥게 갇히게 된다. 그 후 토지 매입을 다룬 것으로서, 그 의미는 유다의 회복을 약속한다(6-15). 사촌 하나멜의 밭을 매매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미래의 축복을 말한다. 지금은 있는 것도 팔아야 내 것이고 두면 남의 것인데 회복의 때를 암시하신 뜻이다. 16절로 44절은 응답으로서 명령에 의해 밭을 샀으나 질문할 수밖에 없다(16-25). 예레미야는 솔직한 갈등의 심정을 고백하고 이어서 신앙을 고백한다(20, 21). 그리고 예루살렘이 갈대아인의 것이 됨이 의문이었다(22-25). 이때에 하나님께서 26절로 35절에 유다의 회복을 재 약속하시며 심판의 이유와 그들에게 향한 놀라운 계획을 말씀하신다(26-44).
유다와 이스라엘의 회복과 메시야의 약속(33:1-26): 낮과 밤의 약정을 바꿀 수 없듯이 약속은 깨어지지 않아 이 성을 치료하며 낫게 하시고 평강, 성실, 풍성케 할 것을 말씀하신다(6). 이러한 약속은 다윗의 한 가지라는 표현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룩하실 것을 약속한다(15). 예레미야처럼 지금 부르짖을 일은 없는가? 성취하실 예수님의 응답이 기다리고 있다. 14절로 26절은 예레미야 30장 1절로 33장 26절의 결론이다. 선지자는 절망적인 상황에 갇히고, 바벨론 군대는 포위한 상태에서 유다의 회복을 힘차게 예언하고 메시야의 나라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하며 영원한 제사장 나라로서 영적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이다. 우리도 험한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에 우리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통치 속에 있음을 확신하는가?
시드기야의 운명과 유다의 예언(34:1-22): 시드기야 왕이 포로로 잡혀갈 것과 돌이킬 수 없는 유다의 심판이며(1-7), 방백들과 백성들의 경고이다.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불의한 행위를 책망하고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신다(8-22). 우리들도 이웃에게 의와 사랑을 베풀 줄 모르면서 하나님께는 그것들을 기대하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레갑 족속을 통한 교훈(35:1-19): 레갑 족속의 순종을 강조하며 유다 백성들의 불순종을 질책한다(1-11). 선조 요나답이 영영히 포도주를 금하고, 집도 짖지 말고, 장막에 거하는 말들과 생활에 지장을 주는 일도 금했다. 그런데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음과 많은 선지자를 부지런히 보냈어도 순종치 않음을 책망하며 레갑 족속을 축복한다(12-17; 18-19). 오늘 내가 순종함은 무엇이며, 불순종은 무엇인가? 순종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내 안에서 보아야 한다(마 7:21).
두루마리에 기록과 선포(36:1-32): 성의 함락 직전에 선포된 메시지(34:1-36:32)이다. 감금 상태에서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통해 본문을 기록하고 낭독 식으로 전파케 한 부분이다(1-10). 백성과 방백들을 듣고 여호야김에게 고하고 그 앞에서 읽을 때 왕이 불사르고(11-26), 그리고 새로운 두루마리의 기록과 여호야김에게 임할 재앙의 예언이었다(27-32). 위의 내용들은 시드기야 왕 이전의 내용인데 성경 편집할 때 역사적 순서대로가 아닌 예언의 내용과 주제에 따라 기록했음을 보여준다. 오늘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어떤 핍박 속에서도 생명의 말씀, 소멸되지 않은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굳게 잡아야 한다(히 4:1-3).
시드기야 왕에 대한 예언과 핍박(37:1-21): 시드기야는 국가적인 어려운 상황에서 예레미야에게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고(1-5), 선지자는 갇히지 않았으며, 바벨론군대가 일시 철수한 때이어서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구원의 보증을 받기 원했다. 그런데 선지자는 침공을 기정사실로 선포하고, 바벨론의 승리를 예언한다(6-10). 선지자는 바벨론의 첨자란 혐의로 투옥된다(11-15). 시드기야는 선지자를 풀어주고 대면하지만 예레미야는 멸망의 예언을 반복한다. 이 때 시드기야가 말씀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돌아왔어야 한다.
선지자의 재 투옥과 구출(38:1-28): 유다 심판에 대한 예언을 듣고 예레미야를 데리고 가서 왕에게 고하니 그들에게 맡기자 진흙 구덩이에 넣고(1-6), 에벳멜렉이 시드기야 왕께 고하여 선지자를 구출한다(7-13). 예레미야를 석방할 수 있는 왕이지만 방백들에게 맡긴 후 구출하여 비밀리에 면담을 하게 된다(14-28). 이 때 선지자는 17절에서 항복을 권유하지만 거절하며, 만남을 비밀로 한다. 믿음 없고 영적으로 무지함은 시드기야 왕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있음을 잊지 말자.
예루살렘의 함락(39:1-18): 눈물로 회개를 외치고 돌아오라고 호소한 말씀을 따르지 않고 예언대로 함락되었다(1-10). 3년을 버티다가 결국 자기 앞에서 아들들이 죽고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위해 쇠사슬에 결박된다. 바벨론 왕은 시위대장에게 예레미야를 보호하라고 지시한다(11-14). 자유로운 선지자는 에벳멜렉에게 가서 여호와를 신뢰했기 때문에 안전할 것을 말한다(15-18). 이는 당신의 뜻을 따르는 자들을 보호하시는 모습이다. 보호 받기 원하면 따르자. 심판 날에 구원할 자는 누구인가(약 1:21)?
선지자의 석방과 총독이 된 그다랴(40:1-16): 예루살렘 함락 후 예레미야의 사역을 기록한다.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결박된 선지자를 놓아주니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1-6). 유다는 바벨론 왕에 의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총독이 됨은 예레미야를 보호했던 일관된 신앙을 보여준 아히감의 신앙이었다(렘 26:24). 그러나 그 아들 그다랴가 요하난의 간언을 무시하고 이스마엘을 경계치 않은 것이다. 암살을 노린 이스마엘을 사전에 경고했으나 경계치 않아 암살되었다. 우리의 주변에서 우리를 노리는 영· 육간에 악한세력이 있음을 알자.
그다랴의 살해와 요하난의 규합(41:1-18): 남은 유다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웃의 강한 나라를 의지하는 불신앙의 뭉친 결과는 그다랴를 살해하는 이스마엘의 반란이다(1-10).
왕족이었던 이스말엘은 그다랴를 죽였다(2). 이틀 동안 죽은 줄도 모르고 있던 요하난은 군대 장관들과 함께 이스마엘의 악함을 치려하였으나 잔당과 함께 암몬으로 피하고, 요하난도 바벨론의 보복을 피해 애굽으로 가려 했으나 종 되었던 과거 때문에 막으신 것이다(신 17:16). 예수 앞에 두려움이 없는 삶이 우리의 삶이다(시 119:42).
예레미야의 위하여 기도(42:1-22): 애굽의 도피를 계획한 요하난과 그 무리들이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간청한다(1-6). 응답을 애굽이라는 곳을 가지고 묻는 그들에게 애굽의 금지령이었다(7-22). 이 땅에 거하면 바벨론의 손에서 건지시고 애굽으로 가면 칼과 기근과 저주의 치욕을 선포한다.
끌려간 예레미야(43:1-13): 유다가 불순종으로 심판을 받았음에도 거역함은 여전하다. 요하난도 애굽은 안 된다 했어도 예레미야를 데려간다(1-7). 선지자는 애굽도 바벨론에게 정복됨을 행위로 예언하였다(8-13).
애굽의 유다 인의 경고와 백성들의 응답과 종의 경고(44:1-
30): 유다가 황폐한 원인이 우상숭배임을 지적하고 이방에 동화되어감과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로 애굽에서 돌아올 자가 없다는 선포이다(1-14). 이는 죄악의 심판이다(15-19). 선지자의 경고에도 유다에서 행하던 숭배의 선언은 풍요롭게 하려는 죄인데 현대판에서는 기복이다(20-30). 기복신앙과 죄악들을 방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가장 무서운 심판이다.
바룩에 대한 축복(45:1-5): 예레미야가 바룩을 위로하기 위하여 기록했던 본장의 역사적 배경은 36장과 같은 시기이다. 하나님은 성역에 힘쓴 자에게 상급이 주신다. 지금 사업은 하나님의 상급이 주어진 것인가? 우리의 작은 일에 하늘의 상급이 보장됨에 놀라지 않음은 상의 무지일 것이다(마 6:33).
애굽의 예언(46:1-28): 지금까지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향했지만 본장부터 주변 9개국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언급하므로 열국을 다스리는 분으로 계시한다. 심판 중에도 선민은 구원하며, 애굽이 무기와 군사가 동원대도 유브라데에서 패할 것이 예언되는 부분이다(1-12). 그리고 느브갓네살이 애굽으로 원정해올 것을 예언한다(13-26). 애굽은 수치를 당하고 그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을 위로하며 회복될 것을 약속한다(27-28).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허무하게 될 세상을 보자.
열방 블레셋의 예언(47:1-7): 열국에 대한 두 번째 멸망을 다룬다. 다윗까지는 이스라엘의 지배에 있었다. 분열로 세력이 약해지자 이스라엘과 유다를 괴롭혔다. 그들은 우상숭배로 심판 받기에 충분했다. 택한 백성을 괴롭힌 블레셋에게 무서운 심판을 선고한다. 불신자에게 임하는 심판은 끝이요 선민에게 주는 심판은 합력해서 뜻을 이루는 것이다(히 9:27).
모압의 예언(48:1-47):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자손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실 때 딸들을 통해 얻은 자손이다(창 19:30-37). 출애굽 때 대적한 모압에 대하여 심판을 제시한다(1-6). 자신들의 힘을 믿은 죄와(7-10),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여기는 생각과(11-13), 군사와 무력을 믿음과(14-25), 용사로 자칭함과 선민을 멸시함과(26-47), 자만과 오만과 자긍과 거만을 책망했다. 세상 기준으로 높아지려는 자들에게 겸손히 자복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이다.
암몬을 향한 예언(49:1-39):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이다(삼상 12:10; 삼하 10:1-9).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밀곰 우상을 섬김의 죄이다(1-6). 그 후 에돔을 심판하신다(7-22). 에서의 후손으로 선민을 괴롭혔다(민 20:14-21: 대하 28:17). 죄목은 우상숭배와 불의를 자행함과 선민을 괴롭힘이다(시 16:3).
23절로 39절은 다메섹에 대한 예언과 게달과 하솔에 대한 예언과 엘람에 대한 예언을 기록한다. 23절로 27절은 다메섹에 대한 예언은 아람 국가의 수도로서 아람 왕국을 대표한다. 28절로 33절은 이스마엘의(창 25:13) 후손인 게달과 하솔의 예언으로 황무지가 됨이다(34-39).
바벨론 멸망과 선민 회복(50:1-46): 바벨론이 멸망되어야 선민의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1-10). 함락과 동시에 우상은 부스러지며 그 땅은 황폐케 되니 선민이 돌아온다. 바벨론의 수치가 선민의 영광이 된다는 예언이다(11-20). 행한 대로 주시는 분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벧전 1:17).
21절로 46절은 바벨론의 심판인데 무엇을 심판하실 것을 분명히 한다. 먼저 권세가 무너지고(21-28), 교만이 무너지고(29-32), 선민의 구속자가 칼을 보내시고(33-40), 소돔고모라처럼 황무케 할 것임을 말하고 북쪽에서 오는 원수로 말미암아 파멸됨을 예언한다(메대와 파사의 연합군에 망함).
바벨론의 멸망(51:1-64): 포로 중에 있는 선민에게 용기와 위로를 위해 바벨론에게 격파 자를 보냄과(1-6), 바벨론의 금잔이 깨어지며(7-10), 메대 사람을 보내 성전을 더럽힌 자를 멸하며(11-14), 우상을 훼파하고(15-19), 시온에서 행한 대로 받고(20-24), 이는 남 왕국 유다를 멸망한 심판을 말하고(25-26), 바벨론에 심판을 대행할 메대와(27-33), 선민의 원성과 송사에 따라 심판하실 것과(34-40), 이러한 심판이 임할 때 바벨론에 대한 애가(41-53)의 기록이다. 세상에서 칭찬과 영광을 받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도 그런 것은 아니다(시 62:9). 바벨론이 멸망할 때 겁약하지 말고 구원의 때임을 믿고 주권에 섭리 따라 행동해야 한다(46-50). 54절로 58절은 바벨론의 멸망이 하나님의 보응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멸망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임이 예레미야의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나타난다(59-64). 심판 날에 없어질 성벽, 성문과 같은 것들을 열심히 쌓고 있는지? 살펴보자(렘 51:58).
예루살렘의 함락(52:1-34): 46장부터 51장까지 열방을 향한 심판이었지만 52장에서는 예루살렘의 함락(1-23)과 포로가 된 백성들(24-30)과 여호야김의 석방(31-34) 등으로 구 성되었다.
예레미야의 목적
예레미야 선교의 목적은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의 소명 때 하신 말씀에 표현된다. 일관된 주제는 유대의 심판이다. 가까이 올 것이며, 형벌을 받아 마땅함이 진술된다. 형벌은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숭배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위협과 형벌의 어두운 배경에 메시야 이신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나타난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그리스도의 날을 보도록 허락되었다. 이 약속들은 회개를 촉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약속이 뒤따르며 돌아오면 번성하여 축복을 받고 불순종은 심판을 받게 된다는 선포이다.
에스겔의 총 제목: 권능 주시는 하나님 영광의 주 | ||||||||||||
권 능 의
성 격 |
권능의 비전 |
사자의 얼굴 |
절대주권= 왕의 복음 |
마태복음 | ||||||||
황소의 얼굴 |
희생 봉사= 종의 복음 |
마가복음 | ||||||||||
사람의 얼굴 |
계시의 능력= 사람의 복음 |
누가복음 | ||||||||||
독수리의 얼굴 |
신비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 |
요한복음 | ||||||||||
권능의 내용 |
생물로 나타남 |
능력은 생명부터 | ||||||||||
불과 단 쇠로 나타남 |
심판위험 성결로 | |||||||||||
도는 바퀴로 나타남 |
자유로운 하나님의 섭리 | |||||||||||
사자는 심판과 승리 |
번개같이 사역이 신속함 |
우 편 | ||||||||||
권능의 사역 | ||||||||||||
황소는 목자의 희생 |
무지개의 계약은 자비와 신실 성 |
좌 편 | ||||||||||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림 |
앞으로 만남(사역의 단순성, 불변성) |
앞 편 | ||||||||||
독수리는 임마누엘의 신비 |
날개의 연합(일심단합) |
뒤 편 | ||||||||||
에 스 겔
내 용 |
선지자의 소명과 준비 |
제사장의 아들 에스겔 | ||||||||||
에스겔이 본 하나님의 계시 | ||||||||||||
그의 소명 | ||||||||||||
그의 임명과 능력을 부여하심 | ||||||||||||
영적 양식인 말씀을 먹음 | ||||||||||||
그의 직무는 영적인 파수군 | ||||||||||||
포로 전 유다 타락 |
예루살렘의 멸망 유다백성의 타락 환상으로 경고함 |
죄 악 상 |
암몬= 선민 멸망을 기뻐함. | |||||||||
모압= 하나님을 모독함. | ||||||||||||
에돔= 선민을 대적함. | ||||||||||||
블레셋= 선민을 대적함 | ||||||||||||
일곱 나라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함 | ||||||||||||
두로= 선민의 멸망을 기뻐함. | ||||||||||||
시돈= 선민을 대적함. | ||||||||||||
애굽= 선민을 대적함. | ||||||||||||
이스라엘의 축복의 약속 세밀한 분해 (33장-48장) |
파수군의 경고와 죄의 회개, 타락한 목자와 선한 목자의 출처. | |||||||||||
국가의 부흥과 영적인 부활, 이스라엘의 원수를 물리치심. 새로운 성소를 세움. | ||||||||||||
성소와 제단의 법(의식), 주의 영광의 회복, 충성된 제사장의 직무. | ||||||||||||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 이스라엘 12지파의 땅 분배, 열두 문의 이름. | ||||||||||||
능 력 주 시 는
방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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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제시로 |
새로운 영적 지식 |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함 |
은혜로 | ||||||||
새로운 신앙의 소원 |
믿음의 불을 주심 | |||||||||||
성령님으로 |
죽은 자를 살리심 |
영적 부활 |
기도로 | |||||||||
일으켜 생명을 주심 |
큰 군대로 삼으심 | |||||||||||
말씀을 먹이므로 |
영의 양식 |
생명의 유지 |
믿음으로 | |||||||||
영적기쁨 |
생명의 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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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으로 |
새 마음 |
중생의 새 사람 |
능력으로 | |||||||||
임마누엘의 사람 |
승리의 새 사람 | |||||||||||
성전으로 |
예수님의 몸 된 교회 |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는 성전 |
봉사로 | |||||||||
예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 |
생수가 흘러나오는 성전 | |||||||||||
참고: 성령님의 약속과 역사가 25회 기록됨(사: 아들, 렘: 성부, 겔: 성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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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스 겔
내용의 전개와 구성
예루살렘 멸망 이전부터 바벨론의 포로 기간 동안(B. C. 593-570)에 선지자로서 사역한 에스겔의 예언을 기록한 책이다. 둘로 나눌 때 첫째는 1장부터 32장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광을 환상으로 보고 선지자로서의 소명을 받은 후에 유다의 주변 열방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 내용이 기술되었고, 둘째는 33장부터 48장은 에스겔이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에 바벨론으로 끌려간다는 예언이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이스라엘의 회복과 성전 재건과 참 예배의 회복, 그리고 이스라엘의 영토에 대한 묘사이다. 특히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열방의 멸망에 대한 예언은 예레미야와 같지만 폭넓고 상세하게 회복과 영광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리고 환상과 상징을 풍부하게 하므로 다니엘서와 함께 구약 계시문화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책명
히브리 성경은 책의 주인공 이름을 따라 “예헤즈겔”이라 부른다. “에스겔”의 뜻은 “하나님이여 강하게 하소서”를 의미한다. 희랍어 70인 역에는 “예제키엘”이라 부르는데 벌게이트역은 “에제키엘”로 부른다. 에스겔 선지의 이름이 두 번 선지서에 나오고 다른 구약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저자
에스겔의 자체 증언(1:3; 24:24)과 기록자를 1인칭으로 나타냈음을 감안하면 에스겔의 단일 저작임이 확실하다. 특히 성전과 제사장직, 그리고 제물이 본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사장 출신인 에스겔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기록연대
에스겔의 사역 시기는 B. C. 593-570년이었으며, 에스겔의 사망은 B. C. 560년이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기록연대는 기원전 570-560년 사이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기록동기
에스겔의 기록 동기는 1차적으로 포로 된 유다 백성이 당하고 있는 고난이 그들의 죄임을 깨닫게 하고 고난 중에도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끝까지 회복의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모든 독자들에게 신약시대의 축복을 보여주는데 최종적인 독자는 우리라는 신약시대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사역들을 예표한다(21:26, 27; 34:11-31). 자기 백성들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영광스러운 하나님나라를 예표 함으로서 하늘의 소망을 가지게 한 것이다.
특징
환상과 상징을 풍부하게 다룬 구약 계시 문학의 정점에 위치한 2권의 책(에스겔, 다니엘)중 하나이다. 그리고 유다와 열방에 대한 정죄와 이스라엘의 회복을 다룸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균형 있게 묘사한다. 세 번째는 제사장적인 관점과 예언자적인 관점이 조화롭게 전개된다. 그리고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묘사하므로 장차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을 짐작케 하는 종말론 적인 말씀이 에스겔의 특징이다.
에스겔의 주요 주제
바벨론 포로 기간 동안 실의와 절망으로 살아가는 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회복 사역을 화려하면서도 강력하게 예시하는데 내용이 아래와 같다.
1. 인간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에스겔은 3장 1절을 비롯해 93회나 ‘인자’라는 칭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역자로서 인간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 만유의 통치자 하나님.
하나님을 드러낼 때 “나는 여호와이다”(7:27)라는 표현을 49회를 언급한 것은 택한 백성들과 이방의 모든 인류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타락한 세상의 국가들을 미혹하며 조종하는 사단을 징벌하신다.
3. 하나님 말씀의 신실 성.
바벨론에게 포로 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석방하신다는 축복의 메시지가 당시의 상황에서는 성취불가능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실현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보기에는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반드시 실현되고야 만다(3:3).
4. 하나님 백성의 책임.
이스라엘은 언약백성으로서의 축복을 주장했지만 의무는 무시하였던 것을 에스겔이 책망하였다. 이렇듯 오늘날의 성도들도 구원의 보장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갖는 특권만을 주장하고 기대하지만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맡기신 일과 경건 생활을 등한시한다면 예수님께 칭찬이 없을 것이다.
5. 새 언약.
에스겔은 하나님이 장차 모세의 언약보다 더 완전한 새 언약을 주실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성도와 하나님 사이에 체결되는 언약이다. 이 안에서 성도는 참 평안을 누리고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6. 에스겔의 목적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제사장이었으며 아버지는 ‘부지’라는 이름을 가진 자이다. 에스겔은 여호야긴의 이송과 함께 바벨론으로 이송되었다(1:1). 그곳 ‘그발’ 강가의 텔아비브라는 곳에 거주했고(3:15), 결혼하여 가정이 있었다(24:16-18). 그의 선지자의 소명은 포로 된지 5년 4개월에 시작되었고(1:1-2), 최후 연대는 25년 첫 달로 되어 있다(29:17). 이로서 그의 선교는 적어도 22년간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 포위가 시작된 날에 그의 아내가 죽었다(24:1, 15-19). 또 그가 에월므로닥의 통치하에 여호야긴 석방을 볼 때 살았는지 분명치 않다. 그가 바벨론에서 그의 동시대인인 다니엘을 알았을 것이라는 점은 14장 14절과 28장 3절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에스겔의 사명은 포로 민들에게 자신의 죄 때문에 재앙이 임했다는 사실을 각성시켜 주는 것이었다. “범죄 하는 영혼은 죽으리라”는 말씀을 선포하므로 개인적인 책임에 대한 위대한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국가의 외형적 형태는 신정정치라고 해도 선택한 국가라도 계속 죄를 짓는다면 필경은 종말에 이르는 것이다. 그분은 신실하게 만민에게 구원을 주신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너희가 왜 죽음의 길로 가느냐?” 언젠가 이스라엘은 자기 땅에 다시 모일 것이고 한 왕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에 대한 참된 경배가 있을 것이며 그 때에 그 성을 여호와 삼마라(여호와께서 그곳에 계시다) 불러질 것이다. 이렇게 자기의 영원한 목적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 성을 계시하고 있다. 죄짓는 국가는 망할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7. 에스겔에 나타난 보화 같은 교훈들.
1. 예루살렘 멸망 전에 외친 예언들(1:1-24: 27)
1) 에스겔 1장 1절부터 3장 21절까지 서론의 성격을 띤다. 선지자가 여호야긴 포로 제 5년(기원전 약 592년)에 어떻게 이상을 받았으며 어떻게 여호와의 장엄함을 보았는지 말해준다. 1장 1절에 “제 30년 사월 오일”은 여호야긴 포로 5년이므로 선지생활 30년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회오리바람이 북쪽에서 닥아 오는데 이는 국가에 대한 심판이 북쪽에서 옴을 가르친다. 신의 현현후 신의 소명이 내린다. 에스겔은 텔아비브에 가서 그 곳에서 7년간 기다렸다. 그 때 선교를 시작하라는 소명이 온다. 그의 위치의 특징이 그 앞에 진술되어 있는데 그는 “이스라엘 집의 파수 군”이다.
2) 3장 22절로 27절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본 두 번째 환상이다. 크신 위엄을 에스겔에게 보이신 후,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파수꾼에 비유하신 하나님은 돌연 그에게 벙어리가 될 것을 명하신다. 그리고 허락이 있을 때에만 입술을 열어 증거 하라고 하신다. 즉 사명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은밀한 중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이 사명 자에게 생명이다.
3) 4장 1절부터 7장 27절은 상징적 행동에 의해 예루살렘 멸망이 서술된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포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려 한다(4:1-3). 좌편으로는 눕는 것에 의해 그는 국가의 죄악에 대한 형벌을 알리려고 한다(4:4-8). 또 그가 막는 음식의 종류로 포위의 결과를 말하려 한다. 에스겔 5장 1절로 4절에서 그는 성의 주민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인다. 5장 5절로 17절은 선지자가 백성의 죄악을 분명히 설명한다. 6장과 7장은 두 가지 신탁의 말씀이 있는데 우상 섬기는 국가에 대한 심판과 마지막 왕국 전체에 대한 심판이다.
4) 에스겔 8장 1절로 8절의 내용인데 6년 6월 5일 (기원전 약 591년 8월, 9월)에 선지자가 영적으로 예루살렘에 이송되어 그곳에서 일어날 파멸의 환상을 본다.
5) 에스겔 9장 1절부터 11장 25절의 내용이다. 예루살렘에 대한 형벌 여호와의 사역자가 남은 모든 자를 멸하기 위해 성을 지나감. 그가 성전에서 최후의 출발을 위해 준비함. 불경건한 통치자는 망할 것이다.
6) 여호와께서 성을 그 불신과 거짓 선지자들 때문에 버림(12:5-14:23). 유다의 멸망을 상징하는 행위, 유다에 임할 재앙의 확실성(17-28), 거짓 선지자의 죄와 심판(1-23), 우상숭배에 대한 책망(14:1-23)과 우상숭배에 대한 벌이 기록되었다. 4가지 중한 벌은 칼, 기근, 사나운 짐승, 온역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끊으신다는 것이다.
7) 형벌의 확실한 필연성(15:1-17:24)을 통해 교훈하신다. 먼저 쓸모없는 포도나무 비유(15:1-8)로 불에 던져질 것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16:1-14)과, 유다의 간음(16:15-
34), 유다의 간음에 대한 형벌(16:35-52), 회복의 약속(16:53-63), 독수리와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17:24)이다.
8)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18장 1절로 32절에 나타난다. 1절로 9절은 신 포도의 비유이며, 10절로 20절은 심판과 구원의 개별성을 드러냈으며, 21절로 32절은 회개한 자에 대한 축복을 선포한다.
9) 이스라엘 방백들에 대한 애가를 19장 1절로 14절에서 불렀다. 방백을 위한 애도의 노래(19:1-14),이다.
10) 성의 몰락 전에 최후로 경고하는 말씀이 에스겔 20장 1절부터 24장 21절에 선포된다.
2. 외국 국가들에 대해 외친 심판의 예언들(25:1-32:32).
암몬: 1절로 7절에 암몬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고, 8절로 11절은 모압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다. 그리고 에돔과 블레셋을 심판하시겠다고 선포하신다(12-17). 26장 1절로 21절은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27장 1절로 36절에서 두로의 멸망을 애도하는 노래이다. 28장 1절로 19절은 두로 왕에 대한 책망과, 20절로 26절은 시돈의 멸망을 예언한다. 29장 1절로 21절에서는 애굽에 대한 심판의 확실성을 선포하시므로 애굽에 대한 엄중함을 보이신다. 우리들의 세계사를 보자 역사의 진행 속에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는가? 그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얼마나 느끼는가를 생각해 보라. 30장 1절로 26절은 애굽의 심판에 대한 예언인데 특별히 성한 팔은 애굽의 군사력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두 팔을 꺾으시니 바벨론의 속국이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온전히 의뢰하며 하나님의 도구로 하는가? 아니면 내가 살아서 설치는가? 진정 하나님의 힘으로만 가능함을 알아야 한다(미 6:8). 에스겔 31장 1절로 9절은 앗수르와 애굽의 번영의 비교이며, 10절로 18절은 앗수르와 애굽의 멸망을 비교한다. 그리고 32장 1절로 16절은 애굽 왕에 대한 애도의 노래이다. 17절로 32절은 애굽의 멸망에 대한 애도의 노래인데 크고 아름다운 애굽이 구덩이에 떨어질 애굽이 된 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움과 많은 장점들이 어떻게 쓰여 지는가? 교만치는 않는가? 죽음과 함께 없어질 아름다움이 아니라 현세와 내세에서 영원히 빛나게 하자(악 4:16).
3.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 사람을 사로잡아 간 후의 예언.
(에스겔 33:1-48:35)
1) 에스겔 33장 1절로 9절은 에스겔에게 부여된 파수꾼의 사명이다. 10절로 20절은 개인의 책임이며, 21절로 33절은 입이 열린 에스겔과 본토의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과 바벨론 거주자들에 대한 책망이다.
2) 34장 1절로 31절의 백성들이 여호와의 뜻을 깨달으며 그들 중에 참 선지자가 있을 때가 올 것을 말한다. 거짓 목자에 대한 경고를 1절로 10절에서 밝히고, 11절부터 31절에서 참 목자 되신 하나님을 본다(23). 우리는 성도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살찐 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나라에 가서 살찐 양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초장의 축복이 주어져 있음을 기억하자(시 107:9).
3) 에돔의 황폐에 대하여 에스겔 35장 1절로 15절에서 경고하신다. 에돔의 멸망에 대한 경고와 심판을 예언한다. 범죄와 타락의 종말은 멸망뿐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 그래서 지금 마음 놓고 범죄하며 타락의 길에 서 있는 것인가?(히 12:25).
4)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36:1-38).
이스라엘의 땅과 백성의 회복의 예언(1-21),과 이스라엘 회복의 참 의미를 나타낸다(22-38). 이스라엘이 범죄 후에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우리는 어느 때에 부끄러움을 느끼는가? 무엇보다도 죄로 더러워진 마음일 것이다(롬6:21).
5) 마른 뼈의 환상과 이스라엘의 부활의 상징으로 37장 1절로 14절에서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에 대한 환상과 15절로 28절에서 두 막대기의 연합 비유가 나온다. 성도는 세상이 사단과의 영적 전쟁터이다. 우리는 지는 자가 이긴다는 준비와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품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가?
6) 곡과 마곡에 대한 예언(겔 38:1-39:29)
위의 예언 다음에는 곧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과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며 그 곳에서 다윗은 그들의 왕이 되고 그들은 백성이 된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을 파멸하고 정복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회답을 위해 38장과 39장으로 가야 한다.
에스겔은 원수가 나타날 때를 말해준다. 그 때는 “여러 날” (38:8), “말년에”(38:8), “끝 날에”(38:16)로 표현한다. 이 구절들은 신약의 예수님의 지상 출현의 시기로 알려진다. 신약에도 같은 구절들이 있다(행 2:17; 히 1:1-2; 벧전 1:20; 요 2:18; 유 18). “이 날의 마지막에” “마지막 날에” 등등과 같은 구절을 사용한다(38:1-39:24). 즉 그들이 고향 땅에 건설할 때 메시야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 가운데 거하고,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평화를 이룩한 후 재림하실 그 날을 고대하게 함이다(25-29).
7) 성전에 대한 기술로 상징화된 하나님 교회에 대한 비전.
(40장 1절부터 48장까지 세워질 성전에 대한 예언이다)
본장은 선지자의 선교가 포로 민들에게 위로를 주어 미래에 구원을 상기시키며 포로 생활이 죄로 인한 형벌이었으나 그 포로 생활도 날 수가 정해져 있다.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고국 땅에 돌아와서 여호와를 신령과 진리로 경배할 날이 올 것이다. 에스겔은 이 사실을 어떤 방법으로 백성에게 내었을까? 제사장이며, 선지자인 그는 이 진실을 제사 의식에서 선택한 상징들을 사용해서 나타내었다. 여기서 성전과 그 경배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는 분명히 비유적 혹은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문자적으로 그의 지시를 따르는 모든 의도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므로 메시아와 그 왕국과 모든 아름다움에 참예함을 닮아가는 형상이다.
구약의 예언들은 음울한 대화나 비유적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옛 언약의 대해 그림자적 모습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고 있고, 오경과 서로 다르지 않으며 또한 천년 왕국 동안에 있을 역사적 성전을 기술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의 특유한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잘 전파한 것이다.
에스겔 40장: 새 성전의 환상 서론으로 본장부터 48장까지는 회복된 이스라엘에 세워질 새 성전의 관한 이상이다. 새 성전의 환상(40:1-4), 성전 바깥뜰의 세 문(5-27), 성전 안 뜰의 세 문(28-37), 제사 도구와 제사장들의 방(38-47), 성전 본관이다(48-49). 성전의 환상이 바깥뜰로부터 지성소를 향하여 기술된 것은 하나님과 성도 간의 관계 회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에스겔 41장: 성소와 지성소(41:1-4), 골방의 구조(5-11), 성전의 규모와 장식과 내부 장식(12-26).
에스겔 42장: 성전의 부속 건물(42:1-14), 성전의 바깥 담(15-20),
에스겔 43장: 하나님의 영광의 재현(43:1-5), 여호와의 거룩한 음성(6-12), 번제단의 규모와 제사 규정과 정결의식(13
-27),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전 부분을 성결케 하는가? 진정 당신을 성결케 하는 회개의 생활에 힘쓰는가? 또 한 성령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성결케 되고 있는가?(겔 43:24)
에스겔 44장: 닫힌 동향의 바깥문 (1-3), 영적 할례와 추방되어야할 이방인들(44:4-9), 레위 인들이 맡은 책임(10-14), 사독 계열의 제사장의 책임(15-27), 제사장들의 기업(28-31). 우리는 일용한 양식을 위하여 근심하는가? 그리고 미래의 풍족한 삶을 위해 조바심을 내는가? 여기 친히 기업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지 아니한가를 살펴보자(겔 44:28).
에스겔 45장: 거룩한 구역(1-8), 치리 자에 관한 권면(9-12
), 백성들이 드릴 예물(13-17), 절기에 관한 규례(18-25). 성전을 정결케 하는 신년절과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 피 흘림을 예표하며 초막절은 천국의 도래를 상징한다.
에스겔 46장: 안식일과 월삭(1-7), 성전 출입 규례(8-10), 기타 제사에 관한 규례(11-15), 왕의 기업에 관한 규례(16-18), 희생제물을 삶은 장소(19-24).
에스겔 47장: 성전에서 나오는 생명수(1-12), 새 땅의 경계(13-23). 회복된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을 향하여 제한적으로나마 복음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복음의 문이 모든 열방에게 열린 것은 그리스도 예수 시대부터이다.
에스겔 48장: 북부의 땅 기업의 분배(1-22), 남부의 땅 분배(23-29), 성읍의 출입구(30-35). 본 단락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읍의 규모와 출입문에 관한 내용이다. 즉 이 성읍은 각 지파들이 모여 예배할 수 있는 곳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3개의 문이 있는데 그 문들의 명칭은 각 지파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리고 이 성읍의 명칭은 ‘여호와 삼마’로 새 예루살렘에 임재 하신 여호와의 영광을 뜻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범죄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오셔서 이제는 자기 백성 가운데 영원히 떠나지 않으실 것에 대한 약속임을 의미한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으로 성취되었고(요 1:14),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임을 예표 한다(계 21: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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