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어원
영어 ‘church’는 주님에게 속한다는 뜻을 지닌 헬라어 ‘퀴리아코스’에서 유래되었다.
구약에서는 히. ‘카할이 “회중의 모임”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종교적(대상 30 : 23)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세속적(렘 26 : 17)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신약의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구약의 히브리어 ‘카할’이 지닌 회중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로 문자적으로는 “함께 불러내서 만남”이라는 뜻이 된다.
행 19 : 32, 39에서는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에 모였던 많은 무리들을 ‘에클레시아’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7 : 38에서는 그 단어가 광야에서의 히브리인 공동체를 의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헬라어는 세상 가운데서 불러냄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된다(“밖으로”, “불렀다”).
비록 신약의 교회가 구약의 ‘카할’이란 단어에 대응하는 뜻이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의 가르침 특히 바울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교회를 그리스도인을 규정짓는 특징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Ⅱ. 성경의 가르침
A. 복음서 : 네 명의 복음서 기자들 가운데 마태만이 유일하게 “교회”라는 뜻으로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예수께서는 페니키아인들의 성읍이었던 두로나 시돈으로부터 몰려왔던 군중들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오신 후에(마 15 : 21), 그의 열두 제자들에게 자신의참모습(Identity)에 관해서 물으셨다(16 : 13).
그때 베드로는, 예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16절)이라는 고백을 하였다.
이에 주께서는 이러한 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기초로 해서 그들과 함께 교회를 세울 것을 말씀하셨다
(18절 ; →베드로). 18 : 17에서는 교회라는 단어가 “한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지역 교회)이란 의미로 쓰였다.
B. 사도행전 :
주께서 부활하신 후, 열두 사도들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믿는 유대인 신자들의 공동체가 구성되었다(행 1 : 12-14 ; 2 : 1). 그들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약속하셨던 성령의 내림을 간절히 기다렸다(행 1 : 8, 14).
오순절 이후 그 교회는 지리 문화적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2 : 47).
지리적으로는, 사마리아, 안디옥(11 : 26 ; 13 : 1), 가이사랴(18 : 22) 그리고 로마 제국의 다른 도시들로 확산되었다(참조. 15 : 41 ; 16 : 5).
주로 바울의 전도 여행의 결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가입되었다.
누가는 그의 기록 초점을 여러 지역에서의 새로운 교회 설립에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들 교회의 다양한 특성들을 언급하면서도 그 다양한 교회들의 통일성에 대하여도 놓치지 않고 기록한다(15 : 22 ; 9 : 31).
C. 바울 서신 : 바울 서신에서 사도는 교회의 다양한 임무를 말하면서, 지역교회 사이에는 진정한 구별이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롬 16 : 1, 4, 16 ; 고전 1 : 2).
그는, ‘교회는 하나다’라고 가르친다(고전 10 : 32 ; 12 : 28 ; 14 : 4).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로 설명한다(엡 4 : 12, 15).
어떤 때에는 단순히 “몸”(4 : 4), “이스라엘 나라”(2 : 12), “하나님의 집”(2 : 19 ; 참조. 딤전 3 : 15), 하나님의 “성전”(엡 2 : 21-22) 또는 그리스도의 “신부”(5 : 25)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하나의 독특한 현상은 가정 교회라고 불리는 지교회들이 로마(롬 16 : 5), 에베소(고전 16 : 19 ; 참조. 8절)와 골로새, 라오디게아(골 4 : 15 ; 참조. 몬 2절)에서 설립된 것이다. 이는 틀림없이 어떤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한 모임의 형성을 포함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주인의 가족과 종들 및 그의 친구들까지 참여하였을 것이다.
바울 서신에는 그리스도인의 예배에 대한 언급이 산재해 있다.
초대 교회의 예배 형식은 회당에서의 유대인들의 예배 형식을 따른 것으로서, 성경을 읽고(초기에는 구약, 후에는 사도들의 서신을 읽었다 ; 참조. 골 4 : 16 ; 살전 5 : 27),
공중 기도를 드린 후에, 설교를 들었다.
그리고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가졌으며, 세례를 주었다.
가능한 한 찬송을 드렸으며(엡 5 : 19), 종종 가난한 자들을 위한 연보를 제안하기도 하였다(고전 16 : 1-4).
Ⅲ. 신학적인 고찰교회에 대한 성경의 묘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명백하게 나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체로서의 교회와 신자의 모임으로서 교회와의 관계나,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의 관계에 대해서 완전한 일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전투하는 교회와 승리한 교회, 지상교회와 천상 교회, 보이는 교회(유형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무형 교회)로 구분해서 설명하려고도 한다).
A. 교회의 네 가지 특징
교회에 관한 니케아 신조의 선언은, 하나의 교회, 거룩한 교회, 보편의 교회, 사도적 교회로 요약된다.
이에 따라 신학자들은 세상의 일반적인 인간들의 단체로부터 교회를 구별하는 네 가지의 분명한 표지를 구체화시켰다.
1. 통일성-기독교 공동체는 우선적으로 각 지역 교회와 회중들의 나타남으로 인해 신학적, 문화적인 다양한 특성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통일성, 곧 하나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통일성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자들의 연합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가능케 된다(참조. 엡 4 : 4-6).
이러한 영적인 연합으로 인하여, 비록 가끔은 그러한 것이 결여되어 보일지라도, 기독교 내의 다양한 교파들 사이를 자발적이고 순수하게 묶는 하나의 기초가 제공된다.
2. 거룩성-교회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을 살펴볼 때, 거기에는 완전함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거룩하게 살도륵 권면한다(벧전 1 : 15).
뿐만 아니라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도록 가르친다(고후 7 : 1 ; 살전 4 : 3).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 부분을 대체로 성직자 계급의 조직된 교회에 국한시킨다(참조. 벧전 2 : 9).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모든 일반 교인들에게 공히 적용시키고 있다.
3. 보편성-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의 교회(one church)일 뿐 아니라 내적으로 자격의 구별이나 신분의 차별이 없는 같은 교회이다(a Church).
교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자유자나 종이나(골 3 : 11) 남자나 여자(갈 3 : 28)나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4. 사도성-교회의 메시지는 사도들, 즉 신약의 기록자들의 가르침에 근거한다(바울도 광의로 사도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때에나 신약에 나타난 복음을 선포한다.)
그들은 그것을 성령의 보호로 남아 있는 사도적 증언이라 간주한다.
로마 가톨릭은 그들의 사제단들과 사도들의 권위에 연속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결론적으로 교회의 권위를 성경 위에 두고 있다.
B. 한 집단으로서의 교회와 조직세로서의 교회 :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한 개인이나 구성원으로서의 교회와 한 조직체로서의 교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여러 견해들이 있다.
전통적으로 로마 가톨릭은 조직체로서의 교회를 강조한다.
그들은 가르치는 교회, 즉 사제단으로 구성된 교회와 듣는 교회, 즉 평신도들로 구성된 교회를 분명하게 구별한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Vatican Ⅱ) 이후에 가톨릭에서는 한 집단으로서의 교회가 좀더 강조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의 관계는 ‘하나님 나라Ⅲ’(Kingdom of God )를 참조하라.
Ⅳ. 교회 정치신약에는 그리스도 교회의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사도 바울, 역시 그의 후기 서신(디모데전서, 디도서, 로마서 ; 로마서에는 1 : 7에서 “성도들”로만 언급되고 있다)에서만 다양한 교회의 직분들인 장로, 집사, 감독들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교회의 봉사자들과 그들 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가 생겨났다.
오히려 신약은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 : 10)는 지도 원리를 제시함으로써 그 문제에 대한 신자들의 이견이 더욱 복잡해진 듯하다.
A. 성경의 가르침 :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그의 열두 제자를 사도로 임명하시면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완성과 죄를 위한 대속의 복된 소식을 전하도록 명하셨다
(행 1 : 8 ; 참조. 마 28 : 16-20).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을 친히 목도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메시지와 그리스도 자신의 권위 있는 말씀을 믿을 만한 것으로 증거할 수 있었다.
유다가 죽은 후, 남은 열한 사도들은 맛디아를 유다 대신에 열두 사도에 가입시켰다(행 1 : 26).
다메섹 부근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바울도 자신의 메시지의 신적 기원을 언급한다(갈 1 : 11이하).
사도행전은 베드로의 사역과 설교(행 2-12장)와 바울(13-28장), 그리고 요한(3 : 1, 4, 11 ; 8 ; 14)의 사역을 기록하고 있다.
이상은 사도들의 유래와 활동에 대한 고찰이다.
사도들의 사역 초기에 이들은 가난한자와 과부들을 돕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부담이 될 뿐 아니라 불가능하기까지 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 사도들은 헬라파의 과부들을 위하여 일곱 사람의 유능한 신앙인을 택하여 구제의 일을 맡겼다(행 6 : 1-6).
이들이 집사 직분의 시초가 되었다. 물론 이들 가운데 빌립은 전도자이기도 하였으며(8 : 5, 26이하, 40), 스데반은 하나의 기독교 변증가이기도 하였다(행 7장).
초대 교회 후기에 이르게 되면, 종종 감독, 장로, 그리고 집사(→집사) 등의 교회 직분들을 세운 기록을 읽을 수 있다.
감독(헬. ‘에피스코포이’)은 지역 교회의 시역자들로서 장로들과 그 권위가 동일하였다.
행 20 : 17에 의하면, 바울은 교회를 치리할 수 있는 자들로서 장로들을 임명하였다.
이곳은 장로들이 임명되었던 특이한 실례의 하나로 나타난다.
이 장로라는 직분은 일곱 집사들을 뽑은 사건 이후에 나타나는데, 안디옥 교회와(행 11 : 30)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의 결과로 설립된 갈라디아 교회가 장로들을 선발하였다(행 14 : 13 ; 참조. 약 5 : 14). 빌립보 교회에서는 집사들이 선발된 것이 분명하다.
이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의 서두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빌 1 : 1).
이 집사들은 장로들이나 감독들보다 그 권위에 있어서 낮은 위치였던 것 같다.
바울은 제1차 투옥 때까지 이 세 가지의 직분에 대하여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 세 직분의 상호 관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고 있다.
교회 정치에 대하여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가르친 특별한 교훈들 가운데에는 영적 은사의 활용에 따른 직분의 순서를 기록하고 있다.
사도들, 선지자, 교사, 기적을 행하는 자, 병고치는 능력자, 서로 돕는 자, 다스리는 자, 각종 방언하는 자의 순서로 기록한다(고전 12 : 28).
그러나 바울은 사랑을 가장 좋은 영적 은사라고 가르친다(고전 13장).
이로써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 은사들의 권위를 축소시킨다
(참조. 고전 1 : 2에서도 바울은 “성도들”이라는 호칭으로 고린도 교회 내의 모든 사람을 차등 없이 대하고 있다).
에베소서에도 고린도서와 비슷한 직분의 목록들이 나타난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로 기록하고 있다(엡 4 : 11).
교회 정치에 관한 바울의 견해가 무엇이든지 그는 항상 그의 백성들의 통치자는 그리스도시라는,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굳게 붙잡았다.
평신도나 직분을 맡은 자나 모두 한 분 그리스도의 동일한 지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엡 1 : 22 ; 5 : 23-24).
B. 신학적 고찰 : 초기의 기독교는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인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계급 제도를 중심으로 강력한 성장을 나타냈다.
개신교는 교회정치에 대하여 여러 견해를 나타내며 그 견해에 따라 그 단체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예. 회중 교회주의자, 직분을 맡은 자들의 보편의 교회나 상급 치리회 같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여러 견해도 로마 가톨릭 교황의 권위에 대한 반대에는 동일한 보조를 취한다.
개신교도들도,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하나의 반석(헬. ‘페트라’ ; 베드로의 이름은 ‘페트로스’ ; 마 16 : 18)에 세운다는 데 대해서는 로마 가톨릭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반석을 베드로의 고백으로 인식한다(16-17절).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언급한 천국 열쇠는 베드로 한 사람에게 뿐 아니라 모든 사도들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이해한다(18 : 18).
따라서 베드로 개인이 특별한 지도력의 권위를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개신교도들은 성경에서 바울과 베드로가 동등하다는 귀절을 뽑아내고 있다(참조. 갈 1 : 1).
또한 베드로도 스스로를 장로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칭하고 있다
(벧전 5 : 1).
그리고 교회를 다스리는 최후의 권위는 그리스도에게 바쳐지고 있다
(2 : 4-10). (→감독, 집사,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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