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겜
예루살렘에서 세겜길을 따라 약 60Km지점에 잘 알려진 세겜이 있다.
세겜의 뜻은"목덜미"란 뜻으로, 세겜은 에발산과 그리심산을 양쪽 어깨에 메고 있는 듯이
두 산 사이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겜은 또한 나블러스라고 불려지고 있다.
나블러스는 로마 시대부터 쓰여진 이름으로 “새로운 도시”라는 뜻이다.
오늘날 세겜은 요르단 서안(West Bank)의 팔레스틴 지역에서 가장 큰 아랍인 도시로서
아랍민족주의 중심지이다.
따 라서 유대인과 아랍인과의 갈등이 가장 심하게 대두되고 있는 점령지로서 시내 곳곳에
이스라엘군의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겜은 이집트에서 시리아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일 찍이 주전 1850년경에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곳 세겜에 이주해 왔고(창12:6-7),
그의 손자 야곱은 천막과 제단을 세우기 위해 땅을 매입하였다(창33:18-19).
야곱의 딸 디나는 세겜에서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였다.
그리하여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거민들을 살육함으로서 디나에 대한 보복을 하였다.(창34장)
요셉의 유언대로 출애굽할 때 가져온 요셉의 시신을 세겜에 매장하였다(수:24:32).
여 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을 세겜에 모아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였다(수24장).
주전 9세기에 북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은 수도를 세겜에서 사마리아로 옮김으로서 세겜은 더 이상 발전하지는 못했다.
주전 722년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세겜에 앗시리아인들이 대거 이주해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겜 사람들은 이민족과 피가 섞이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남 유다 유대인들은 혼종이 된 사마리아인들을 거절하였다.
이 때부터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서 독자적인 종교생활을 다지기 시작하였고
모세 오경과 여호수아서만 성경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적대시하게 되었다.
신약시대에 빌립, 요한, 그리고 베드로는 세겜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행8:4-5).
비잔탄 시대에 세겜과 그리심산에 교회가 세워졌다.
1948년 독립당시 세겜은 요르단에 속했었으나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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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겜
세겜
세겜 여호수아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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