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힘. 유하
onstage음악의 힘
음악을 둘러싼 환경이 시시각각 변해가고, 눈과 귀를 단번에 사로잡을 자극적인 뭔가가 없으면 대중에 귀에 가닿기 어려운 시대. 그럼에도 여전히 한 음 한 음을 벼리고, 노랫말을 짓고, 기타와 피아노 코드를 보이싱하고, 그렇게 의미와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와 유재하가 가던 길을 그대로 따를 이유나 필요도 없지만, 그의 유산을 이 시대에 자신의 방법으로 이어가는 사람들. 음악이 갖고 있는 고유의 힘을 여전히 믿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유독 탄탄한 실력과 재능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수줍은 듯, 실은 묵직하게 전하고 있는 사람. 싱어송라이터, 유하의 음악을 만나보자. - 윤성현(KBS 라디오PD /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인부 1'은 2017년에 발표한 첫 번째 정규앨범 [젊은이]의 수록곡으로 유하가 버스를 타고 잠실대교를 건너다 우연히 보게 된 다리 밑 인부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다. 그는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으나 어디선가의 인부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일기와도 같은 이야기를 감정의 과장과 각색 없이 목소리 하나로 오롯이 전달한다. 드라이한 터치의 드럼은 지난한 삶의 무게를 짊어진 한 인부의 느리지만 멈출 수 없는 발걸음처럼 반복되고, 피아노는 정교한 화성으로 짜였으나 극단적으로 절제된 터치로 마치 그 곁을 흐르는 강물처럼 무심하나 두터운 위로를 건넨다.
'때가 됐을 뿐'은 2014년에 발표한 EP [Astronaut]에 수록된 곡인데, 원곡이 우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내기 위해 엠비언트 사운드 메이킹에 천착했다면 이번 라이브는 보다 재즈적인 편곡과 연주로 더욱 역동적인 분위기의 우주를 경험하게 한다. 얼핏 듣기엔 드럼, 베이스, 기타, 피아노의 4인조 편성에 기타의 톤으로 사운드의 질감을 강조하는 현대적인 재즈의 경향이 우선 도드라지지만, 이 곡의 진짜 감상 포인트는 리듬에 있다. 특히, 보편적인 4박자 진행이 아니라 6박자와 5박자의 반복 변박으로 리드미컬한 느낌을 자아내는 후렴구와 브릿지 파트의 독특한 진행은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공간 속 불규칙한 중력의 변화를 음악적 경험으로 전환한 것 같은 재미와 아찔한 어지러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독특한 제목의 곡 '문의 문'은 곧 발표 예정인 새 EP에 담길 곡으로 이번 온스테이지를 위해 특별히 연주되었다. 기본적으로 절제의 미학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지만, 특히 이 곡에서는 멜로디뿐만 아니라 개별 악기의 연주까지도 더욱더 극단적일 정도로 음표 하나하나를 아껴 쓰고 있다. 피아노도 중저음 영역만을 집요하게 연주하면서 곡의 묵직함을 끝까지 유지한다. 그리고는 예의 그 무심한 듯 포근한 목소리로 "우린 열어야 해. 우린 열어야 해."라고 주문을 걸 듯 반복해 노래한다. 이 문은 어디를 향하는 문일까? 대체 누구를 향한 문인 걸까? 음악을 따라 주문에 걸린 듯 질문을 던져본다. 음과 음이 공명하듯, 화자와 청자의 이야기가 공명한다. 세월이 흘러도, 세상이 변해도, 음악이 갖고 있는 힘이다.
artist유하
본명 유보영.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한양여대 실용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2013년 [제2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싱글과 EP를 연이어 발표했고, 재주소년 박경환의 레이블 '애프터눈레코즈'로 적을 옮겨 2017년 첫 번째 정규앨범 [젊은이]를 발매했다. 재즈적인 화성과 담담한 멜로디, 서늘한 일상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백하게 조화해 내는 목소리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꾸준히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온스테이지 영상에는 건탁(기타), 조용원(베이스), 원성일(드럼)이 함께했다. [블로그] [트위터]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