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을 바르게 하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6절)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만물의 주인이지만 피조물 인간의 참여를 통해 자신의 통치를 이 세상에 실현시킴으로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 달리 말한다면 창조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1차 가르침은 바로 하나님 나라 즉 신국(神國) 이다. 나머지 주제들인 2차 가르침들은 모두 1차 가르침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많은 설교자들은 1차 가르침인 신국론을 무시하고 창조기사에 기록된 수많은 주제들을 독립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설교하고 가르친다. 마치 2차 가르침들은 1차 가르침인 신국론과 전혀 무관한 듯 말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교회 강대상에서 행해진 주제 설교의 잘못과 실수이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주제들 즉 2차 가르침들은 절대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들은 창조기사 내에서 서로 논리적으로 긴밀히 연결된다. 다시 말해 논리적 면에서 이들은 절대로 독립적인 주제들이 아니다. 이들 주제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다. 그러나 이 목표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신국론)이라는 창조 목적의 달성을 겨냥한다.
그렇다면 성경적 주제 설교의 방법은 무엇인가? 1차 가르침을 늘 목표하고 의식하면서 2차 가르침들(주제들)을 자세히 설교하는 것이다. 예컨대 결혼이란 주제를 설교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목적을 지향하며 결혼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에 대한 주제별 강의나 강연이 되고 만다. 목표와 방향을 잃은 강의이다. 기독교 가정 상담사는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성경의 다양한 주제들은 시계의 부품들이다.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됨으로 시간 알림이라는 시계의 존재 목적은 달성된다. 마찬 가지로 창조기사의 주제들도 논리적으로 서로 긴밀히 연결된다. 이런 유기적 논리성만이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창조기사의 목적을 더욱 효과적으로 달성하도록 돕는다.
성경의 논리적 구조는 곧 주제들 사이 유기적 관련성을 뜻하며 이에 따라 성경의 주제들을 설교하는 것이 바로 성경의 기록 방식대로 하는 주제설교이다. 종래 주제설교는 앞뒤 문맥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본문에 기록된 수많은 주제들 사이 논리적 관계를 무시한 체 한 주제만 전한다. 본문의 '논리적 구조'나 '논리적 흐름'이 무시된 결과이다.
이를 피하려면 설교자는 본문을 자세히 살펴 성경 저자가 특정한 역사적 상황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1차 가르침을 제일 먼저 발견해야 한다(관찰). 1차 가르침을 위해 어떤 2차 가르침들이 동원되었는지도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2차 가르침들 사이 논리적 구조와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이 때 설교자는 본문의 내용이 머리에 상세하게 그려진다(형상화).
이것이 가능할 때 설교자는 2차 가르침들의 수만큼 다른 각도에서 동일한 본문을 다양하게 설교할 수 있다. 다양한 내용의 설교처럼 보이지만 설교들은 모두 1차 가르침에 항상 집중된다. 이로써 1차 가르침에 대해 2차 가르침들이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설교하며 본문을 더욱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다(추상화). 이것이 바로 성경이 원하는 강해설교 또는 성경적 주제설교이다.
이런 방식으로 성경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 구약 성경에 6개의 언약들이 기록된다. 언약이 출현할 때마다 구속사도 새로운 시대를 맞으며 발전한다. 개별 언약은 새로운 구속사에서 달성해야 할 목표를 갖는다. 그러나 언약들의 다 다른 목표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이라는 공동의 목적 달성을 늘 겨냥한다.
구속사적 시대가 달라지며 언약과 경륜적 목표가 달라졌을 뿐 지향하는 목적은 늘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이다. 그렇다면 언약을 설교할 때 언약의 목적인 신국론을 잊고 언약이 시대별로 목표하는 것만 설교한다면 이것이 바로 잘못된 주제설교이다. 성경 자체가 그렇게 기록되지 않는다.
구약은 모형과 상징을 이용하여 앞으로 올 메시아에 의해 실현될 하나님 나라를 예언하고 계시했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도 언약을 성취함으로 언약의 종국적 목적인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을 가능케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를 무시하고 교리적 예수나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것은 어리석다. 목표를 잃은 신학 공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할 뿐이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설교하려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1차 가르침과 2차 가르침들 사이 논리적 관계를 파악하라! 물론 특정한 본문은 하나님의 유구한 신국사의 지극히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신국사를 이해하는 능력도 반드시 길러야 한다. 이 때 부분적 해석은 성경 전체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