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여운

목회자의 모든 언행은 일종의 설교입니다.

안명애 2015. 1. 3. 12:13

목회자의 모든 언행은 일종의 설교입니다.
만약 그대가 탐욕스럽고 부주의한 삶을 산다면, 이는 그대의 양들에게 그런 삶을 살도록 설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그대가 술을 마시고 게임을 즐기고 쓸데없는 논쟁으로 시간을 소비한다면, 이는 마치 양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웃들이여, 이것이 그대들이 살아야 하는 삶입니다. 이렇게 하면 별 위험 없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만약 그대가 불경스럽고, 가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르치지 않으며, 사람들이 헛된 이야기를 할때 화제를 돌리지도 않고, 저들의 구원에 관해 터놓고 이야기하지도 않는다면, 저들은 그대가 이런 것들은 별로 필요 없다고 설교하는 것처럼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도 그대처럼 마음 놓고 죄를 저지를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대는 이보다 더 나쁜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다른 사람들의 악이 그대 자신의 악보다 더 훌륭한 것처럼 생각하도록 사람들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대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수많은 신실한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이 미움과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들에게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당신은 죄와 의무에 관해 왜 그리 엄격하게 꼬치꼬치 지적하면서 호들갑을 떱니까? 아무개 목사는 당신 못지않은 훌륭한 학자요 설교가인데, 우리와 농담도 하며 잘 지냅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아무 가책도 안 받고 우리에게 부담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가만 있지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법석을 떠는군요. 건전하고 학식 있고 우호적인 성직자들은 우리 앞에서 조용하고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우리와 잘 어울려 사는데, 당신은 왜 저주의 말을 꺼내 사람들을 겁먹게 합니까?”

 

 

 


그대의 나태함을 본 사람들은 이런 식의 생각과 말을 하게 됩니다.
저들은 그대가 강단 위에서 저들의 죄를 비난하는 설교를 하고 경건에 관해 많이 언급할지라도, 만약 그대가 설교 후에 저들을 가만히 놓아두고 저들이 계속 죄를 저질러도 저들과 친하게 지내며 저들처럼 말하고 저들처럼 행동하며 저들의 대화에 상관하지 않는다면, 그대를 용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강단을 마치 무대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대가 개인적으로 저들의 면전에서 이런 언급을 하고 열심히 저들을 설득하지 않는다면, 저들이 볼 때 강단은 그저 설교자들이 혼자 자기 역할을 하며 자기가 만든 대사를 마음대로 떠들어대는 무대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렇게 주일날 한 시간 동안 강단에서 혼자 떠들다가 한 주간 내내 실생활에서는 그 반대되는 행동을 하여 설교를 거짓말로 만드는 사람이 목회자로서 합당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