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약대) 대한 비유]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다.(마19장23-24절,)
약대(낙타)는 성경에서 구약에 57회, 신약에는 6회만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낙타(CAMEL) "히-까말'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영어 번역본에는 "낙타"로 나와 있습니다. [히-수컷은=빠랄이라 부르며 -암컷은=버크라]라고 합니다.
이외에 단봉(單峰)낙타{KJV,ASV}, 낙타새끼{RSV}가 언급 되지만 이 부문은 이사야 60장 6절과 에례미야 2장 23절에만 나와있습니다.
낙타라는 말은 [헬:카멜로스]로서 모든 영어 번역본에 나와 있으나, 원래 낙타(ca-mel)라는 말은 어원이 히브리어로서 헬라어를 거쳐 파생된 말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마19장23-24절 본문)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수 십년씩의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자주 목사님들로부터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가는 문이 너무 좁아서 성문 옆에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배워왔다면..그것은 분명히 불충분한 증거라고 사전은 말합니다.솔직하게 인색한 부자 신자들 공격용으로 많이도 씌여왔고 너무 자주 듣다보니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른 버젼이 유행한다고 하는데 '예루살렘 성의 문들중에 바늘귀라고 불리우는 작은 쪽문이 있다'고 하시는 목사님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저 역시도 들은 것을 전하다보니 "바늘귀란 작은 쪽문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라고 하면서 그대로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하필이면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셨을까?참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어디 비유를 하실데가 없어서 큰 덩치의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간다고 하셨을까? 그래서 배경을 모르니 별 상상을 다 하여 예수님의 의도와는 다른 것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들이 미웠을까??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예수님은 없는 말씀을 절대로 하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모두가 이유 있는 말씀만 하셨고 실제로 전개되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물론 부자들에게 가진 재물을 풀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 부자는 누구냐? 입니다.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세리, 로마의 앞잡이들, 권력가들, 이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자들이었습니다. 과연 이런 부자들이 백성들의 고통을 몰랐을까요? 구약의 말씀중에 가난한 자에게 하라는 법을 생략했고, 안식일을은 지키려면 안식년 법을 지켜야했고, 안식년을 지키려면 희년의 법을 지켜야하는데 그런법은 생략하였기에 예수님은 부자들의 행위를 미워하였습니다.
문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것보다 낙타(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우리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약대는 수명이 깁니다. 보통은 50-60년. 길게는 80년도 넘기는 약대가 있습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자기 발로 걸어다니기만 하면, 그때부터 인간을 위한 봉사를 합니다. 등에 짐과 사람을 태우고 죽는 날까지 인간을 위하여 일합니다.
그리고는 종말에는 자기들이 희생하고 봉사했던 사람들에게 잡혀 가죽은 벗겨서 사람들의 옷이 되고, 살은 사람들의 음식이 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낙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지만 사마리아나 다른 유대 지역에선 낙타고기를 아주 즐겨 먹습니다. 이집트나 그리스에서도 낙타를 먹습니다만 이스라엘에서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립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마19장23-24절 본문)
유대민족들은 유목민 생활을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하루에도 두어 번씩 집을 옮기는 생활도 해왔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짐을 실어다 날라 주는 낙타가 분명히 필요 했습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낙타를 수십 마리씩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목민들이 살아갈 집입니다. 반듯하게 브록크나 나무를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언제 또 옮겨야 되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막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 천막을 깁기 위하여 바늘을 사용합니다. 대략 우리나라 이불을 깁는 바늘처럼 크지요, 길이는 15센치쯤, 두께는 이쑤시게 정도입니다. 그곳으로 낙타가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상상이나 됩니까? 그런데도 낙타는 그곳으로 유유히 들어갑니다. 그것은 인간들을 위한 희생이요, 봉사요, 사랑입니다. 자기 희생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유목민들은 천막을 자주 바꿉니다. 바람에 찢기고 이웃 병사들에게 빼앗기고, 그렇기 때문에 자주 만듭니다. 그래서 그만큼 실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 마땅한 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족장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각 족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약대(낙타) 한 마리씩을 선택하여, 전날 저녁에 잘 먹이고 나면 다음날은 어김없이 그 생명도 끝이 났습니다.
유목민들은 큰 가마솥을 큰 아궁이에 올리고 그 속에 올리브기름을 3/1, 물을 3/1정도 넣고 300도 이상이 되는 열기로 펄펄 끓입니다. 그 솥 밑부분에는 아주 작은 바늘 구멍들이 20개 정도 있고, 그곳은 진흙으로 발라져 있으며 솥 주위는 1메타 정도의 도랑을 파서 차가운 물이 흐르게 합니다. 이렇게 준비가 다 끝났을 때에 그 낙타의 껍질은 벗겨서 천막을 만드는데 가죽으로 쓰이고, 몸체는 가마솥 속에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낙타가 가마솥에서 완전히 녹아 흔적도 없어질 때가지 뜨거운 열을 가합니다.
완전하게 녹아진 것을 확인하고 가마솥 밑에 있는 구멍을 막고 있는 진흙을 뜯어내면, 그 작은 구멍으로 하얀실 같은 것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와 도랑에 준비되어 있는 물로 떨어져서 새림새림의 모양을 갖추고 사람들은 그 실이 식었다고 판단 되었을 때에 낙타를 녹여 만든 그 실을 타래에 감아서 천막을 기울 때에 그 실을 바늘귀에 넣어서 사용을 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다른 짐승을 다 보았지만 낙타처럼 질긴 실은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게 나무를 붙히는 목공용 접착제인 아교를 만들때 소의 뼈를 녹여서 사용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분명히 낙타는 바늘귀로 쉽게 들어갔습니다.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녹아서 바늘귀로 유유히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너무도 어려운 길입니다. 첫째는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인간을 위한 봉사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이것은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피를 흘리신 예수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자신을 죽여야만이 하는 엄청나게 어려운 길입니다. 그러니 부자가 아무리 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내 놓은 낙타만큼이나 하겠습니까?
낙타는 녹아서 실이 되야 바늘귀로 들어가는데 말입니다.
마19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서 내가 죽어야 삽니다. 우리가 죽음으로 예수님이 살고 내가 살아 있으면 예수님은 죽습니다. 이미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같이 죽어야 삽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죽기로 오신 희생양입니다. 예수가 살았다면 나는 아직 죄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야 내가 삽니다.예수님을 잡아서 그 피를 하나님께 보여주어야 내가 삽니다.
여러분의 손에 예수의 피가 들려 있습니까?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벧전 2:9) 왕은 다스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여기에서 말하는 왕같은 제사장은 나를 다스리고 나의 죄를 예수의 피를 드려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사장입니다.
지금 성도님은 왕같은 제사장의 역활을 충분히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들은 모두가 예수를 죽인 죄인 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를 보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죽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든지 생명을 내어놓던지 우리는 아무것도아니요, 아무것도 유익되지 못하지만 낙타처럼 자기몸을 다 녹여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천국갑니다. 이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역사입니다.
아직도 잘 몰라서 기도할 때 예수이름으로 기도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제부터는 살아나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천주교에서는 예수를 죽여 십자가에 못박아 놓고 마리아와 교황과 성인들과 착한 행실을 앞세워서 천국가기를 원하고 있지만,
우리는 살아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가시길 원합니다. 예수이름과 그리스도이름은 의미가 다릅니다. 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고 하셨으니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낙타는 바늘귀를 통과 하였는데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천국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듯이 낙타처럼 몸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낙타의 실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도들을 하나님과 꿔매는 역활을 감당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원합니다.낙타의 희생이 인간들이 쓰기 좋은 실이 되어 바늘귀로 들어가서 천막을 만들고 인간들에게 봉사를 하였듯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온몸을 다 주신 것같이 그런 봉사와 사랑과 희생의 마음이 갖추어져 있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성경속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 재림 전 죽은 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0) | 2016.05.18 |
---|---|
헤롯 왕가의 족보 (0) | 2016.05.17 |
네피림 (0) | 2015.08.09 |
성서에 나오는 우상들 (0) | 2015.08.09 |
성경인물찾기 50 선 (0) | 2015.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