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도 사랑을 실천하려면
사랑의 대상인 인류를 창조해야 한다(창1:26절).
그러나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체(靈體)이다.
어떻게 자신의 사랑을 인류에게 전할 것인가?
당연히 사랑의 주체와 대상 사이 중보자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아들 그리스도를 낳아야 했다(요1:14, 18, 5:19, 요일1:2절).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성취하고 종국적으로 완성시킬 것이다.
아들 그리스도는
사랑의 주체와 대상 사이
교제와 만남 그리고 관계 수립을 위해 존재하고 활동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우주와 지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유일한 교제의 대상이다.
우주에서 인격적 존재는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 뿐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정말 특별한 존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본 인간론이다.
기독교 윤리 즉 하나님의 율법은
당연히 이런 인간론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인간 이외 다른 창조 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
설정된 무대와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명제도 성경의 창조론, 기독론과 인간론을 잘 설명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처음 아담이라는 인류의 대표를 통해 인류에게 베풀어졌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담에게 주어진 만물의 통치권(창1:26-28절)으로 증명된다.
그러나 선악과 규례(창2:17절)도 아담에게 주어졌다.
이로써 아담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해야 한다.
아담과 인류는 선악과 규례를 준수하며
문화 사명(창1:28절)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 나라가
인류 사회 안에 세워지고 나날이 확장될 것이다.
선악과 규례라는 조건에 응할 때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그리고 일방적인 사랑 안에
아담은 계속 머물 수 있다(요15:10절).
선악과 규례에 근거를 두고
하나님과 아담 사이 언약이 체결되었다(호6:7절).
이 덕분에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실천적인 법적 성격을 띠게 된다.
선악과 규례라는 율법 곧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이
한편 무조건적이면서 다른 한편 조건적이라고
잘 증언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선악과 규례를 지킴으로
아담은 언약을 준수할 것이다(스10:3, 시78:10절).
그의 순종 행위는
바로 하나님께 향한 진실한 사랑의 표현 또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는다면
아담과 그의 후손은 죄와 사망 아래 놓일 것이다.
아담은
한편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다른 한편 자신의 후손인 이웃을 사랑하기에
선악과 규례를 지켜야 한다.
다시 말해 선악과 규례를 준수함으로
아담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시에 실천할 수 있다.
결국 선악과 규례라는 하나님의 율법은
첫째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는 방법이고
둘째 인류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며
그리고 셋째 인류가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시내산 율법의 핵심, 성격과 내용이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절)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시119:47절)
"또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시119:48절)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시119:127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절)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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