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여운

악을 이렇게 이겨라

안명애 2016. 5. 4. 14:38

시편 37편은 악인을 이기는 방법 7가지가 기록된다.

첫째, 행악자나 불의자를 보고 불평하거나 투기하지 말라(1)! 그들은 풀이나 푸른 채소 같아 속히 베이거나 쇠잔할 것이기 때문이다(2). 다윗의 충고이다. 다윗도 사울과 동족의 불의와 악행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직접 갚지 않았다. 오늘날 신자들이 사회적 불의를 볼 때 어떤 자세를 취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잘 설명된다. 성도들의 섣부른 행동은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둘째,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고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으라!(3) 만유의 주로서 입법자이며 심판자인 하나님을 의뢰하고(4:12) 선을 계속 행하라는 뜻이다. 앞에선 행악자와 불의자의 비관적 운명을 잘 알고 행하란 뜻이다. 그 대신 의의 하나님을 의뢰하라고 충고한다.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고 성실하기 때문이다. 그는 약속을 반드시 성취한다. 이를 믿는다면 성도는 범사에 흔들림 없이 성실하게 삶을 영위한다. 하나님의 성실함은 그가 매일 먹어야 할 식물이다.

 

셋째, 여호와를 기뻐하면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4). 성도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안다면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지도 잘 안다. 말씀대로 사는 것 자체가 그에게 기쁨이다. 이것이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다. 이런 성도의 소원을 하나님은 기꺼이 이루어 준다. 그러나 보통 신자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신앙 삶을 산다. 하나님이 그들의 잘못된 소원을 이루어줄 리 없다. 만약 이루어 준다면 그것은 멸망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유혹(1:14-15)이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번영이나 형통만 보고 마냥 좋아하지 않는다.

 

넷째,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되게 한다(5-6). 하나님의 약속대로 신앙 삶을 살면 과연 하나님이 보응할 것인가에 대해 때때로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성도가 가는 길이 하나님의 길이라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룰 것을 의심하지 말라!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라!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의 의와 공의를 빛같이 나타나도록 반드시 일한다.

 

다섯째,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7상반절)! 첫째부터 넷째까지 성도가 행한 후 성도는 하나님 앞에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 훈련도 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때를 따라 일한다. 이 때까지 성도는 인내하며 기다리는 훈련을 배워야 한다. 이 동안 불평 한마디 없이 잠잠히 참는 것은 훌륭한 신앙의 증거이다. 아무 증거가 나타나지 않아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성도의 마음은 평안하다(26:3). 이런 훈련은 경건 삶을 위해 절대로 중요하다.

 

여섯째,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라!(7 하반절) 성도가 잠잠히 기다리는 동안 기대와 달리 악인이 더욱 형통하고 악한 꾀가 더욱 잘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때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며 불평할 수 있다. 그러나 경건한 성도에게 이것은 금물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때에 반드시 일할 것을 믿어야 한다.

 

일곱째,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고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친다(8). 왜 성도가 불평을 금해야 하는가? 우선 의심과 분노 그리고 불평은 하나님 앞에 악행이 된다. 이 악행은 성도 자신을 해친다. 아울러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함으로 하나님을 배역할 수 있게 된다. 다음 성구가 나온 이유이다.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9-10) 인내만이 성도를 승리의 길로 안내한다.

 

결론으로 11절에 이런 성구가 나온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지금까지 다윗은 온유한 자가 누구인지 잘 설명했다. 위에서 소개된 금기 사항과 권면 사항을 실천하는 성도가 바로 온유한 자이다. 그는 결국 승리한다. 이를 위해 그는 악인과 그의 형통을 보고 쉽게 불평하거나 투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하나님의 성실함을 음식 삼아 매일 취하며 평안하다. 셋째와 넷째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섯째부터 일곱째에서 금기한 사항을 기쁘게 준수한다.

 

온유한 자는 악에서 떠나 늘 선을 행한다(27). 그리고 결국 땅을 차지한다. 처음 악인이 모든 면에서 승리하고 성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의인만 남는다. 복음 전파로 온유한 자의 수를 늘리는 것이 결국 교회와 사회를 개혁시킨다. 세상 역사도 이를 잘 증언한다. 온유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오늘날의 기독 신자들에게 시편 37편은 참으로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물을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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