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 장군은 다윗 왕국의 개국 공신으로서 다윗의 군대장관이었다. 그는 자신의 나이와 비슷하거나 어린 삼촌 다윗과 어릴 때부터 잘 알았다. 나중 다윗을 위해 일할 때 불의한 일도 맡아 해결해 주었다. 밧세바가 자신으로 인해 잉태한 것을 안 다윗은 이를 감추어야 했다. 이를 위해 밧세바의 남편이며 다윗에게 충성스런 장군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고의로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요압이 이 일을 맡아 처리했다. 요압은 성군 다윗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았다.
다윗의 입장에서 요압은 꼭 필요한 인물이지만 다른 한편 꺼림직하다. 다윗은 계속 요압을 군대 장관에 앉히며 자신을 위해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를 강제로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가 반발한다면 다윗 왕국은 분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원치 않는 다윗은 요압이 자신을 위해 공을 세울 기회를 계속 주었다. 암몬 성을 공략하여 거의 승리를 차지하게 될 즈음 요압은 다윗을 초청하여 싸워 이겨 큰 면류관을 쓰도록 충성했다.
목회에서도 마찬 가지다. 진실한 목회자라면 요압 같은 제직을 함부로 제거할 수 없다. 그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한 그에게 직분자로서 계속 일하도록 놔두어야 한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강제로 그를 제거하려 한다면 교회는 분란에 휩싸인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 조직과 다른 점이다.
제직들이 어떤 동기로 교회에 충성하는가를 목회자가 주관적으로 판단할 이유가 없다. 충성의 동기가 잘못되었다면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며 그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징벌이나 심판이 있을 것이다. 목회자는 요압 장군 같은 제직들로 인해 마음을 다쳐선 안 된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내로 그들을 대하여야 한다. 하나님인 것처럼 목회자가 함부로 판단 내지 심판하면 안 된다.
요압 장군은 당시 다윗의 장남인 아도니야를 따름으로 계속 권력을 누리고자 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다윗에게 충성한 그였지만 이 때문에 그는 솔로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교회는 예수님이 주인이다. 이 점에서 세상 조직과 다르다. 세상 조직은 이사장이 마음대로 인사 문제를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선 예수님의 뜻에 따라야 하므로 목회자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목회자는 주님이 맡긴 양들을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 일에 실패하는 것은 실로 유감이다. 하나님이 요압 같은 제직을 보낸 이유와 목적을 생각하며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