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앙인물

어거스틴을 위한 모니카의 기도

안명애 2015. 9. 4. 21:28

어거스틴은 참회록(고백록)을 쓰기까지 굽이진 길을 거쳐 신앙의 길에 당도하였습니다. 그가 성경속 진실을 마주하는 데에 여러 신학자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그의 일생 속에서 기도로 그를 기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어머니 모니카였습니다. 모니카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이 신앙을 시작하기 전에 모니카는 남편과 시어머니까지 하나님앞으로 인도했습니다. 또한 앞의 포스팅에서

어거스틴이 파란만장한 삶을 지나 진정으로 회심하는 계기를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하겠습니다.



▲ 보티첼리의 '서재에서의 성 어거스틴'

 

 

 

어거스틴을 위한 평생의 기도자, 모니카(Monica)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어거스틴의 생애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경건한 여인이었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그녀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그녀를 통해서 당신은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녀의 권면을 거절한 것은 곧 당신을 거절한 것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곤 했다.


모니카는 기독교 가정에서 엄격하게 자라났다. 그녀는 인내와 온유의 성품으로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기도로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남편을 인내와 기도와 전도로 마침내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고, 자기를 오해하고 미워하던 시어머니도 인내와 온유로 굴복시켜 화목을 이루었다. 모니카는 누구보다도 어거스틴을 깊이 사랑했다. 아들에 대한 애착이 유별했던 그녀는 아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많은 고통을 겪으며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어거스틴은 예민한 소년으로 자랐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썼고, 다른 소년들을 경쟁에서 물리치려고 발버둥쳤다. 학교에서 매를 맞는 굴욕을 당할까봐 애써서 공부했지만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어거스틴은 웅변의 대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교육 내용은 고대 로마의 유명한 웅변가 키케로(Cicero)를 비롯한 수많은 고전 작품들을 읽고 줄줄이 외우는 방식이었다.


어거스틴이 받은 교육의 목적은 화술을 배우는 것, 사람들을 설득시켜서 자기 생각을 따르게 하는 웅변술을 습득하는 것이었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교육으로 자기 표현법을 배웠다. 그는 스스로 눈물을 흘릴 줄 알았을 뿐더러 남들을 울릴 줄도 알았다. 그러나 43세에 어거스틴은 소년 시절의 교육 방식을 이렇게 회고했다.

 

 “오, 나의 참된 생명이신 하나님! 그때 나의 웅변이 다른 학우들의 것보다 더 많은 박수갈채를 받은 것이 지금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은 실제로는 모두 연기와 바람뿐이 아니었습니까?” 

 

 

어거스틴의 회심 


어거스틴은 유명한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빅토리누스(Victorius)가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했다는 소식과 황제를 수행하던 두 명의 고위관리가 아타나시우스가 쓴 ‘성 안토니의 생애’를 읽고 복음을 받아들여 관직과 결혼을 포기하고 수도자의 길을 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 더구나 수도사들은 대부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육체의 정욕을 정복해버렸다는데, 자신은 모든 지식을 가지고도 욕정을 자제하지 못한다는 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바로 이때 어거스틴은 정원의 무화과나무 밑에 엎드려 울부짖는다.


“나는 여전히 죄의 포로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비통하게 부르짖었습니다. ‘나는 언제까지 “내일, 내일” 하여야 하는가? 왜 지금은 안 되는가? 나는 왜 이 순간에 나의 추한 죄를 청산하지 않는가?’ 나는 내내 울면서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내 마음 속에서 가장 비통한 슬픔이 눈물로 쏟아진 것입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근처 어떤 집에서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소년의 음성인지 소녀의 음성인지 모르겠으나, ‘집어서 들고 읽어라(tolle lege), 집어서 들고 읽어라’는 후렴이 연거푸 들려왔습니다. 그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며 노는 어떤 게임이 있었던가 하고. 그러나 전에 그런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나는 눈물을 그치고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펴서 내 눈이 처음으로 머무는 구절을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일 것이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는 성경을 집어 들고 그의 눈이 처음으로 닿은 로마서 13장 13~14절을 조용히 읽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더 읽지 않았습니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광명한 확신의 빛으로 내 마음을 비추어 내 속에 있던 모든 의심의 어두움을 물리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 이제 허망한 시절은 지나가고 내게 축복의 날이 임했습니다. 전에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육신적 정욕을 이제는 기쁨으로 포기합니다. 주님은 나에게서 육체적 소욕을 앗아갔으나 더욱 참되고 위대한 행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386년 늦은 여름이었다.


“그 후 어머니에게 가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셨습니다. 자초지종을 다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승리의 기쁨에 겨워 주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기도 때문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주저없이 인정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진리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마음, 그밖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밖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밖에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도록 된 마음을 주신 것은 어머니의 기도 덕분입니다. 그렇게 큰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어머니의 기도였던 것을 나는 의심치 않습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은 이전 사상과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종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회심이 신플라톤주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고대 철학의 유산과 기독교의 전승을 엮어 새로운 직조물을 짜낸 그의 신학 사상은 이성(理性)과 신앙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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